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아웃제' 왜곡된 효과...잘못 없는 환자 피해로

보건복지부 숨겨진 고민 들여다보기

올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서면답변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2014년 7월~2018년 9월 기간 중 급여정지 처분대상이 된 약제(투아웃제)에 대해 개정 법률과 동일한 약가인하와 과징금으로 처분을 통일해 달라는 의견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입장을 물은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의 질문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현재 법률자문 중"이라고, 짧게 답했다. 그러나 이 짧은 답변의 행간에는 ‘무거운’ 고민이 숨겨져 있다. 히트뉴스는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윤일규 의원의 질문과 보건복지부의 숨겨진 고민을 들여다봤다.

일사천리 제도화된 '리베이트 투아웃제'

이른바 ‘리베이트 약제 급여 투아웃제’는 불법리베이트를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는 극약처방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등장했고,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된 지 6개월만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만큼 사회적 공감과 지지가 컸다. 보험의약품은 보험급여가 정지되면 시장퇴출,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제약사들의 ‘불온한’ 거래행태를 없애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노바티스 글리벡 등이 처음 급여 정지 대상이 되면서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바로 환자들의 반발이었다. 환자들은 불법리베이트를 주고 받은 건 제약사와 의사들인데 왜 환자가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 따졌다. 환자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약을 바꿔서 복용해야 하고, 싫으면 비싼 약값 전액을 자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발끈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처방약을 바꿨다가 부작용을 경험한 사례가 회자된 백혈병환자들의 불안감은 특히 컸다.

'리베이트 투아웃제' 딜레마에 빠지다

이 사건은 ‘투아웃제’가 당초 취지와는 달리 왜곡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표면적으로 보면 제재의 효과는 리베이트 연루 약제가 급여 정지된 제약사에게 미친다. 하지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의사와 환자들은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의사들은 해당 약제를 급여청구하면 삭감 당한다. 그래서 전액본인부담으로 처방하면 경제적 피해는 환자들이 다 짊어지게 된다. 따라서 처방약을 다른 약으로 바꿔야 하는데 환자에게 일일이 설명해야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마찰을 감수해야 한다. 병원과 약국은 재고약 반품 문제를 떠안는다. 몇 개 품목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해당약제가 수십개에서 백개가 넘는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보험재정에는 도움이 될까? 아무런 이익이 없다. 거꾸로 급여정지 약보다 더 비싼 약으로 대체된다면, 오히려 보험재정이 더 지출될 수도 있다. 급여정지 된 약제와 같은 성분의 품목을 보유한 제약사들만 순수하게 이득을 본다.

강력한 리베이트 제제는 의약품 유통부조리를 근절하고 약가거품을 제거해 궁극적으로는 국민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도입됐지만, 적어도 ‘투아웃제’는 입법논의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이런 왜곡된 결과들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리베이트 자체를 시도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경찰효과 측면에서는 유용하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투아웃제’ 시행기간 동안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았던 점에 미뤄보면 한계는 부인할 수 없다.

반성적 고려와 초스피드로 수용된 약가인하 전환

‘리베이트 투아웃제’의 딜레마는 재입법 논의로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급여정지 과정에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이 제한되고 비의학적인 사유로 약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부작용 발생도 우려된다. 일회성 급여정지에 비해 약가인하는 그 효과가 항구적이어서 의약품공급자에게 효과적인 제재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제안이유를 설명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 제출 만 3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신속하게 본회의를 통과했고, 올해 9월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될 당시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은 “급여 정지 때 환자에게 약제가 비급여로 사용될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의약품 접근권이 침해될 수 있다”, 노홍인 건강보험정책국장도 “실제로 운용해보니 급여정지로 환자가 약을 못 먹는 문제가 생겼다. 오히려 환자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있다”는 등의 취지에서 개정안 처리에 동의했다. ‘리베이트 약제 급여 투아웃제’는 이렇게 도입 4년 2개월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급여정지, 약가인하로 대체 가능할까

문제는 남아있다. ‘급여정지 및 투아웃제’ 규정이 시행됐던 시기인 2014년 7월~2018년 9월27일 사이에 제공된 불법리베이트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이 가능한지를 봐야 한다. 윤일규 의원과 보건복지부의 행간의 고민은 여기서부터다. 현 상황을 먼저 정리하면, ‘투아웃제’ 시행 기간 중 제공된 불법리베이트로 인해 급여정지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 줄지어 있다. 그것도 적발된 게 그렇지, 앞으로 더 나올 수 있다. ‘투아웃제’의 왜곡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반성적으로 개정한 신법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구법을 적용해야 할까?

안타깝지만 개정법률은 부칙에 소급 적용을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투아웃제’ 시행 시기에 제공된 불법리베이트에 급여정지 대신 약가인하를 적용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투아웃제’의 왜곡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이대로 제도를 운영해야 할까. 해법은 윤일규 의원도 언급한 과징금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구법(시행령)은 퇴장방지의약품, 희귀질환의약품, 단독등재의약품 외에 보건복지부장관이 (불법 리베이트 약제를) 급여정지 또는 제외하는 경우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 예상되는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이를 갈음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논란이 적지 않았지만 한국노바티스의 글리벡에 처음 적용된 규정이기도 하다.

과징금 대체...'특별한 사유' 있다

보건복지부가 이 ‘특별한 사유’를 탄력적으로 활용한다면 신법의 개정취지에 부합하게 리베이트 약제에 대한 제재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사유’는 ‘투아웃제’ 왜곡을 해소하는 데 있다. 잘못이 없는 의사와 환자에게 미치는 제재의 효과, 병원과 약국의 반품 등 현장의 혼란, 고가약제 대체 시 재정 추가부담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과징금 대체 명분은 결코 적지 않다. 여기다 처분대상 약제가 가중평균가보다 비싼 경우 가중평균가 이하로 자진인하하도록 유도하면 약제비 절감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히트뉴스에 자문해 준 법률전문가도 “보험약가가 동일제제 중 가중평균가 이하인 품목들은 보험재정 건전성과 약제비 절감을 위해 과징금으로 갈음할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공감의 목소리가 나왔다.

보건복지위 소속 한 보좌진은 “급여제한은 환자에게 미칠 불합리를 예견하지 못하고 만든 제도였다. 품목수가 많은 경우 요양기관의 행정부담이나 혼란도 적지 않다. 더구나 수십 개에서 백개가 넘는 품목의 급여를 정지해서 해당 제약사가 문을 닫게 만드는 건 위반행위에 비해 너무 가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뜩이나 우리 사회가 일자리 문제로 고민이 많은 데 있는 일자리를 없애는 또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소급적용은 못하지만 신법의 취지를 고려해 제도가 합리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제약계 한 관계자도 " 보험재정 관점에서 볼 때 급여정지, 퇴출보다는 약가인하가 더 효과적이다. 징벌적관점에서도 약가인하는  회복할수 없는 것이므로 부족하지는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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