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열 때 10억 출자, 1심서 "약정 없다"며 정산 요청 기각
항소심, '동업' 주장 받아들여 정산금 돌려받도록 판결

두 명 이상 약사가 뜻을 모아 함께 약국을 열었다. 그러다 상황이 좋지 않아 폐업을 결정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정산해야 할까? 이와 관련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자금을 투입한 약사의 의도가 '투자' 혹은 '대여'인지, '동업'인지를 구분해 서로 다른 판단을 했다.

복수의 약사가 개국 비용을 분담할 경우, 대여와 동업에 따른 출자를 명확하게 정해 계약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A약사와 B약사는 2018년 함께 약국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A약사는 약국 임대차보증금으로 10억원을 출자했고, B약사는 인테리어 비용 1억700만원과 각종 개국 경비를 부담하기 위해 3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약국은 운영이 어려워졌고, 개국 3개월 여 만에 폐업 절차를 밟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익배분과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A약사는 △(주위적)B약사에게 대여한 10억원과 의약품 등 물품대금 반환 △(예비적)10억원이라는 부당이득반환 등 주장으로 B약사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약사의 두 가지 청구 모두를 기각했다. 10억원에 대해 대여금이나 부당이득금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별다른 약정이 없었던 탓이다. 

A약사는 항소했고 2심에서는 두 약사가 동업 관계였으며, 동업 관계가 종료됐으므로 A약사도 정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B약사는 A약사의 명의를 빌려 임대차보증금을 구했을 뿐, 실제 약국을 운영한 건 자신이며 대여금이나 물품구입에 대한 약정을 체결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동업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동업계약서나 손익분배 약정을 하지 않아 동업이 아니며, 설사 동업이라 해도 남은 재산을 50:50으로 정산해야 하며 A약사가 이미 이를 분배받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는 현물과 자금을, B는 노무와 자금을 출자해 약국을 공동 경영하기로 한 동업관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A는 이미 다른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임대 문제로 퇴거 요청을 받은 상황이었고 B도 약국 자리를 찾고 있었다는 진술을 근거로 두 약사가 공동으로 약국을 경영하기 위해 돈을 지급한 것이라고 봤다. 

실제 민법 제703조에서 조합은 2인 이상이 상호출자하여 공동사업을 경영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며, '출자'란 △금전 △기타 재산 또는 △노무로 할 수 있다고 정했다.

따라서 동업은 △동업자끼리 동일한 조건으로 체결한 계약 △자본만을 출자한 동업자가 있는 계약 △동업으로 회사(합명,합자)를 만들기로 한 계약 등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재판부는 이번 경우가 두번째 동업에 해당한다고 본 셈이다. 

또 동업 관계를 정리할 때 잔여재산이 있다면, 따로 청산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이 조합원 사이에 특약이 없는 이상 각 조합원의 출자금에 비례해 분배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출자금을 놓고 봤을 때 A약사가 남은 재산의 75.8%에 해당하는 4억여원을 B약사가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B약사는 상고했고 현재 사건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원고 측 변호를 맡은 우종식 변호사(법무법인 규원)는 "동업은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해결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사건과 같이 계약서를 쓰지 않아 상대가 자금 반환을 거부하더라도, 폐업할 때 자산을 청산하고 배분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약국개설을 위한 금전 대여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대여금이든 투자금이든 그 돈의 성격을 입증하기 위해 약정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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