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5천만원 가지고 오늘 80조원으로 키워 
휴대용 멀티 피검사 장비 발명이 새 도전 목표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평소 소신대로 지난해 말 65세 정년으로 경영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퇴임식도 임직원들에 대한 별도의 알림도 없었다. 공식적 후임은 오는 3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이유는, 20년 전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U-헬스케어(Ubiquitous Healthcare)분야의 스타트업 기업인'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셀트리온 그룹 지배자(최대주주)로서의 권리와 의무는 법률상 면치 못하게 돼 있어 명예회장 자리는 달고 살아야 할 테지만 말이다.

서정진 회장이 작년 11월 12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최한 '2020 헬스케어 이노베이션포럼' 기조 강연에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임상진척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정진 회장이 작년 11월 12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최한 '2020 헬스케어 이노베이션포럼' 기조 강연에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임상진척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 회장의 성년 후 삶을 나누어 보면, 제1막은 '샐러리맨(salaried man)' 인생, 2막은 '셀트리온 패밀리 창조' 인생이었다. 정년 후의 또 다른 스타트업 구상과 실천은 제3막~이라 할 수 있다. 도전과 개척 정신의 화신(化身) 같다.

서 회장은 1983년 건국대 산업공학과 졸업 후, '삼성전기'에서 첫 직장생활을 내디딘 이래, '손병두 전 호암재단 이사장에 의해 한국생산성본부(기업컨설팅 담당)'로 스카우트됐고,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에 의해 '대우자동차' 최연소(34세) 임원으로 전격 발탁됐다가, IMF사태로 1998년 대우그룹이 해체되자 실직상태가 됐다.

그때 일화 한토막이 전해진다. 서회장은 대우차 전략실 상근고문으로 재직 중이었다. 사표를 쓰면서 "회사 수뇌부의 일원인데도 국가 경제위기를 예측치 못한 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퇴직금을 포기하고 나왔다가, 빙모에게 "뭘 먹고 살려나?"는 핀잔을 듣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나이 불과 42세였다. 

먹고살기 위해 서회장은 대우차에서 함께 근무했던 몇몇 동료와 '넥솔'을 창업했다. 돈이 될 것처럼 보이는 사업에는 다 손을 댔다. 경영컨설팅, 식품수입업, 상조사업 및 통신업 등에 매달렸지만 모두 실패의 쓴잔을 들었다. 열정만으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상조서비스사업을 해보려고 장례용품 시장을 조사하다가 "관속에 직접 들어가 누어 봤다"고 서회장은 술회한 적이 있다. 

사업 초기의 우여곡절을 보면 시사점과 배울 점이 많다. 바이오공학에 문외한이었던 서회장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바이오제약 부문에 몰입하게 됐는지, 바다 간척지 송도가 어떻게 한국 바이오제약의 메카가 됐는지, 편린 조각들을 모아 모자이크(mosaic)해 볼 필요가 있다.

서 회장은 잇단 좌절 속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헤매야 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던 중, '앞으로 바이오 관련 사업이 유망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고 이것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특히, 고가의 바이오의약품 특허가 풀리면 효능과 안전성은 동등하면서도 가격을 상대적으로 낮게 매겨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돈 덩어리가 될 것이라고 직감·확신했다. 게다가 그것은 당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사업 분야였다.

서 회장은 바이오사업을 하려고 무려 300여 권이 넘는 생명과학, 의학, 약학 및 IT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며 전문지식을 쌓았다고 한다. 이제 서회장은 명실 공히 바이오공학을 책상 위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천하며 돈을 만드는 세계 최고수급의 전문가가 됐다.

넥솔바이오텍을 설립하기 얼마 전, 아시아·태평양을 대표하는 에이즈 전문가인 조명환 건국대 생명과학특성학과 교수는 서회장에게 "큰일을 하려면 큰사람을 만나야 된다"면서 자신의 '멘토(mentor)'인 '바루크 블럼버그(Baruch Blumberg)' 펜실베니아대 교수와 '토머스 메리건(Thomas C. Merigan)' 스탠퍼드대 에이즈 연구소장을 만나보라고 권했다. 

