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노태호 교수(가톨릭대 성바오로 병원 순환기내과)

혈압약이 갑자기 유명세를 탔다. 수많은 고혈압 환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그토록 오래 복용하던 약에 독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니 당연하다. 그뿐 아니다. 인류가 발명한 물질 중에 가장 싸게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혈압약이라고 주장하며 치료를 꺼리는 환자들을 설득하는 필자도 난감해졌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발사르탄에 함유된 NDMA는 N-Nitrosodimethylamine의 약어로 독성이 강하고 암 유발 물질로도 알려져 있다. 주로 산업 공정의 부산물로 생기는데 중국의 제지앙 화하이(Zhejiang Huahai)란 회사에서 만든 고혈압 치료제 발사르탄 원료의 제조 과정에서 부산물로 NDMA가 생긴 모양이다. 발사르탄은 혈압 치료는 물론 심부전 치료에도 널리 사용되는 우수한 약물로서 전 세계적으로 복용하는 사람의 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유럽 의약청(EMA: European Medicines Agency)에서 제지앙 화하이에서 만든 발사르탄 원료에 NDMA가 함유된 것을 발견하여 전 세계의 전파했다. 같은 원료를 사용해 제조한 제품이 우리나라에도 56개사의 128품목이나 된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이 약을 복용한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많을 것이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에서 의약품을 만들면 동물실험을 거쳐 사람에게 사용하기까지 오랜 시간 테스트하게 되며 안전성과 유효성을 만족시켜야 약품으로 출시된다. 바로 오리지널이란 약이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해 이 신물질에 대한 특허가 종료되면 누구나 같은 화학구조를 가진 약물을 만들어 팔 수 있다. 제네릭 혹은 카피로 부른다. 물론 오리지널보다는 가격이 싸다. 오리지널이 훌륭한 약이란 정평이 있으면 제네릭을 만드는 제약회사가 많다. 제약회사라고 하지만 천차만별이다. 오리지널을 만들 실력과 재정 능력을 갖춘 거대 회사가 있는가 하면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에서 값싸게 만든 원료를 수입해 제품을 만드는 회사까지 다양하다. 어느 나라나 약품의 중요성을 알기에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사실 중국 제약회사의 의약품 원료를 사용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제약회사에서 완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제약사 중에는 우리나라의 대형 제약사도 여럿 들어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일단 판매와 유통을 금지시킨 모양이니 다행이나 아직까지 이 약을 복용한 환자들은 찜찜하다.

1978년 독일의 한 화학교사가 NDMA를 부인이 좋아하는 잼에 섞어 먹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례가 위키피디아에 기술되어 있다. 부인이 병들어 입원했는데에도 잼을 계속 먹었는지 전화로까지 남편이 확인하는 것이 이상해 잼을 독성 검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실험쥐에게 잼을 먹였더니 2일 후에 죽었다. 그 후 독성 검사를 통해 잼 안에 NDMA가 확인되어 남편은 살인미수로 수감되고 재판이 끝나는 시점에 부인은 사망했다는 일화이다. 상당한 독성을 가진 모양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런저런 이유도 오리지널 의약품을 선호한다. 카피 혹은 제네릭 약품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누구라도 약을 먹어야 한다면 약 값이 비싸도 명백한 검증 과정을 거친 오리지널 약품을 복용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재정을 고려해 의사들이 값싼 제네릭을 처방하기를 원한다. 성분명 처방제가 바로 그것이다.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을 거치면 효능이나 안전성 모두 오리지널과 동등하니 어떤 약이든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2017년 Circulaton에 발표된 논문에서 로살탄 발사르탄 칸데사르탄 3 종류의 약품을 오리지널과 제네릭을 비교한 결과 제네릭에서 부작용이 더 많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정부 뿐 아니라 의사나 약을 조제하는 약사 중 일부도 여러 이유로 제네릭을 선호한다. 일부 약사는 동일 약품에서 자신이 재고로 가지고 있는 제네릭 중 어느 것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재량을 갖고 싶어 한다. 일부 의사는 다른 재정적 요인으로 제네릭을 처방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제 당장 문제는 내가 먹는 고혈압 약이다. 판매 유통 금지로 인해 새로이 약을 처방받는 환자는 괜찮다. 그러나 이전부터 고혈압 치료를 하고 있다면 우선 병원을 찾거나 혹은 약국에서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이 여기에 해당하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처방전에는 상품명이 기록되어 있어 확인이 가능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웹사이트를 통해 (http://www.mfds.go.kr/index.do?mid=675&seq=42732) 어느 제품이 여기에 해당하는가를 알 수도 있다. 기존에 처방받은 환자는 약을 변경해야 한다. 아직 NDMA가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아 독성의 영향도 알 수는 없지만 중지하고 변경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기존의 약을 중지할 때에는 우선 대체약을 처방받아 손에 넣고 중지해야 한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독성 때문에 고혈얍 약을 갑자기 중지하는 것은 더 큰일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발사르탄은 갑자기 중지했을 때 당장 위험으로 연결되는 약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주의는 해야 한다. 단순 고혈압 뿐 아니라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신장질환을 동반하고 있는 경우에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발사르탄도 해당 회사의 원료로 제조된 것이 아닌 다른 공급처에서 원료를 받아 만든 약이라면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뿐만 아니라 발사르탄 말고도 다른 우수한 고혈압 약은 많다. 또 발사르탄이 속한 ARB 제제에도 효능과 안정성이 확립된 우수한 약물이 많다. 텔미사르탄 로사르탄 이르베사르탄 아질사르탄 올메사르탄 등이 대표적이나 그 외에도 여럿이 더 있다. 자신의 혈압 치료를 담당한 의사에게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좋다. 내가 복용하는 약은 안전한 것인지 다른 종류의 약으로 변경하고 싶다면 솔직히 요구해야 한다. 의사는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노태호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으며 성바오로병원 순환기내과 진료부원장, 서울성모병원 대외협력부원장을 역임했다. 학회 활동으로는 대한심장학회장, 대한부정맥연구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대한심폐소생협회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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