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선택권 놓고 벌이는 헤게모니 쟁탈전 양상으로 번져

의료법과 약사법의 강제력으로 그런대로 평형이 유지돼 오던 23년 된 의약분업의 균형추가 지난달 20일 한쪽으로 기울었다. 후유증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져 가는 상황이다. 

서영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달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불을 지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세트아미노펜 (제제) 등이 품절되는 사태가 일어났으며 그 대책으로 성분명 처방이 떠오르고 있다"고 전제하고 "성분명 처방은 국민 약제비 부담과 건강보험 약품비 절감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으므로 여러 논란은 있지만 이참에 동일성분 대체조제 뿐만 아니라 성분명 처방도 제도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그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입장을 묻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감염병 등 특별한 위기 시에 약품의 수급이 원활해지도록 각종 대책을 식약처와 함께 검토해보겠다"는 원론적 대답을 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오유경 처장은 "적극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이례적 현상이었다. 식약처 수장이 '성분명 처방 제도화'를 적극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사회가 즉각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의약분업에 내재돼 있는 불만의 마그마(magma)가 곧 터져 나올 기세다. 그 징조가 되는 의사사회와 약사사회의 성명전(聲明戰)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불타오르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소청과의사회)는 지난 달 24일 성명에서 "오유경 처장은 국민을 위한 공무원이 아니라 약사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주성분이 같다고 다 같은 약이 아니며 약사가 멋대로 조제할 경우 문제가 생겼을 때 약사가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며 "국민 편의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성분명 처방이 아닌 '약 자동조제판매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유경 처장의 즉각 사퇴와 의사 출신 인사를 식약처장에 임명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이같은 소청과의사회의 성명에 대해 서울특별시약사회가 지난 달 25일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 불편을 무시하는 밑도 끝도 없는 막장 수식어를 늘어놓은 수준 이하의 성명을 발표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비상식에 실소를 금치 못하며 의사 만능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동안 의사들은 성분명 처방이 약사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외쳐왔는데 이는 의사들이 리베이트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실토한 셈이며 돈의 권력을 놓기 싫다고 생떼 쓰는 뻔뻔한 모습과 다름없다." 

"막말과 낡은 레퍼토리로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는 논리는 이제 역사 속으로 퇴출되어야 하며 현명한 국민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국민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와 국민 알권리를 위해 정부의 소신 있는 보건의료정책을 촉구하며, 성분명 처방이 전격 도입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전국의사총연맹은 이날 "선택분업을 하면 복약지도료와 약품관리료만 주어도 의사들은 원내 조제를 할 것이고 의사들은 약사들보다 더 자세한 복약지도를 할 것이며 자동조제기가 있어 처방만 하면 위생적으로 약이 자동 포장되어 나오기 때문에 인건비도 필요하지 않아 건강보험 재정이 엄청나게 절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선택분업이 국민을 위한 정책이므로 국회와 보건복지부는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당장 선택분업을 실시하고 복제품 약가를 인하하라"고 요구하며 "선택분업이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시키고 국민들을 안전하게 할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튿 날 국감에서 밝힌 오유경 식약처장의 성분명 처방 논의 동의 발언과 관련된 항의 서한을 식약처에 제출했다. 

"처방은 오로지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결정해야 하는데 정부가 이를 국민 약제비 부담과 건강보험 약품비 절감 차원의 경제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면, 차라리 현행 의약분업을 폐지하고 선택분업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 고유 권한인 처방권과 환자의 진료 및 건강권을 훼손하는 중대 사안"이라며 "성분명 처방에 동의한다는 발언은 개인 사견을 넘어 국가의료체계의 혼란을 부추기는 심각한 발언이다."

"성분명 처방의 도입이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거나 건강보험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

"성분명 처방 도입과 관련된 식약처의 공식입장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달라." 

