케이스 스터디 | 전략적으로 데스 밸리를 뛰어넘다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정)는 2019년 11월 21일(현지시각 기준) 성인 대상 부분 발작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시판 허가를 받았다. 이 승인이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SK바이오팜이 신약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개발, 판매 허가 신청(NDA)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한화, CJ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다양한 요인으로 신약개발에서 철수했지만, SK그룹은 1993년부터 묵묵히 신약개발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 역시 주목받았다.

대기업에서 신약개발 경험이 있는 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 CJ 등 국내 대기업이 신약 개발에 철수한 상황에서 나온 SK바이오팜 신약 승인은 높이 평가할 만한 사례"라며 "대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한 구조인데, (SK바이오팜의 경우) 최태원 회장의 신약개발 의지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K바이오팜은 'FDA 승인'이라는 임상 성공을 명확히 말할 수 있는 모범적 사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SK그룹은 1993년 대덕연구원에 연구팀을 꾸리면서 신약개발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룹사의 든든한 지원 아래 SK바이오팜은 오직 혁신신약개발에만 도전했다. 장기간 고비용,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올 수 없는 신약개발 환경에서 최 회장의 신약개발에 대한 의지가 지속적인 투자로 이뤄지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만드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은 신약개발 분야에서 SK의 전략은 ' 중추신경계(CNS)'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글로벌 신약개발을 목표로 했던 SK는 상대적으로 임상시험 참여자 수를 줄일 수 있고, 패스트 트랙 등 빠른 속도로 개발과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질환을 타깃으로 신약개발에 나섰다.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는 지난해 6월 기업공개(IPO) 관련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초기 전략은 라이선스 아웃이었다"며 "존슨앤존스(J&J)과 기술이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어떤 식으로 신약을 개발하는지 경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기술이전 이후) 저희가 통제할 수 없는 (글로벌 제약사 차원의) 의사결정이 있었고, 2000년대 초반 저희는 중대한 결심을 통해 적어도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직접 판매까지 담당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자는 데 중지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또 "신경과학 분야는 우리도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항암제, 대사질환 약물과 달리 신경과학 분야는 비교적 소규모 인력으로 미국 전역으로 판매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고, (세노바메이트 판매를 위한) 영업 인원이 130명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기조 아래 1996년 우울증 치료제 수노시(성분명 솔리암페톨)에 대한 임상시험계획을 FDA로부터 승인받았다. 탄력을 받은 SK의 신약개발 연구는 2001년 Project A로 연결된다. Project A는 2001년 7월 시작돼, 다양한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거친다.
 
수백 만에 달하는 물질로부터 최적화 단계를 거쳐 세노바메이트(파이프라인명 YKP3089)가 발굴된다. 이후 2003년~2005년까지 세노바메이트의 전임상 연구를 진행했고, 임상시험 진입을 위한 각종 결과를 마련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2005년 8월 FDA로부터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고 글로벌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세노바메이트는 기존 뇌전증 치료제와 화학구조와 작용기전 측면에서 달랐다. 이 때문에 임상 1상에서는 불안증, 뇌전증, 신경병증성 통증, 신경세포 보호제 등 다양한 적응증에서 효과가 있을지 검증하는 작업도 거쳤다. 검증 과정을 토대로 임상 2a상부터 뇌전증 치료제로 본격적인 개발 임상이 진행된다.

 

'완전발작소실'을 목표로 삶의질 개선에 주안점

일반적으로 뇌전증 치료제 임상 시험은 뇌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 중 기존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작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기존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군'과 '기존 약물에 신약을 병용 투여 받는 환자군' 간의 효능을 비교해 약효를 입증해야 한다. FDA는 환자의 '발작빈도감소율'을 임상시험의 1차 평가지표(Primary endpoing)로 정의하고 있으며, SK바이오팜 역시 이러한 지표를 기반으로 임상시험을 설계했다.
 
SK바이오팜은 임상 2상시험을 두 번에 걸쳐 진행했고, 이후 2018년 1900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했다. 특히 임상 2상에서는 환자군을 다양하게 하는 임상 전략을 택했는데, 다양한 종류의 부분 발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해 위약 대비 발작 빈도를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낮췄음을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2상을 두 번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작이 100% 감소했음을 의미하는 지표인 '완전발작소실'을 입증하는 임상 데이터도 도출했다. 이를 통해 세노바메이트 투약 기간 중에 발작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했다. 이는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가 됐고, 임상의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잡게 된다.
 
허가를 받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FDA와 세노바메이트의 처방권자인 임상의는 SK바이오팜이 가장 공들여 소통을 하는 대상이다. 그들에게 세노바메이트의 차별성을 설명하기 위한 SK바이오팜의 전략은 치밀했다. 기존 난치성 질환자들을 임상에 포함시키는가 하면, 새로운 임상지표를 추가해 임상의들에게 약물의 차별화 포인트를 제시했다.

