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결과 지난달 말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

두개골의 곡면을 따라 형성된 생체 통합적 통신 전자회로의 사진 / 사진=기초과학연구원(IBS)
두개골의 곡면을 따라 형성된 생체 통합적 통신 전자회로의 사진 / 사진=기초과학연구원(IBS)

뇌의 신경신호를 통해 생각만으로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는 '뉴럴 인터페이스'를 두피 아래에 문신처럼 인쇄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뇌신경세포처럼 부드러운 인공 신경과 두개골의 곡면을 따라 형성된 전자회로인 뉴럴 인터페이스의 상용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는 평가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연구단의 천진우 단장(연세대 특훈교수)ㆍ박장웅 연구위원(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과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ㆍ정현호 교수 공동 연구팀은 뇌신경세포 수준의 크기와 유연성을 가지는 인공 신경전극을 뇌 안에 이식하고, 신경전극을 통해 검출된 뇌파의 신호처리 및 전송용 전자회로를 두개골 표면에 직접 3차원(3D) 프린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사용자가 이식을 받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얇고 두피에 직접 인쇄돼 있어서 이물감과 불편함을 최소화하며 장기간 동작이 가능한 뉴럴 인터페이스를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공동 연구팀은 설명했다.

우리는 언어나 행동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마우스나 키보드를 이용해 컴퓨터에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다른 대상에게 내 생각을 바로 전달할 수 있다면, 말을 하기 어렵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자유롭고 정확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뉴럴 인터페이스(뇌-컴퓨터 인터페이스, Brain-Computer InterfaceㆍBCI)는 바로 뇌파(신경신호)를 통해 기계나 전자기기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뇌에 전극을 연결해 가상 세계에서 사람이 사는 것과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머리 끝의 신경 촉수를 연결해 생각만으로 다른 대상들과 교감하는 것 등, 뉴럴 인터페이스는 아주 먼 미래의 기술로서 묘사됐다.

하지만 최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에서 볼 수 있듯이 뉴럴 인터페이스 기술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연구들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뉴럴 인터페이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3차원의 뇌 내 각 영역에서 발생하는 신호들을 감지할 수 있는 삽입형 신경전극과, 감지한 신경신호를 외부의 기기들로 보내고 통신할 수 있는 전자회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딱딱한 금속과 반도체 재료들로 이뤄진 신경전극은 부드러운 뇌의 신경조직을 파고들어 뇌세포에 손상을 주게 된다.

이때 발생한 손상과 흉터로 인해서 시간이 지나며 전극과 신경세포들 사이에 신경신호가 전달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신경전극을 장기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신경신호를 외부의 전자기기들로 전송하는 전자회로 역시 딱딱하고 큰 크기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이식하게 될 경우 사용자는 머리 위에 스마트폰을 고정해놓은 것처럼 이질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며, 이식한 부위에 염증 및 감염의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의 뉴럴 인터페이스는 대부분 뇌질환 말기 환자들의 치료 및 진단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돼 왔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연구진은 기존의 고체 금속 기반과 달리 뇌 조직과 유사한 부드러운 소재인 액체 금속을 이용해 인공 신경전극을 제작했다. 신경세포와 비슷한 지름을 갖는 머리카락 10분의 1 수준의 액체 금속 인공 신경전극은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기 때문에 뇌조직 손상을 최소화해 신경신호를 장기간 지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또 연구진은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전자회로를 두개골의 곡면을 따라 얇게 형성하고 두피를 봉합함으로써 체내에 무선 전자회로를 제작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렇게 개발된 생체 통합적인 뉴럴 인터페이스를 이식하기 전과 후로 나눠 실험용 쥐를 비교했을 때, 전자회로로 인해 생체 표면에 변형이 일어나거나 이물감이 느껴지는 부분 없이 이식 전과 동일한 외관임을 확인했다. 아울러 해당 생체 통합적 뉴럴 인터페이스를 통해 8개월 이상 신경신호를 지속적으로 검출했다.

제1저자로 연구를 진행한 박영근 IBS 나노의학연구단 연수연구원은 "개발된 뉴럴 인터페이스를 통해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 다양한 뇌질환 환자가 질 높은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를 이끈 박장웅 IBS 나노의학연구단 연구위원은 "생체의 부드러운 특성과 형태를 해치지 않으며, 신경전극과 전자회로를 형성함으로써 조직 손상을 줄이고 이질감과 불편함을 최소화했다"며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생체 통합적인 형태의 뉴럴 인터페이스가 다양한 뇌질환 환자 및 일반 사용자에게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2월 27일(현지 시각)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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