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표기일원화-묶음번호의무화 꼭 필요해
의약품 도매유통업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018년 12월31일 일련번호 실시간 보고제도의 행정처분 유예 기한이 끝나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도매유통업계는 앞으로 다음과 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의약품 입·출고 때마다 바코드와 RFID 리더기를 번갈아 쥐고, 약 포장지 이곳저곳에 불규칙하게 인쇄돼 있는 바코드를 앞뒤 좌우 훑어 찾아보면서 접촉하듯 찍거나 RFID tag를 통해 일련번호 등 약의 정보를 읽어야 한다. 또 약이 한꺼번에 10개들이 큰 박스로 입고되든가 출고될 때면, 그 때마다 그 박스를 뜯어내 각각 하나하나씩 개별적으로 약포장 속에 들어 있는 필요한 정보를 따로따로 스캔해야 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정처분이나 과태료 및 과징금이나 벌칙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도매유통업계는 새로운 일련번호 실시간 보고제로 인해 물류 업무량이 30% 이상 늘어났고 그에 따른 관련 장비 설치와 창고 구조 및 인력 변경 등으로 적지 않은 투자비용을 지출했으며 특히 연매출 1000억 원 이상 중대형 도매업체들의 경우 최소 2억5000만원 이상 들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취급 품목과 판매량이 많은 회사일수록 더 많은 비용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도매유통업계가 당국에 요청한 것은 비용보전 문제보다 3년여 초지일관 관련 회의 때마다 건의됐던 (1) 바코드와 RFID 중 하나로 일원화해 달라 (2) 묶음번호 표기를 의무화해 달라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상당수 관련자들이 도매유통업계가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벌써 수년 전부터 논의가 진행된 사안이고, 제약업계는 이미 별 탈 없이 시행하고 있는데도 유통사들만 '죽겠다'며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몽니'일까?
일련번호 실시간 보고제와 관련하여 제약과 도매유통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제약사는 취급 품목이 아무리 많아도 약 500종 내외다. 유통사는 많으면 2만종이 넘는다. 제약사가 약국에 매일 2배송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유통사는 3배송 또는 5배송까지도 한다. 제약사는 바코드와 RFID 중 택일하면 되지만 도매유통사는 2개 시스템을 모두 갖춰야 한다. 제약사는 큰 박스에 묶음번호를 생략해도 일련번호 업무에 별지장이 없지만 도매유통사는 물류 능률 및 비용 측면에서 필수다. 두 업계의 상황과 문제점 등이 판이하게 다르고 당국의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당국은 도매유통업계의 '정보표기 일원화와 묶음번호의무화' 등의 요구를 좀 더 시간을 갖고 심도 있는 재검토를 해야 한다. 건의가 타당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도 우리의 일련번호 제도 추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그 제도 추진 상태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그들의 제도가 우리나라처럼 실시간으로 보고까지 해야 하는 강제 제도인지 아닌지, 가감 없는 확인이 필요하다. 행정처분 유예 기간을 앞으로 약 1년 내지 2년간 더 연장했으면 한다.
최근 당국이 '의약품 공급내역 보고제도의 효과분석 및 발전방안'을 기획하고 연구하기로 했다 한다. 10월 시한 연구용역을 공개적으로 곧 발주하겠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문제점을 제대로 파헤쳐 수긍이 가는 좋은 해결책을 제시할지, 아니면 작정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도구가 될지 결과를 놓고 판단해야 하겠지만, 일단 그것을 연구한다는데 긍정적 기대를 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