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억대 약이 1원에 낙찰…업계 허탈, 일산병원은?  
한양대병원 입찰, 시약 끼워 넣는 '신종 변이' 등장

의약품 입찰시장은 올해도 혼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질서 확립은커녕 갈수록 이전투구의 양상만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당국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약사법 제47조(의약품 등의 판매질서)의 입법취지가 무색하다. 국민 보험약품은 판매질서가 필요 없고 가격은 싸기만 하면 그만인가. 

올해 2월초 국립의료원의 '나라장터'를 통한 의약품 입찰에서 가격 경쟁이 치열했다. 경합품목 낙찰가는 보험약가 대비 평균 80%이상 하락했고 단독품목까지도 일부지만 30% 할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하순의 세브란스병원과 고대의료원 그리고 3월과 4월에 걸친 서울대병원의 의약품 입찰에서도 예외 없이 극심한 가격경쟁이 펼쳐졌다. 도매유통업계에서는 "낙찰을 받기 위해 앞 다퉈 스스로 밥그릇을 깨고 있다"며 서로가 자조 섞인 '내로남불'식 비판들만 하고 있다.

올해 의약품 입찰시장 난맥상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지난 4월 그것도 모범을 보여야 할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의 입찰이 될 것 같다. 설마 앞으로 그보다 더 기찬 일이 벌어질까?

일산병원에서 연간 소요되는 17그룹과 18그룹의 의약품 입찰규모는 보험약가로 따져 각각 약 17억 원과 19억 원대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들 두 그룹의 낙찰가는 각각 단돈 1원씩인 것으로 알려졌다. 17그룹은 60곳의 도매유통사가 몰려 1원에 투찰했고 18그룹의 경우 57곳의 유통사가 1원에 투찰한 것으로 전해졌다. 

낙찰자가 되는 일이라면 업계가 못 저지를 일이 없을 것 같다. 이참에 자아비판을 위한 궐기대회라도 열어야 하는 것 아닌가.

4월 하순의 한양대병원 의약품 입찰에서는 그룹마다 시약이 약 15~20억 원씩 끼워 넣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에 볼 수 없었던 기발한 신종 수법이다. '실거래가격과 보험약가를 종전처럼 유지시키면서 시약으로 보상을 받는다?' 수법이 절묘하다. 마케팅의 '끼워 넣기 전략'의 좋은 본보기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매유통업계는 그 속뜻에 대해 낙찰 기대 가격이 지금 납품하는 가격에서 약 20% 내외의 낮은 가격으로 예상되므로, '현재 그 납품가격을 유지하면서 낙찰을 받고 싶으면 시약에서 최소한 약 3~4억 원 이상 손해를 보라고 하는 무언의 입찰 전략'이라고 해석들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해석과 판단에 따라 도매유통사들이 입찰에 참여했고 낙찰을 받았다고 하므로, 한양대병원 입장에서 올해 입찰전략은,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뛰는 도매유통 위에 나는 병원인가 싶다. 앞으로 혹시 다른 사립 병원들도 이 사례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하지는 않을까.

의약품 입찰시장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도매유통업체 과다에 따른 경쟁 과열로 의약품 투찰가와 낙찰가가 하락할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가 고착 돼왔다는 점이다.

최근 10년간 의약품 도매유통업체 증가 현황을 보면, 2009년 1516 곳에서 2019년 2888곳으로 매년 평균 137곳 이상씩 증가돼 온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업체 수 폭증으로 요양기관에 공급한 업체당 평균(단순) 판매액은 2009년 90억 원(13조6685억원÷1516)에서 10년이나 지난 2019년에는 88억 (25조4755억원÷2888)으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심평원, 완제의약품유통정보통계집 참조). 

언젠가 분명 업체 수의 한계 시점이 닥쳐오겠지만, 앞으로 도매업체가 도대체 얼마까지 불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이 모든 게, 유통업계가 창고면적 기준의 철폐와 완화를 정부 당국에 요구한 자업자득의 결과물이므로, 누굴 탓할 일도 못된다. 

