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일탈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제네릭 행정

바둑용어 가운데 '장고(長考) 끝에 악수난다'는 말이 있다. 너무 많은 걱정과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 묘수가 되기보다 오히려 악수가 돼 전체 행마를 그르치는 패착이 될 수 있다는 경계의 뜻을 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16일 발표한 '제네릭 의약품 민관협의체 운영 결과'는 제약회사 등 수용자 별 상황에 따라 호불호(불호가 훨씬 많아 보임)를 달리해 평가를 받겠지만, 미래 식품의약품안전처 행정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전형적인 장고 끝에 악수들이 아닌가 싶다.

왜 그런가. 민관협의체 목표 설정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존재의 이유나 정체성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협의체 도출 결과들도 제멋대로 춤을 추며 준법(準法) 기관인 식약처의 정체성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민관협의체를 구성할 당시 내건 지향점이 '제네릭의약품 국제경쟁력 강화'였던만큼 두 달여 논의 끝에 나온 성과라는 것도 'K-제네릭, 신뢰와 경쟁력으로 도약을 위한 21개 과제 도출'로 호응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사안별로 뜯어보면 억지스러운 행정의 면모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체성에 맞는 걱정들과 오지랖들이 얽혀 엉성한 모자이크 패턴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모든 공정을 위탁(맡겨)해 제조하는 때에도 GMP 적격성 여부를 사전에 확인, 허가함으로써 '위탁자의 품질 책임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위탁제조 품목 허가 시 3배치(조건에 따라 1배치)를 생산해 도출한 GMP 평가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는 '1+3 생동규제 폐기안을 어떻게든 투영하려는 뒤끝에 지나지 않는다'고 업계로부터 비판을 받는 부분이다. 한데, 이 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의 제도가 임기응변식으로 그때그때 호출된다는 점에 있으며, 이로 인해 식약처는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하는 보편적 행정'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3배치 생산의무는 2008년 사전 GMP시행에 따른 밸리데이션 의무화 정책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시행됐다가 2014년 'GMP 적합판정서' 도입으로 사라졌었다.

사라지게 된 이유는 산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인데 있었다. 당시 산업계는 위탁한 곳이 제조하는 것도 아닌데 GMP 자료를 수탁자에게 받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이렇게 생산된 3배치분이 판매되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덤핑 혹은 불법 리베이트의 총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이의 폐지를 주장했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또다시 폐기된 정책을 소환한다고 하니 '어떻게든 위탁 제약사들을 골탕 먹이려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나오는 것이다.

 

제네릭 인식개선 홍보나 해외시장 개척 지원은 할일 아냐

정체불명의 산업 지원이라는 사명감 벗어 던질 때

법률이나 규칙을 좇아 따르는 준법의 수호자로 거듭나야

이에 비해 제네릭 의약품의 허가 이후 품질 및 약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부공정의 변경, 원료의 입자크기 변경 등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관리하던 제조방법에 대한 변경을 품질과 약효 영향에 따라 변경 정도를 차등화해 사전 변경허가 하는 체계로 강화하겠다는 것은 식약처 정체성에 부합한다. 

제약회사들은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또 목소리를 내겠지만, NDMA 같은 불순물로 인해 불거진 안전관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정책은 식약처가 선제적으로 끌어가야만 하는 의제다. 이런 정책들이야 말로 식약처 본연의 역할인데, 자꾸 산업계 걱정을 하며 불요불급한 사안까지 촉수를 뻗치는 이유를 모르겠다.

'제네릭 의약품 묶음정보 제공 정책'은 본질을 피해가는 꼼수에 가깝다. 동일제조소에서 제조돼 동일 동등성시험 자료로 허가된 제네릭 의약품, 일명 위탁생동, 위탁제조 의약품은 규모가 커져 약국들이 조제와 관리 때 헷갈린다는 요구가 큰 사안이지만, 식약처는 홈페이지나 모바일 웹 등을 개발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식의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정책 기대효과가 무엇인가. 위수탁 제조로 생산되는 의약품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약 이름과 모양을 같게 하면 혼란을 일시에 잠재울 수 있는데, 왜 이건 안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구분하면 해결될 것을 방치하고 더 복잡한 우회로를 뚫는 이유를 모르겠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제네릭 의약품 활성화를 추진한다면서 인식 개선 홍보에 나서겠다는 부분이다. 예산 확보 방안은 차치하고서라도 이게 과연 식약처가 할 일인가 묻게 된다. 준법 규제기관이 산업 중흥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명감에 과몰입된 것은 아닌가.

동일 선상에서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에 도전하는 국내 업체를 지원하는 내용의 제품 개발 촉진 정책 과제도, 해외시장 개척 지원 같은 과제도 '오버'다. 이것들은 모두 기업들이 할 일이다. 지금은 식약처가 병아리를 품는 어미닭 노릇이 필요한 시절이 아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늘 역할 모델로 등장하고, FDA의 풍부한 인력과 예산에 입맛을 다시고는 한다. 부분적으로 옳지만, 전적으로 맞는 지적이 아니다.

FDA가 논란의 종결자로 존경받는 이유는 구성원들이 월등히 유능하거나 첨단 장비를 갖춰서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다 같이 알고 있다. FDA 권위는 정책 수요에 따라 누구나 이해 가능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난 뒤 철저하게 사후 관리하는데서 쌓아진 것이다. 

수년간 미국 cGMP를 준비한 한국 제약사들이 소각장에서 타다 남은 폐기 서류 반장 때문에 적격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에피소드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FDA는 법률이나 규칙을 좇아 따르는 준법(準法)을 사후관리로 일관되게 유지해나가는 규제기관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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