조 대표는 "임상의들에게는 뇌전증의 미충족 의료 수요(unmet medical needs)를 전달하려고 했다"며 "기존 발작 감소와 발작 빈도가 감소한 50% 환자의 비율 외에 '발작이 완전히 소실되는 비율'을 추가로 임상지표로 삼아 차별화 포인트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경쟁 시장에 대한 분석도 철저했다. 현재 뇌전증 치료제는 특허 만료가 2년 이내인 약물이 대부분이며, 신약이 거의 없다. SK바이오팜은 현재 부분발작으로 FDA로부터 승인을 받은 세노바메이트에 대해 향후 추가 임상을 통해 2023년까지 전신발작까지 적응증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개발·생산·마케팅, 의약품 전주기에 도전

SK바이오팜은 2018년 4월 미국 FDA와 신약허가신청(NDA) 제출 전 미팅(pre NDA 미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신약 허가를 위해 필요한 자료의 내용에 대한 협의를 마쳤다. 세노바메이트의 개발을 위해 진행한 제품제조품질관리(CMC), 비임상 및 임상 관련 자료들을 FDA가 요구하는 NDA 제출 표준 요건에 맞게 준비해, 2018년 11월 21일 세노바메이트의 NDA를 FDA에 제출했다. 이후 약 1년 뒤인 2019년 시판 허가를 받았다.

SK는 처음부터 신약 개발 뿐만 아니라 생산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의약품 전 주기를 맡겠다는 기업 비전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비전 아래 SK바이오팜은 생명과학연구팀, 의약개발팀 등 5개로 나누어져 있던 조직을 통합한 바 있다. 또 다양한 기술 확보를 위해 미국과 중국에 연구소를 설립했다.

SK의 신약개발이 순탄했던 것 만은 아니다. 임상 1상 완료 후 존슨앤존슨에 기술수출 했던 SK의 첫 뇌전증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가 2008년 제품 출시 문턱을 넘지 못 해 좌절을 맛 보기도 했다. 그러나 SK바이오팜의 신약개발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해 SK바이오팜의 미국 현지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의 연구개발(R&D) 조직을 강화하고, 업계 최고 전문가들을 채용함으로써 독자 신약 개발 역량을 더욱 강화했다.

엑스코프리가 FDA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또다른 요인으로는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KDDF)의 지원이 꼽힌다. KDDF(현, 국가신약개발사업단)는 지난 2012년 SK바이오팜에 연구비를 지원해 미국, 한국, 폴란드, 인도 등 4개국 임상2상 연구비를 지원했다.

SK바이오팜이 한국이 아닌 처음부터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미국 현지 법인을 세운 것 역시 눈 여겨볼 만한 점이다. SK바이오팜의 미국 지사엔 임상시험, CMC, 규제 분야 등 신약 개발(development)을 위한 글로벌 인력 다수가 포진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술이전 이후 인허가, 판매까지 생각한 SK바이오팜은 신약 '개발(development)'을 주도할 수 있는 최고의학경영자(CMO)와 판매를 위해 최고상업화책임자(CCO)를 영입한다. 두 임원 모두 J&J에서 뇌전증 치료제 토파맥스를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들이다. 그렇게 SK바이오팜은 시장 진출 전략을 출시 2~3년전부터 세웠다.

조 대표는 "미국 임상을 시작하면서, 수소문 해 마크 케이먼 최고의학책임자(CMO)를 영입했다"며 "마크 케이먼은 J&J에서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토파맥스 개발 경험했고, 마크를 중심으로 임상팀을 구성하며, 자체적으로 임상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FDA와 2상 후 미팅(end of phage 2 meeting)을 가진 뒤, 오픈라벨 3상을 시작할 즈음 토파맥스를 성공적으로 론칭했던 세비 보리엘로를 최고상업화책임자(CCO)로 영입했다"고 덧붙였다. 

 

경쟁사 영업 인력 흡수해 마케팅 활동까지 
미국에 이어 유럽, 아시아로 영업망 확대 
중추신경계 질환에서 항암제 분야로 확장

SK바이오팜을 허가 받은 이후에도 논문을 통해 세노바메이트의 우수성을 알렸다. 이와 함께 뇌전증 치료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유씨비제약(UCB) 직원을 영업 인력으로 고용해 치밀한 마케팅과 영업 전략을 세웠다.