현 제약바이오협회장이 선견지명을 가지고 국회의원 시절 앞장서서 창고면적 규제 법규를 만들어 주었지만, 도매유통업계가 들고 일어나 곧바로 이를 대폭 완화하는 바람에 오늘의 '가늘고 빽빽한 콩나물시루'를 자초했다.    

둘째, 국공립요양기관(국공립병원)의 의약품 입찰은 국가계약법에 저촉을 받게 돼 있다. '국가계약법' 제10조와 동법 시행령 제42조에 따라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 ▷예정가격(예가) 이하로서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 순으로, 낙찰자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의약품 입찰은 투찰가격이 낮을수록 낙찰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국공립병원이 '예가'를 높여 줄 리도 만무하다. 이 점이 낙찰가가 바닥으로 내려앉는 까닭이다. 도매유통업체들은 이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다만, 업계가 똘똘 뭉쳐 낙찰의 욕심을 버리면 낙찰가는 올라가겠지만, 그런 일을 바라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셋째, 국공립병원의 경우, 보험약가 조정(인하)을 위한 약제 실거래가 조사 대상에서 유독 제외되고 있다는 점이다(약제의결정및조정기준 별표6, 약제실거래가조사에따른약제상한금액조정기준 참조).

정부 당국이 이와 같은 예외의 특별 규정을 시행하고 있는 이유는, 입찰에 참여하는 자가 덤핑(dumping) 실거래가로 인한 약가 인하의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 얼마든지 낮은 가격으로 투찰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함일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러한 예외 규정을  시행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이러한 당국에게 입찰 질서가 잡히도록 관리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정부 당국이 의약품 입찰시장의 혼란을 계속 방치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판단된다. 그래도 한 가닥 아이러니(irony)한 위안이 있다면, 국공립병원에 대한 투매가격은 보험약가 인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넷째, 제약업체들이 덤핑 낙찰 약품에 대해 절대 공급하지 않겠다고 윽박지르면서도 결국 거의 모두 공급했다는 점이다.

만약 그동안 제약업체가 끈질기게 그 약품들의 공급에 대해 보다 강력히 제동을 걸었다면 지금쯤 입찰질서는 상당히 잡혔을 것이 틀림없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 업계에서 돌고 있었던, '제약업체와 도매유통업체가 사전 조율하여 덤핑입찰이 행해진다'는 풍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다섯째, 병원 내에서 소비되는 의약품 목록과 외래 처방전의 의약품 목록이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면 낙찰시의 아주 낮은 덤핑가격으로도 타산을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을 도매유통업체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외래 처방약을 조제하는 문전 약국에 낙찰가보다 훨씬 높은 보험약가로 공급하면 되니까 말이다.  

여섯째, 의약품 입찰시 기존의 병원 납품실적은 입찰자에게 아주 중요한 자격이 된다. 차후의 병원 입찰 자격을 얻기 위해, 전략적으로 어느 한 해 손해를 감수하고 심하게 덤핑을 친다는 점이다. 

이처럼 의약품 입찰시장의 혼란 원인은 상당히 다양하다. 특히, 갈수록 심화돼 가는 도매유통업계의 경쟁 구조와 감독 당국의 보험약가에 대한 '낮을수록 좋다는 냉랭한 시각' 등을 새삼 생각하면, 입찰질서 확립은 아주 요원해 보인다. 

의약품 도매유통회사는, 요양기관이 펼쳐 놓은 입찰시장이라는 경연장에서 이제까지 위험한 줄타기를 해오던 선수 역할에서, 가능한 빨리 벗어났으면 한다. 사람 생명을 구하는 19억 원 가치의 귀중한 다수의 의약품들을 유통도 안 되는 고작 1원짜리 동전으로 전락시켜선 안 된다.

앞으로 더 이상 공공재인 의약품을 더 이상 가격으로 희화(戲化)하며 가지고 놀아 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되도록 판을 벌인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의 당국자는 그 입찰 결과에 대해 '기쁘다 혹은 안타깝다' 한마디쯤 언급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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