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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완벽주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귀환을 바라며

우리는 못 하던 사람이 못 하는 것을 두고 실수한다고 하지 않는다. 잘하던 사람이 삐끗했을 때를 두고 '실수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실수로 1점짜리 문제를 틀려온 모범생에게 "1점은 왜 깎였냐"고 묻기가 참 어렵다. 그것을 묻자니 잘해오던 기세를 꺾을까 두렵고, 묻지 않자니 같은 실수를 또 할지 걱정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FORM 483.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이토록 고민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범생이라면 FORM 483은 그의 깨끗한 시험지 위 작게 그어진 빨간 체크 표시다. 그 빨간 체크 표시를 들여다보며 거듭 생각을 곱씹었다. 이것은 1점짜리 문제인가? 아니면 10점짜리 문제인가? 1점짜리를 틀리면 실수고, 10점짜리를 틀리면 잘못인가? 도대체 몇 점짜리 문제여야, 이것을 짚는 우리 언론의 비판이 충분히 정당해지는 것일까?

혹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점짜리 문제를 틀린 것이라 말한다. FORM 483 발부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실사 후 으레 벌어지는 일이라며, 별것 아닌 일이라 말한다. 가만 듣노라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멀끔하게 실사 준비를 마쳐놨더니 수레바퀴에 녹이 슬었다며 FORM 483을 휘갈기는 곳이 FDA다. 완벽에 완벽을 기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회초리를 피할 재간이 없다.

또 누군가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0점짜리 문제를 틀린 것이라 말한다. FORM 483이 흔히 나오는 것이라 쳐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가볍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특히 FDA가 지적한 데이터 완전성 이슈는 쉬이 넘길 문제는 아니다. 제품 신규 허가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일인 데다, 거기 대한 우려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니 말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애니콜 화형식'을 기억하는가? 1990년대 초 삼성전자는 치솟는 휴대전화 수요를 따라잡고, 경쟁자를 몰아내려 무리하게 생산량을 늘렸다. 이에 불량률이 치솟자 이 회장은 구미사업장 운동장 한가운데에 15만대의 휴대폰을 모을 것을 지시하고는 그대로 불을 붙여버렸다. 그를 그토록 분노케 했던 부분은 불량률이라는 수치 따위가 아니었다. 불량품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분노케 했다. 시험에서 1점짜리 문제를 틀렸든, 10점짜리 문제를 틀렸든 상관없이 100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었다.

그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FORM 483 관련 취재를 진행하며, 이 모든 상황이 '1점짜리 문제인가, 10점짜리 문제인가' 하는 프레임 속에 붙잡혀 있다는 느낌을 왕왕 받았다. 그리고 기자 또한 그러한 시선을 잠시 건네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돌아보면 우리 모두가 물었어야 했던 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몇 점짜리 실수를 했느냐'가 아니었다. 우리는 '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00점을 받지 못했는가'를 물었어야 했다.

이것이 무리한 질문이요, 무리한 부탁인가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들이 'Got 483? No!'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FORM 483 없이 FDA 실사를 통과했음을 한껏 뽐냈던 때가 2015년이다. 그 후 8년, 세계 무대로 뛰어나가 숨 가쁘게 질주해 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눈앞엔 연 매출 3.6조원 고지가, 발밑엔 미처 고쳐 매지 못한 FORM 483이라 풀린 신발 끈이 있다. 그 끈이 언제부터 느슨해져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건 잠시 숨을 고르고 신발을 고쳐 신을 때가 왔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00점을 받는 법을 알고 있다. 1점, 2점의 감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잠시나마 흔들렸을지언정 아직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품질 완벽주의' 정신 속 성공 가도를 달렸던 애니콜처럼, 호기롭게 'Got 483? No!'를 외쳤던 8년 전 그날처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손에 만점짜리 성적표가 다시금 쥐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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