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는 약인가, 독인가|
건전한 소통? 익명성 악용 사례 지속… '모욕' 못 막나

업계에 무슨 일이 있는지 '블라인드'를 보면 알 수 있다는 얘기는 흔하다. 같은 회사 직원, 다른 회사 종사자들이 익명으로 뒤섞여 말을 하고, 그 말들은 꼬리를 물고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직원 복지나 처우, 영업 정책에 대한 불만과 의견 개진은 블라인드의 인기 키워드다. 내부에서 쉬쉬하던 사건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도 비일비재다. 회자되는 회사는 당연히 아플테지만, 개선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히트뉴스가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회사 이야기, 불만을 자유롭게 쏟아낼 수 있는 요즘"이라며 "예전처럼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빛과 그늘은 어디든 있는 법. 소통의 문화를 만드는 순기능 못지않게 익명성에 기댄 악용 사례도 쌓이고 있다. 익명에 숨어 사이버 범죄 수준의 악플, 모욕적 발언도 부지기수라 한다. 제재 시스템이 부재한 데다 부정확한 내용에 특정인 실명이 나오기도 한다.

블라인드 때문에 빚어지는 업계의 속앓이를 히트뉴스가 들어봤다.

국내 제약사 A사 직원이 터뜨린 불만글<br>???????(사진출처=블라인드 제약바이오라운지 발췌)
국내 제약사 A사 직원이 터뜨린 불만글
(사진출처=블라인드 제약바이오라운지 발췌)

직원들의 소통 문화를 만들기 위해 스타트업 팀블라인드가 만든 블라인드는 토론 플랫폼과 커뮤니티를 갖춘 애플리케이션(앱)이다. 2020년 4월 기준 국내 4만8623개 회사, 234만명의 직장인이 애용한다.

회사 이메일로 현직자 인증 과정을 거쳐야 가입할 수 있으며, 암호화 로직을 통해 가입자 익명성을 보장한다. 회사와 업계 정보를 신속히 접할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구체적으로 본인 인증을 위해 입력된 이메일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 복합변수로 암호화해 블라인드 관리자도 풀 수 없는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하는 시스템이다. 만일, 신고 글이 접수되면 무조건 삭제보다 사용자 수 대비 좋아요, 신고수, 댓글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삭제하거나 그대로 두기도 한다.

블라인드는 헬스·다이어트, 블라블라, 주식·투자, 이직·커리어 등 직장인이 관심가질 만한 취미와 소재별로 채널을 다르게 해 소통을 돕는다. 

제약바이오기업 종사자들은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제약바이오라운지'와 각 기업별 블라인드 채널에서 블라인드에 참여할 수 있다. 라운지에선 이용자 닉네임 옆 회사명이 함께 표기돼 해당 답변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선 사내에 얘기할 수 없는 불만을 터뜨리거나, 업계 특정 직무의 역할과 업무 강도를 묻는 정보 습득 차원에서 유용한 경우도 많다.

국내 제약사인 A사의 직원은 라운지에서 "꼴랑 일비로 4만5000원 준다. 사업부장, 팀장은 법인카드로 필요없는 물건사서 강매한다. 일비 걷어가는데 일비로 뭘 할 수 있냐"며 "직원 복지를 위해 줬다는 포인트, 도로 뺏어갈 꺼면 왜 주냐"는 불만을 터뜨린다.

식품 회사 직원은 이직/커리어 채널에서 "(국내 제약사)○○제약 홍보팀 내 디자인 업무 진행하는 파트가 별도로 있는지 궁금하다. 친구가 이직을 하는데 정보가 없어 궁금해 한다"고 묻자 스타트업 종사자는 "제약 쪽 디자인 파트는 개인적으로 비추. 묵묵히 사무행정 및 기존 제품 유지 관리 수준"이라며 본인의 견해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국내 제약사 B사 직원이 올린 '식약처 역할에 대해' 라는 게시글.

제약업계에 불거진 의약품 안전성 이슈와 이를 규제·감독하는 정부 기관의 역할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국내 제약사인 B사 직원은 블라블라(자유게시판의 콘셉트) 채널에 '식약처 역할에 대해'라는 제목으로 "형들 식약처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봐? 까는 게 아니라 답답하다. 다른 형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할 뿐"이라고 했다.

