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8년 제약바이오협회장의 조건

참, 놀랍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간 지난 6일 비공개 간담과 후속 이야기들은 기존 제약바이오산업계를 바보로 만들었다. 바이오시밀러와 바이오베터 사업에 뛰어든지 얼마되지 않는 '삼성'이 산업계 대표 주자가 돼 일순간 '바이오'를 국가적 의제로 부풀렸다. 제약바이오업계는 난공불락의 약가제도를 별것 아닌 듯 바이오시밀러 약가 정책 개선을 말하고, 해외 임상시험 연구개발(R&D) 비용의 세액공제 혜택을 거침없이 주장하는 삼성과 이를 귀 담아 들어주는 정부의 태도를 지켜봤다. 같은 논리도 '삼성이 하면 더 타당한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정부와 기업을 대표하는 두 거물간 회동이 대한민국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과문한 탓에 가늠할 길이 없다. 그러나 제약바이오산업계 리더십이 삼성 품에 맡겨지고, 정부 정책이 바이오 중심으로 움직여 화합물 의약품 산업계의 목소리가 더 낮아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바이오 연구개발이든, 화합물 연구개발이든 그 궁극의 목표는 질병 예방과 치료 의약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삼성의 사업'인 바이오시밀러 등에 더 무게가 실린다는 이야기다. 화합물의약품에 무게 중심이 더 쏠려있는 기존 제약회사들에겐 힘겨운 환경이 펼쳐질 수 있다. '바이오가 미래다'라는 이야기가 강조될수록 화합물신약과 제네릭의약품에 역점을 두고 있는 기존 제약회사들은 힘들어 질 것이다.

두 거물의 이야기 한편에선 '제약바이오산업계를 대표한다'는 제약바이오협회장 인선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웬, 뜬금없는 이야기냐 싶겠으나 변화하는 시대의 고민이 시대착오적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로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협회는 만 7개월 가까이 공석인 차기 회장 인선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고민의 출발점은 회장의 요건인데, 협회 주주격인 이사사들은 '장관급 관료출신이나 이에 준하는 정치인 출신'의 영입을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적격을 구하지 못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여전히 대안 물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데, 협회는 인물을 찾기 전에 협회장에게 어떤 역할을 맡 길지, 그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 산업계 전반의 요구를 파악해 보아야한다.

과거 협회는 관료나 정치인 중심으로 회장을 세웠는데 이들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거나, 맡겨진 일을 소홀히 수행한 인물은 없었다. 무난했다는 이야기다. '제약산업이 발전하려면 기업의 특성을 이해하는 약가제도가 필요하다'며 약가인하를 막는데 애를 썼고, 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완화시키는데 주력했다. 한데 가시적 성과는 솔직히 모르겠다. 앞으로 장관급 관료나 정치인 출신의 영향력은 점점 더 약화될 게 뻔하다.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나라경제를 쥐락펴락한다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라면 모를까, 어느 한 인물이 '그의 과거 영향력'을 내세워 '약가 1원'을 못 올리고, '규제 한 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정부와 산업'이라는 단순 구도가 아니다. 이해관계자들의 감시와 개입은 일상이 됐다.

인물 이야기 전에 논의돼야 할 것은 협회의 기능과 역할이다. 회원사 이익단체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궂은 일을 도맡는 곳인지, 윤리적 규범을 내세워 회원사들을 규율하는 곳인지,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아이디어로 생태계 종사자를 조화롭게 묶어내는 곳인지 그 정체성부터 치열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물론 기능과 역할이 딱 한가지로 정립될 수 없을 테지만, 제약산업 환경 변화를 주목하면 기능과 역할은 좀더 선명해 진다.

제약산업 환경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를 보자.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글로벌혁신신약, 오픈 이노베이션, 풍부한 벤처캐피탈 자금과 바이오벤처 설립 증가, 기술 수출, 화합물의약품 연구개발서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로 이행 등 복잡 다기하다. 제약바이오산업계의 생태계를 가로지르며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기능과 역할의 수행이 제약바이오협회의 몫 아닐까. 이 전제가 타당하다면 협회장도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흩어진 역량을 모아 쓸 수 있는 4차산업형 인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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