블럼버그 박사(2011년 작고)는 세계 최초로 B형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한 공로로 1976년 노벨상을 수상했고, 메리건 교수는 미국 바이오업계에서 손꼽히는 마당발이었다. 조 교수가 이들에게 서회장의 미국 방문 계획을 사전에 알리고 기다렸으나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 

서 회장은 무작정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메리건 박사의 자택과 연구실 근처 값싼 모텔을 전전하면서 새우잠을 자고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계속 방문했지만 갈 때마다 문전 박대를 받았다. 돈이 없으니 밤에는 레스토랑에서 최저 시급으로 접시를 닦는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지난 6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진도를 온라인 기자간담 으로 설명한 바 있다.(사진제공=셀트리온)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지난 6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진도를 온라인 기자간담 으로 설명한 바 있다.(사진제공=셀트리온)

보름째 되던 날 마음을 연 메리건 교수는 서회장에게 '제넨텍(Genentech, 바이오신약 허셉틴 특허권자)'의 계열사로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고 있던 '벡스젠(VaxGen)'을 찾아가 보라고 소개해 줬다.

서 회장은 특유의 집념과 설득력으로 2000년 5월, 메리건 교수와 블럼버그 박사를 과학자문위원(Scientific Advisory Board Member)으로 영입할 수 있었고, 다음 달 6월14일 자본금 불과 5천만 원으로 조명환 교수와 함께 '넥솔바이오텍'을 설립했다.

넥솔바이오텍은 2001년 2월 벡스젠으로부터 '바이오신약 생산 공장 및 연구개발센터 건립 계획'의 한국 측 파트너로, 프로젝트(Project) 주관 권한을 위임받았다. 

2001년 10월 19일 인천시와 '합작투자MOU체결자(VaxGen·넥솔·넥솔바이오텍·담배인삼공사 및 J. Stephen & Company Ventures)'는, 부지매입(28,120평)에 관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듬해 2002년 2월 25일 본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2002년 2월 26일 '셀트리온'이 탄생됐다. '셀트리온'이라는 상호에는 '바이오의 길잡이'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세포(Cell)와 북두칠성(Triones)을 합성해서 만들어졌다. 

당시 셀트리온 지분의 5% 이상 소유자는 VaxGen(보통주48.98%), 한국담배인삼공사(KT&G, 우선주17.14%), 넥솔바이오텍(우선주 16.33%) 및 J.Stephen & Company Ventures(우선주 8.16%) 등 4개사였다.

서 회장이 벡스젠을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데는 조명환 교수, 메리건 교수 및 블럼버그 교수 이외, 또 한 사람 '신승일 박사'의 공이 크다. 이들 모두 세계적인 석학들이다.

신승일 박사는 미국 '브렌다이스'대학에서 생화학과 세포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34살이던 1972년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 유전학과 교수로 임명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로슈'가 1970년 바젤면역학연구소를 세우면서 전 세계 과학자 15명을 영입했는데 그중 유일하게 포함된 한국인이었다. 

신 박사는 1986년 국내 최초이자 세계 3번째인 B형간염 백신을 개발했다. 이 백신은 3달러에 우리 국민들에게 공급됐다. 이를 계기로 유엔은 한국에 국제백신연구소를 세우고 신승일 박사를 초대 소장으로 임명했다. 신박사의 임기가 1999년 끝나자, 벡스젠(VaxGen)을 설립한 세계적인 전염병학자인 '도널드 프랜시스' 박사가 신박사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해, 신승일 박사가 벡스젠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 당시 서 회장이 메리건 교수의 추천서를 들고 벡스젠을 방문해서 만난 사람이 바로 신승일 박사였다.

그때 백스젠은 에이즈백신 임상3상을 앞두고 백신을 직접 생산할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을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박사는 벡스젠을 설득했다. 마음속으로 한국을 떠올리며,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서 1년에 1억 도즈(1도즈는 1회 접종분) 분량의 백신을 대량으로 위탁 생산해 제조원가를 낮추자고 제안했다. 벡스젠은 배치(batch)당 5만 리터의 백신을 생산한 수 있는 공장을 짓기 원했다. 

신 박사는 처음에 삼성, LG, 대우 및 대림 등 4곳에 의사를 타진했으나 투자금액과 입지가 마땅치 않았다. 벡스젠 내부에서도 불만이 있었다. 벡스젠이 기술과 시스템을 전수해 주고 한국 측은 공장 지을 돈과 땅을 대는 조건이었다.  

신 박사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블럼버그 교수에게 에이즈백신 공장 부지를 한국에서 찾고 있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 때 블럼버그 교수는 메리건 교수로부터 전해들은 바이오사업에 열정적인 서정진 회장이 생각나, 신 박사보고 서 회장에게 부탁해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만약 삼성이 제시한 투자금액(1000억원)과 공장부지(대전 근처)가 벡스젠의 마음에 들고 벡스젠이 그렇게 결정했더라면, 오늘의 셀트리온 그룹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당시 송도신도시는 외국기업을 유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1993년부터 인천시장 직을 맡아 온 최기선 시장은 대우와 추진한 송도개발계획이 좌절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최시장은 어떻게 해서든 송도신도시를 살려보려고 백방으로 뛰었다. 지금은 그곳이 천지개벽됐지만 말이다. 

