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 NDMA 발사르탄에 비친 대한민국의 호들갑

'만약에 ~이었다면'이라는 가정법 과거는 허망하지만, 종종 바른 지향점을 알게 해 줄 때가 있다. 작금의 NDMA 발사르탄 파동이 그런 경우일지 모른다. 동물실험에선 발암이 입증됐지만 사람에게서 확인되지 않은 'NDMA 함유 발사르탄 원료' 문제로 우리 사회가 한바탕 소동을 벌일 때 유럽 국가나 일본, 미국 등지선 평온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기 관리 시스템의 안정성과 시민들의 허가 당국에 대한 신뢰가 기반이 됐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많지 않은 의약품 숫자가 근본적인 이유로 보인다. 덴마크는 2개 제약사, 미국은 4개 제약사가 NDMA 발사르탄 문제에 연루됐다. 우리는 어떤가. 자그마치 54개사 115개 품목이다. 일주일만에 혼선을 잠재운 게 기적에 가깝다. 정부, 언론, 의약사, 소비자까지 호들갑을 떤 것을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치켜세워야 할까.

소동은 잠잠해졌으나, 뿌리는 그대로다. 건강보험 급여 품목이 2만개를 넘는다. 고혈압치료제를 보자. 탄탄탄... 발사르탄, 로잘탄, 에프로사탄, 텔미살탄, 이베살탄, 올메살탄, 칸데살탄 등의 성분이 든 ARB계 고혈압 약은 2690개다. 발사르탄 성분 고혈압약은 571개였는데, 이 중 중국 제지앙 화하이 원료를 쓴 제제는 최종 115개로 확인됐다. CCB 등 다른 계열 고혈압약까지 포함하면 웬만한 나라의 전체 의약품 숫자와 맞 먹는다. 제약바이오협회의 '2017 제약산업 데이터 북에 따르면 의약품 숫자는 크게 늘고 있다. 2012년 3845개 성분, 1만3606개 품목이던 수치가 2017년 4820 성분, 2만1302품목으로 확대됐다. 특히, 발사르탄의 예처럼 같은 성분으로 61개 품목이상 건강보험 급여 리스트에 등재된 품목은 2012년 11개성분, 834품목에서 2017년 59개 성분, 4972품목이 됐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 것일까. 저출산으로 초고령 사회로 질주하는 사이 '의약품 출산' 만은 풍년이다. 죄다 제네릭 의약품들이다. 가을 사과나무에 빼곡히 사과가 매달려 있듯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 제네릭 의약품들은 쏟아져 나온다. 국산신약이 30개 나오는 동안 제네릭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왜? 의약분업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정부가 생동시험을 통한 제네릭을 장려한 측면도 크지만, 이 보다 제한없는 '공동 생동과 위수탁생산'을 허용한 탓이 크다. 공동생동에 참여하는 제약회사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산업계의 주장은 규제심사에 걸려 무산되고, 연구개발 아이디어는 있으나 생산시설이 미비한 벤처형 기업을 위해 도입한 위수탁제도는 본래 취지가 사라진 채 '제네릭 생산실'로 변질됐다. 연구개발 의욕과 투자가 미흡한 회사들조차 위탁생산에 의지하고, 리베이트를 조미료 삼아 CSO에 판매를 맡겨 손 쉽게 매출을 올린 끝에 IPO를 통해 전도양양한 상장회사로 탈바꿈하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벤처기업의 모험심도 없으면서, 벤처열풍에 올라타 실력이상 자금을 끌어모으는 현실이다. 

의약품 유통의 터미널인 약국은 한없이 괴롭다. 급여 의약품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약국에도 동일성분이면서 다른 이름의 제네릭의약품들이 지속적으로 늘고있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 제약회사는 새 먹거리가 생겨 활짝 웃지만, 약국들은 오만상을 찌푸린다. 틈만나면 약국들은 성분명처방도입을 외치지만, 메아리는 없다. 의사들이 이를 놔두지 않고 정부는 의사들 눈치를 보며 의도적 무관심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NDMA 발사르탄 파동에서 정부가 '제지앙 화하이' 원료를 쓰지 않은 다른 발사르탄 제제로 대체조제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의사협회는 '위험하다'며 소비자들에게 선전했다. 그렇다보니, 약사들은 제네릭 의약품 이름을 바꿔야한다며 다른 지점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115개 품목은 제각각 독자적인 브랜드명을 갖고 있다. 발사르탄 제제인지 쉽게 알 수 없는 이름들이다. 약사들의 개명 주장은 '순풍제약 발사르탄'이나 '발사르탄 순풍제약'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제약회사들에게 책임감을 더 부여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이번 같은 문제 때 혼선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귀담아 들어주는 이가 없다.

"내가 식약처장이라면 제네릭을 하나 밖에 허가해 주지 않겠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가망성 없는 말이라는 것을 그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허만료일이 다가오기만 눈이 빠지게 바라보는 제약회사들이 더 내수에 목을 매게 만든 정책으로 제한없는 공동생동과 위수탁 생산이 꼽히지만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 쉽지 않다. 규제심사에서 정책적 의지가 꺾여 본 식약처의 에너지가 약한데다, 제한없는 공동생동에 제한을 둔다 해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식약처가 넋을 놓고 있어선 안된다. NDMA 발사르탄 유사 문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으며, 그 때 혼선을 빠르게 바로잡으려면 이렇게 의약품이 많아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식약처를 포함한 정부는 대한민국 제약산업을 어디로, 어떻게 끌고갈 것인지, 그 방향성을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 이번에 선방했다고 스스로 뿌듯해 할 때가 아니다. 약은 넘쳐나는데, '리피오돌'은 없는 산업, 꼭 필요한 것은 없고, 고만고만한 제네릭만 풍성한 산업은 사회의 눈으로 볼 때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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