지난해 5월 세노바메이트의 안전성과 약효를 평가한 임상 시험 결과와 관련한 주요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다. 게재된 논문 결과를 살펴보면, 세노바메이트를 부가요법으로 투여했을 때 환자들의 발작 빈도가 위약 대비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세노바메이트를 복용한 환자들의 발작 빈도 중앙값이 56% 감소해 위약 투여군에서 22% 감소한 것보다 유의미한 결과를 보였다.

또한 50% 이상 발작빈도 감소율을 달성한 환자의 수도 세노바메이트 복용군에서 50%로 위약 투여군 22% 보다 유의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약물치료 유지기간의 연구 결과를 사후 분석해 보니, 세노바메이트 복용군에서 '완전발작소실' 달성률이 28%로, 9%인 위약 투여군 대비 높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 논문의 주 저자인 애리조나 주 피닉스 소재 배너대학 메디컬센터 신경과학연구소장 겸 뇌전증 프로그램 책임자인 스티브 정(Steve S. Chung) 박사(MD)는 "지난 25년간 새로운 뇌전증 치료제가 여러 개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한 수의 환자들이 발작을 겪고 있다"며 "세노바메이트를 복용한 환자들에서 유의미한 발작 빈도 감소를 보인 것, 28%의 환자들이 유지 기간 동안 완전발작소실을 나타냈다는 점은 고무적인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미 미국은 원격진료나 처방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우리 역시 구축된 프로그램을 통해 원격 처방을 돕고 있다"며 "우리가 채용한 110여명의 영업사원이 이미 UCB 제약 등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진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어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활동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에 이어 SK바이오팜은 유럽과 일본에도 진출했다. 지난 1월 29일(유럽 현지시간)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은 세노바메이트에 대해 판매 승인을 권고했다. 유럽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뇌전증 치료제 시장으로, 세계보건기구(WHO) 데이터에 따르면 약 600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에서는 파트너사인 안젤리니파마를 통해 '온투즈리(ONTOZRY)'라는 제품명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안젤리니파마는 지난 100년 동안 상업화 역량을 갖춘 전통 제약사로서, 15개 현지 법인 및 70여개국 유통망을 통해 독일,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 유럽 주요국가들을 공략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세노바메이트가 유럽 허가를 획득할 경우 SK바이오팜은 안젤리니파마로부터 최대 4억3000만달러를 단계별 마일스톤으로 수령하게 된다. 판매가 본격화되면 매출에 따른 로열티는 별도로 받는다. 지난해 12월 기술수출 계약 국가가 32개국에서 41개국으로 확대되면서 수익 규모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의 유럽 상업화를 위해 2019년 스위스 제약사 아벨 테라퓨틱스와 라이선스 아웃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아벨이 이탈리아 대표 제약사이자 중추신경계(CNS)에 특화된 안젤리니파마에 인수되면서 세노바메이트의 상업화 권리도 함께 양도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일본에서 개발 및 상업화를 위해 오노약품공업과 기술수출 계약을 통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SK바이오팜은 선 계약금 50억엔(한화 약 545억원), 허가 및 상업화 달성에 따른 기술료(마일스톤) 481억엔(한화 약 5243억원)을 비롯해 매출액의 두 자릿수 퍼센트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받게 된다.

SK바이오팜은 아시아 3개국(일본, 중국, 한국)에서 세노바메이트의 임상 3상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시장의 경우 임상 3상은 SK바이오팜이 수행하고, 향후 개발 및 제품 허가에 대해서는 두 회사가 협력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SK바이오팜은 오노약품공업과 상업화를 공동으로 진행할 수 있는 코프로모션(co-promotion) 옵션 권리도 확보했다.

향후 중추신경계를 기반으로 SK바이오팜은 뇌전증에 이어 항암제 분야로 R&D를 넓혀 간다는 계획이다.

조 대표는 "소아희귀질환을 타깃으로 하는 카스바메이트는 이미 희귀의약품으로 지정을 받아 신속승인을 기대하고 있다"며 "이 외에도 세노바메이트와 다른 기전의 뇌전증, 조현병, ADHD 신약 개발 등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뇌종양을 타깃으로 하는 항암제에 도전해 내년 중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승인계획(IND)를 받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맹철영 SK바이오팜 항암연구소 소장은 지난 8월 열린 2021 Global K-BioX Class 세미나에서 "SK바이오팜의 뇌 질환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항암제 연구에 있어서도 뇌종양과 뇌전이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개발을 임하고 있다"며 "고형암과 혈액암을 타깃으로 하는 항암제 후보물질 'SKL27969'를 대상을 현재 전임상 독성실험을 진행 중이고, 내년 1분기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케이스 스터디는 히트뉴스 무크 정책잡지 <끝까지 히트 2>에 게재된 것입니다. 취재는 10월 중 이뤄진 것으로, 홍숙 기자가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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