그때 서 회장은 최 시장을 찾아가 송도에 해외 바이오 기업을 데려올 테니 공장 지을 땅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최시장은 땅은 얼마든지 메우면 되고 인천시의 바이오 벤처 지원정책에 따라 무상으로 임대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서 회장은 벡스젠의 신 박사에게 인천공항에서 30분 거리에, 거저 쓸 수 있는 공장 부지가 무한정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신 박사는 '도널드 프랜시스' 벡스젠 대표를 대동하고 한국 실사를 나왔다. 최시장은 앞으로 변모하게 될 송도의 미래 청사진을 브리핑했다. 인천대교가 완공되면 공항에서 송도까지 40분이면 충분하다는 지리적 장점도 강조했다. 게다가 인천시는 벡스젠에게 5만평을 내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했다.

서 회장은 여기저기서 아주 어렵게 자금을 끌어 모아 송도 간척지에 5만L 생산규모의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장 완공을 1년 앞둔 2004년, 벡스젠의 에이즈백신 임상3상이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반 이상 지은 공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서 회장은 부도를 막기 위해 은행이란 은행은 모조리 찾아다녔다. 공적인 대출이 불가능해져, 심지어 '신체 포기 각서'를 쓰고 고이율의 사채(私債)까지 빌렸다고 서회장은 회고한 바 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서 회장은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차를 몰고 강으로 향했다. 그러다 건너편에서 돌진해오는 덤프트럭에 부딪힐 뻔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숨을 부지한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고 서회장은 언젠가 술회했다.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었다.

서 회장이 척박한 한국의 황무지에 바이오제약 씨를 뿌려 19년간 온갖 정성을 다해 어렵사리 길러 낸 셀트리온 가(家) 나무들이, 올해 2월1일 종가기준 시가총액 80조7015억 원(셀트리온 50조842억원, 셀트리온헬스케어 23조9100억원, 셀트리온제약 6조7073억원)이 넘는 대한민국 초거목으로 우뚝 서게 한 것은, 어쩌다 잡힌 행운이나 운수가 아니었다. 

서 회장은 현상을 요약하고 핵심을 짚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경련 상임부회장과 서강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던 호암재단의 손병두 전 이사장이 1985년 제일제당 기획이사에서 한국생산성본부 상무이사로 자리를 옮길 때, 같은 삼성그룹의 삼성전기에서 근무하던 서회장을 특별히 눈여겨보고 영입했으며,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34세 나이인 서회장을 전격적으로 이사로 발탁한 것은 서회장의 그러한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 회장은 앞으로 헬스케어 부문에서 이노베이션(innovation)이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유의 키워드는 고령화이며, 고령화 추세 심화로 의료서비스의 수요가 갈수록 가속되고 팽창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이 하루아침에 갈 수 없는 원격진료라는 것이다.

특히 국내에서 그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과 수많은 법을 바꿔야 하며 의료시스템의 혁신과 의료관련 빅테이터의 축적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서 회장은 진단하고 있다.

서 회장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의료시스템의 혁신 중 진료와 처방의 전제가 되는 '각종 검사의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를 활용한 디지털화'에 관심이 지대하다.

검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피 검사'라고 서회장은 보고 있다. 집에서 연세 드신 어르신에게 정맥에 주사 꽂아 피를 100cc 뽑아 분석해 보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현재의 휴대용 당 측정 정도의 장비를 가지고 소량의 피로 '대량의 피로 검사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전 세계에 그런 장비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피검사 장비를 만드는 것이 소망이라고 서회장은 최근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이런 꿈을 가진 자는 아직 '자신과 아마존'뿐이라는 것이다.

셀트리온 그룹을 세운 서 회장이 정년 후 새로운 도전 목표로 삼고 있는, '휴대용 멀티 피검사 장비'의 발명이 기대된다.


 참고 자료  △셀트리오니즘 : 셀트리온은 어떻게 일하는가(전예진 지음, 스마트북스, 2020.12.04.발간) △'2020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포럼(주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변화와 대응, 한국보건산업진흥원·조선비즈 공동주최, 온라인 개최, 2020.11.12)'의 서정진 회장 기조강연 내용 △네이버 금융홈페이지 업체별 증시 자료 △금감원DART 공시 자료 △ 각종 저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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