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언시는 '배신의 이득을 위한 인센티브제'
"배신자·범법자 안 되려면 담합 하지 마" 경고 

2019년 11월말, 일본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의 월등한 톱4 큰손(大手)들인 '알프렛사', '메디세오', '스즈켄' 및 '도호약품(東邦藥品)' 등의 입찰 담합 행위가 발각됐다. 

전국 각지에서 57곳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지역의료기능추진기구(地域醫療機能推進機構, JCHO)'가 실시한 2016년과 2018년 의약품 입찰에서다.

당시 일본 의약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본진(本震) 못지않은 그 여진(餘震)은 금년 6월까지 지속됐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公定取引委員會)는 2020년12월9일, 독점금지법 위반(부당한 거래제한, 不當な取引制限)으로 알프렛사와 스즈켄 및 도호약품 3사와 각사의 담당 책임자 총 7인을 형사고발했다. 

하지만, 톱4 담합회사 중 메디세오는 독점금지법의 '리니언시(leniency)' 제도를 활용해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 함으로써 4사 중 유일하게 형사고발을 면했다.

4사의 낙찰총액(세포함)은 2016년 약 695억 엔(약 7424억 원, 환율 100엔:1068.17원), 2018년 약 739억 엔(약 7362억 원, 환율 100엔:996.27원)이나 되는 큰 규모였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약품도매업연합회(日本医薬品卸売業連合会)는 올해 5월27일 "본 연합회와 정회원 및 기타 회원 구성원 기업은, 사회적 책임과 사명을 의식해 성실하고 확고한 윤리관에 입각하여 컴플라이언스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11개 항을 준수하겠다"며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선언을 행한바 있다.

지난 6월30일 도쿄 지방법원(東京 地方裁判所)은, 알프렛사와 스즈켄 및 도호약품(東邦藥品) 등 3사에 대해 각각 벌금 2억5천만 엔(약 27억6천만 원, 환율 100엔:1105.07원)씩 판결을 내렸다. 3사의 담당 책임자인 7인에게는 집행유예 첨부의 유죄(징역 1년6개월 또는 2년)로 판결했다.

법원(東京地裁)은 이 판결에서, 담합을 자진 신고했기 때문에 입건이 보류된 '메디세오(メディセオ)'를 포함한 4사에 의한 수주(受注) 조정에 대해, "의료기관에 대한 판매가격을 상승시키고 약값의 개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이라며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크게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4개사는 과거 담합으로 과징금 납부명령을 받았으며 '뿌리 깊은 담합체질이다(根深い談合体質だ)'"라고 비판했다. 

여기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메디세오가 활용한 독점금지법의 '리니언시(leniency) 프로그램'이다.

일본의 '리니언시'제도는 '과징금 감면제도'를 말한다. 사업자가 직접 관여한 카르텔이나 담합 등 '부당한 거래제한'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公定取引委員會)에 자진 신고한 경우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 등을 면제 또는 감액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는 위반 행위자에게 자진 신고의 인센티브를 주어 위반 행위의 발각이나 조사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일본에서 '리니언시'제도는 '부당한 거래제한(不當な取引制限)'에만 적용되며 '사적독점'이나 '불공정한 거래방법'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리니언시'제도는 게임 이론인 '죄수의 딜레마'에서 응용됐다. 담합에 참여한 업체와 그 내용을 아는 자가 모두 침묵하면 죄는 드러나지 않겠지만, 선착순 감형의 혜택을 제공하면 침묵보다 배신의 이득이 더 커져 앞 다퉈 자백할 것이라는 기대가 적용된 제도다.

두 공범이 있다. 수사관의 조사를 받기 전 서로 자백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으나, 수사관이 "자백을 하면 무죄 방면해 줄 수 있지만 범행을 부인하면 가중처벌이 될 것이다"고 제안을 하면 어떻게 될까. 공범들은 자백할까? 아니면 계속 부인할까? 심리적 교착 상태에 빠져 고민하다가 결국 자백을 하는 자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라는 복잡한 심리 게임 이론의 한 단면이다.

'리니언시 프로그램(leniency program)'은 1978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후, 최소 40개국 이상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나라마다 자국 형편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공동 행위 적발과 제재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리니언시 프로그램(leniency program)'을 '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라 부르며 1996년12월30일 세계 3번째로 도입했다. 

예컨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담합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담합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최초로 제공한 자(1순위 자)의 경우, 조사 과정에서 성실하게 협조하고 자진 신고한 담합을 중단했으며 담함을 강요했거나 반복적으로 담합을 하지 않은 등의 요건이 충족되면, 과징금과 시정명령 및 고발이 면제된다. 또한 담합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제공한 두 번째 자(2순위 자)의 경우, 1순위 요건과 같으면 과징금 50% 및 시정명령 감경과 고발이 면제되게 돼 있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2조의2 및 동법 시행령 제35조가 한국 '리니언시' 제도의 근거법령이다. 이를 토대로 '부당한 공동행위 자진신고자 등에 대한 시정조치 등 감면제도 운영고시(2021.6.10. 시행, 공정거래위원회 제2021-72호)가 지금 시행되고 있다.

또한 공정위는 2005년부터 추가감면 제도(amnesty plus)를 운영하고 있다. '엠네스티 플러스(amnesty plus)'란 어떤 담합(A)에 대해 자진 신고하거나 조사에 협력한 사업자가 자신이 가담한 또 다른 담합(B)에 대해 1순위로 추가하여 자진 신고하는 경우, 기존 담합(A)에 대한 과징금 등을 더 감면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그동안 의약품 도매유통업계를 비롯한 제약업계에서, 의약품 입찰 및 가격 담합 사건은 심심찮게 있어 왔지만, 오늘의 일본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처럼 의도적으로 '리니언시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기 위해 담합 내용을 자진 신고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었다.

의약업계 주변의 모 초대형 위생용품제조업체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조달청등 14개 정부 기관과 기타 공공기관이 발주한 일반 마스크 등 위생용품의 구매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 예정업체, 들러리업체 및 투찰가격 등을 자사의 대리점 23곳 업체들과 사전에 담합했다는 사실을 공정위에 자진 신고함으로써, 과징금을 면제 받고 담합을 주도한 담당직원 5명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리니언시 제도'를 적용 받은 일이 있지만 말이다.    

'리니언시 제도'는 어찌 보면 범법자의 묵비권보다 자백한 자의 인센티브를 크게 함으로써 배신자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인센티브제라 할 수 있다.

'리니언시 프로그램(leniency program)'은 마치 "내가 싫고 못마땅하면 절대 담합하지 마"라고 외치면서 경고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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