국내 제약사 C사 직원의 게시글
국내 제약사 C사 직원의 게시글

이어 "발사르탄, 인보사 사태를 보면 문제가 많다고 느낀다. 제약사도 문제지만 궁극적으로 불상사를 예방하려고 식약처가 있지 않냐"며 "의약품 허가취소와 판매 중단은 해외에서 이슈 터지면 쫓아한다. 환자들의 피해와 국산 의약품의 신뢰도 추락이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제약사 인사팀 관계자는 "회사 내외부 이슈사항 확인용으로 블라인드를 이용하고 있다"며 "직장인들의 객관적인 의견이 개진되는 곳이다. 그러나 점점 정보도 부정확하고, 잉여인력들의 불만 토로장소가 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 익명성을 악용한 사례가 쌓이고 있다. 회사와 직원간의 불신이나 건전한 소통을 저해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 익명성에 숨어 근거없는 비방이나 험담, 인신공격 등을 하는 악의적인 글도 속출한다.

사용자(사우)간의 불화를 조장화거나 근거없는 내용이나 부적절한 표현으로 경영진이나 불특정 사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퍼뜨린다.

경영진은 공인이면서 잘못한 점은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근거없는 '루머'를 올리면 이는 회사 이미지와 경영, 해당 인물의 인권에 직접 영향을 주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작성자는 교묘하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글을 쓰면서, 대상자를 욕되게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알려질까 걱정된 게 한 두번이 아니다"라고 한다.

국내 C제약사 직원은 사우만 이용가능한 채널을 통해 "혼자(회사 대표)아니 가족과 함께 맛있게 다 드세요. 2019년 최고의 실적이면 뭐 하나 어차피 우리는 안 오를거. 코로나에 힘입어 2020년 최악의 실적 가즈아!!"라며 회사에 대한 언론보도를 인용했다.

다국적사 D사 직원의 게시글

다국적 제약사인 D사 직원은 "솔직히 ○○(현 대표)는 바지사장…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D사 라인 계보. 한 번 그려보라"며 "이미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회사 내 서열 순서로, 먼저 부서를 적고 그 옆에 언니동생쓰 멤버 이름과 직위를 적어보면 모든게 클리어해짐"이라고 했다. 이어 "그들의 명확한 공통점도 한 눈에 보임"이라며 대표이사와 특정 사우를 지칭하는 듯한 표현을 썼다.

퇴직자가 계속 전 회사의 채널에 남아 현 상황에 맞지 않는 게시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악의적인 여론도 생긴다. 

블라인드도 사용자 정보를 알 수 없어 회사를 퇴사해도 블라인드 계정은 유지 가능하다. 회사 의견이 올라오면 작성자가 현직자인지, 퇴사자가 썼는지 알 수 없는 것.

이와함께 욕설 등 모욕적 표현을 쓰는 작성자가 많다. 영업사원들의 폭로로만 한정해도 사실과 다른 허위, 현재 없는 영업 정책, 과장된 묘사가 보인다.

국내 제약사인 E사 홍보팀 관계자는 "사실 파악도 안 되는 글이 올라온다. 이를 통해 기자들이 연락오거나, 기사화되는 경우 있다"며 "제약업계에 좋지 않은 일이 공론화되면, 우리 회사도 연관됐는지 걱정될 뿐"이라고 했다. 이어 "숨길 수 없는 것도 알고, 개선될 수 있다는 점도 알지만 최근들어 유용하지 않은 이야기가 퍼지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앞서 언급된 국내 제약사 C사 관계자는 "퇴직자 필터링 시스템이 없다. 회사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퇴직자 이메일 리스트를 보내 제외해주기를 요청하나 반영 여부를 알 길 없다"며 "현 회사 사정과 맞지 않는 악의적 허위 게시글이 올라와 부정적 여론이 커져도 회사가 방어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블라인드 등 '익명성'을 띤 소통 방식은 앞으로도 활발해질 것이다. 다만, 작성자와 보는 이들 모두 표현과 언급에 주의가 필요한 데다 개발자는 소통과 공론화의 역기능,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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