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의약품 유통업계의 AGAIN 2015?

의약품 유통업체의 2022년 조마진율이 6.2%로 집계됐다. 히트뉴스는 유통업체 140여곳의 2022년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를 지난 9일 보도했다. 조마진율(粗margin率)은 매출액총이익률을 뜻하는 용어로 의약품 유통업계의 경영상태를 파악하는 대표적 지표 중 하나다. 눈여겨볼 점은 이 조마진율이 해를 거듭할수록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1년 9.3%였던 유통업체 조마진율은 2021년 6.3%를 거쳐 2022년 6.2%까지 내려갔다. 조마진율은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의약품 물류를 위탁하며 유통업체에 주는 이른바 '마진'이 주요 근간이다. 20여년 전 9%대 였던 조마진율이 6%대로 하락했다는 사실은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유통업체에 책정할 수 있는 마진의 폭이 그 만큼 줄어들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의약품 도매'와 짝지어 △마진 △수수료 등으로 키워드 검색을 하면 '보이콧'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마진 폭에 대한 불만이 생길 때 마다 유통업체들은 보이콧으로 맞서 왔다. 심하게 말하면 유통업계가 업권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보이콧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럴 때 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타협했지만 마진율은 알게 모르게 곤두박질쳤을 뿐이다. 미국, 일본 등 의약품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우리 유통업계의 처지는 더 무색해진다. 미국의 3대 유통업체인 맥케슨, 아메리소스버겐, 카디널헬스의 2020~2022년 마진율은 3.58~4.96% 수준이다. 같은 기간 일본의 주요 유통업체 메디팔HD, 알프렛사HD, 스즈켄, 동방HD 등의 마진율 평균은 7.20%, 한국 유통업체 73곳(히트뉴스, 2023.4.11 보도) 평균은 7.33% 였다. 내려갈 일은 있어도 올라갈 구실은 마땅히 찾기 어려운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온라인팜 HMP몰이 업권침해라며 반발한 유통업계가 2015년 당시 진행한 단체 시위 현장.
온라인팜 HMP몰이 업권침해라며 반발한 유통업계가 2015년 당시 진행한 단체 시위 현장.

최근 동구바이오제약, 동화약품, 안국약품, 국제약품, 조아제약, 일성신약, 경동제약, 대우제약, 아주약품 등 중소·중견 제약바이오기업 26곳이 출자해 설립한 공동 물류센터 피코이노베이션이 유통업계의 입길에 올라 있다. 지난 3월 경기도 평택시 드림산업단지 내 1만7161㎡ 크기로 물류센터를 설립한 피코는 온라인 플랫폼인 '피코몰'을 통해 병원·약국과 제약·입점도매간 직거래를 중계하고 이를 직접 유통하는 콘셉트다. 첫 걸음을 제대로 떼지도 못한 피코에 대한 유통업계의 반응은 기존의 업권 수호 로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피코몰대책위원회를 꾸려 '업권수호' 의지를 피력하고 초창기 피코와 손잡았던 회원 도매를 설득해 탈퇴시켰다. 공정거래 위반 소지, 이른바 유통 부조리 사항을 파악하겠다는 내용까지 데자뷔가 반복되고 있다. 지금은 대세가 된 온라인팜(한미약품) HMP몰, 대웅제약 더샵 등 유통업계가 알러지 반응을 일으켰던 직거래 온라인 플랫폼 설립 초기와 달라진 대응 방식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어렵다.

2015년 유통업계 초유의 집단대응 사태를 불렀던 온라인팜 HMP몰은 2022년 기준 수수료 매출 377억의 의약품 B2B몰로 성장했다. 수수료 평균을 6%로만 가정해도 HMP몰을 통해 거래되는 상품 규모가 최소 6000억 이상이다. 유통이 업권수호를 외치며 눈을 부릅 떴지만 더샵, HMP몰에 이어 보령(팜스트리트), 일동제약(일동샵) 등이 사업에 진출했다. "의약품 유통업계도 온라인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유통업계 관계자의 발언이 최근 피코 갈등을 보도한 한 매체 기사에 인용됐다. 흥미로운 것은 갈등이 극에 달했던 2015년에도 같은 대안이 유통업계 안에서 회자됐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유통업계의 장단기 대응은 한결같다. 정작 보이콧 할 대상은 피코가 아니라, 업계 내부의 관성일지도 모른다. 유통업계 관점에서, 피코는 실력으로 뛰어넘어야 할 수 많은 도전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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