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 NDMA 발사르탄에 비친 대한민국의 호들갑

지방식약청 공무원 : "공장장님, 오늘(8일) '제지앙 화하이' 발사르탄 원료 계통조사 나갈거니까, 나오셔서 공장문 열어주시고, 관련 자료도 준비해 주세요."

제약회사 공장장 : "오늘은 일요일이라 담당자 연락도 안되고 출근시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라서...월요일에 조사하시면 안될까요?"

지방식약청 공무원 : "이 보세요, 공장장님,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대체 뭐라하시는 거에요. 무조건 문 여세요. 안 그러면 제가 본사 사장님께 직접 전화합니다."

7일 오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허가상 중국 원료회사 제지앙 화화이 원료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파악된 82개 제약회사 219품목에 대해 잠정적인 판매 중지조치를 내린 후 이튿 날인 8일 6개 지방청 공무원을 총 동원해 계통조사를 실시했다. 지방청 공무원들은 9일 새벽까지 16시간 이상 제지앙 화하이 원료를 확보 등 계통조사를 한 결과 최종적으로 54개업체 115개 품목에 대해서만 판매중지와 함께 회수 절차를 밟도록 했다. 7일 오후부터 식약처가 단계별로 행정조치를 취하고, 병의원 및 약국 요양기관이 분투하며 환자를 안심시키는 가운데 사태는 어느 정도 잠잠해 지는 모양새다. 의사협회의 논점 일탈 행태는 거슬리지만 의사, 약사 등 전문가들의 집단 지성은 이번 위기 극복 과정에서 크게 빛났다.

탈크파동, 살충제 함유 계란 사태 등에서 뭇매를 맞으며 위기대처 노하우를 획득한 식약처는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대처했다. 식약처는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이 현지시각 5일 중국산 발사르탄에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됐으며, 예방조치로 제품을 회수하고 있다고 발표한 뒤 바로 '같은 사실 발표와 의심 의약품 판매중지 조치, 실태파악을 통한 최종 제품 확정, 복지부 심평원 의사협회 대한약사회 회의를 통한 보험급여 정지 및 대체조제 결정 등 순차적으로 대처했다.

이 지점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대처는 의아하다. EMA가 고혈압치료제 발사르탄 원료에서 불순물 NDMA가 검출된 사실과 함께 제품 회수 조치를 내린지 1주일 가량 지나서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리콜하라고 조치했다. 그러면서 NDMA가 생성된 과정, 완제의약품에서 이 성분 함유여부를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고 언론은 FDA 발표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만약, 대한민국 식약처가 FDA처럼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류영진 처장은 언론의 공세에 따라 즉각 경질됐을 것이며, 식약처는 감사는 물론 검찰수사까지 받았을 지 모른다.    

우리의 경우 의약품과 식품에 관한 위기 대처 시스템의 콘트롤타워는 식품의약품안전처지만, 그 윗자리는 '의혹 패러다임' 외눈박이 언론이 앉아 훈수를 두는 그림이다. 이번처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문제가 발생했다면, 제일 먼저 NDMA 해당 약제 판매중지, 실제 제조유되는 약의 계통 파악, 환자들에 대한 조치 등을 해야 한다. 언론도 환자들이 해당 약물을 회피하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대개는 너무 앞서가며 중구난방 식 의혹제기로 필요이상 복잡한 문제를 만들어 놓고는 한다. NDMA라는 물질은 동물실험에서 암유발을 시킨다는 것은 확인됐지만 사람에게선 확증되지 않은 것인데도 '발암물질 함유 고혈압약' 같은 식으로 표현함으로써 환자들을 자극하고 오히려 공포로 몰아가고는 한다. 이것은 매우 부주의한 처사다.

우리는 정말 EMA나 FDA처럼 할 수 없을까? 알려진대로라면 이 문제는 제지앙 화하이가 제조방법 변경 과정에서 NDMA가 발생했다고 EMA에 보고하면서 시작됐다. EMA나 FDA라 하더라도 이를 사전에 알고 관리할 수 없었으며, 이 원료로 완제약을 만든 제약회사 또한 입고된 원료 시험의 관리 항목에 들어있지 않은 '미지의 물질'이어서 사전에 알고 대처하기는 불가항력이었다. 따라서 식약처가 왜 원료회사를 실사하는 식으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느냐고 때리는 것은 일견 그럴 듯 해보이지만, 참으로 무망한 일이다. 앞으로 시스템을 만들어 더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정도의 훈수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이미 중국산 원료가 세계 제약회사들의 원료공장이 될 만큼 시장의 지배자가 됐는데도 '중국산=저가+저품질'이라는 등식으로 재단하는 시각도 구태의연하다. 제지앙 화하이 원료를 우리나라 제약회사만 썼다면 모를까 EMA나 FDA의 관리를 받는 제약회사들도 쓴 원료아닌가. 같은 맥락에서 당장 수습해야 할  위기를 눈앞에 두고 제네릭을 폄하해 오리지널 발사르탄이 품절나도록 시장과 환자의 인식을 왜곡시키고, 평소 하고 싶었던 대체조제나 성분명처방 같은 정책적 발언을 기막히게 끼워넣은 의협같은 개입이 있는 한 대소동은 끊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참으로 피로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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