대한개원의협의회(대개협)는 지난 달 27일 "국정감사에서 약사출신 국회의원과 식약처장이 공직 본분을 망각한 채 이익단체의 숙원사업을 대변했다"며 "환자 편의를 위해 선택분업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대개협 회장은 10월30일 제30차 추계연수교육 학술세미나 중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국민이 선택하는 '국민 선택분업'을 주장"했다. "사람이 포장하는 것보다 자동 약 포장기계가 훨씬 더 정확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약 포장기계는 사람이 하는 것보다 정밀해 불용약이 감소될 것이며 도매상에서 부족한 제품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운영한다면 조제료나 약품관리료가 모두 절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도 이날 "건보재정 절감과 약품비 절감을 위해 성분명 처방을 한다는 발언은 국민건강을 희생시키는 망발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며 성분명 처방을 주장하는 식약처장 및 일부 약사회 발언이 국민 건강을 생각하는 책임 있는 행동인지 의문스럽다"며 식약처장의 공식 해명 및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성분명 처방 운운하며 의사의 약품 선택권을 무시하는 것은 의약분업의 대원칙을 파기하자는 것으로 들리므로 약사가 약품 선택권을 가져가겠다면 의사도 약품 조제권을 가져오는 것이 당연하니 차라리 예전과 같이 처방과 조제를 일원화 하거나 선택분업으로 가는 것이 국민 부담을 줄이고 환자를 보호하는 방법이 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작심한 듯 "의약분업제도야말로 국민 불편을 불러일으키고 의료재정(건보재정)을 위태롭게 하는 대표적인 제도"라며 "의약분업 이후 20여 년 동안 약국관리료, 조제기본료, 복약지도료, 조제료, 의약품관리료 명목으로 약값을 빼고 약국에 지불한 돈이 100조가 넘고 의료계는 국민 편의와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수시로 선택분업을 주장하였으나 번번이 무산된 바 있으며 성분명 처방과 같은 어불성설을 발언하기에 앞서 진정으로 국민 편익과 건강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것"을 요구했다.

경상남도약사회는 지난 달 28일 성명에서 정부에 '제약회사 국민 선택제 일명 성분명 처방'제 도입을 촉구했다. 

국민이 가장 이득을 보는 제도는 '성분명 처방'이라는 것이다. "의사나 약사의 시험과 면허를 국가에서 관리하듯 의약품도 성분 함량 효과 등을 국가에서 시험하고 관리하지만 국가에서 동일하다고 시험하고 인정하는 약들도 국민은 그저 의사가 적은 대로, 약사가 주는 대로 받아 가야 한다며 국민은 선택권이 없기에 도대체 내가 먹는 약은 어느 회사 것인지도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는 사이 국민 입장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제약회사지만 값은 훨씬 비싼 약도 있으며 검은 거품들은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전라남도약사회는 이달 1일 성명을 발표하며 성분명 처방으로 "불완전한 의약분업을 이제는 완성하라"고 당국에 촉구했다.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의사회의 결사 반대 때문이고 약품 신뢰성이 없어 성분명 처방을 할 수 없다는 의사들의 주장은 자가당착이다"라고 비판했다.

"현재 처방되는 제네릭 약들은 오리지널 대비 생동성 시험을 거친 것들이다. 조금이라도 과학적 상식이 있는 의료인이라면 생동성 시험에 합격한 약은 적어도 동일한 약효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이것을 약품 신뢰성이 없어서 쓸 수 없다고 한다면 제네릭 처방은 하지 말고 오리지널만 처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리지널 약보다는 제네릭 처방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내과의사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어 "국민의 건강권에 위해를 주는 '성분명 처방' 제도를 절대 반대한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기회만 되면 주장하는 성분명 처방 제도의 도입은 경제 논리로 포장하여 법에 규정되어 있는 의사의 처방권을 박탈하고 약사가 의약품 선택권을 획득하려는 욕심에 불과하며 안전성, 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 처방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제도임에 틀림없고 2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현 의약분업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며 "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고 제약산업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방향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의사-약사 사이의 신뢰를 깨뜨리지 않고 국민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제도의 도입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렇게 계속 주거니 받거니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성명전을 분석해 보면, 의사사회와 약사사회(양측) 공히 적어도 2가지는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의약품에 대한 '선택권'에 전문적 직능을 걸고 있다는 점 △다툼하는 명분으로 '국민을 위함'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사회는 "그동안 해 온 것처럼 우리가 의약품을 상품명으로 계속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약사사회는 앞으로 "우리가 의약품을 성분명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절규하고 있다. 양측 모두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국민의 건강 증진과 부담 절감을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은 헷갈린다.

아주 가깝고도 가장 먼 사이가 돼버린 의사사회와 약사사회의 하루가 멀다 하고 저렇게 치고받는 다툼이 언제 끝날지 지금 같아선 가늠조차 안 된다. 

23년 전 2000년7월1일 이전, 의약분업 첫 단추를 꿸 때, 의사사회는 외래 환자의 원내 조제를 포기했고 약사사회는 임의 조제를 내던졌기 때문에 분업이 성사됐다. 그 때는 내 권한을 버림으로써 의약분업을 시행시켰는데 오늘날은 권한 챙기기 다툼으로 의약분업이 깨질지도 모르는 불안한 사태를 맞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당시, 상품명 처방을 하던 또는 일반명(성분명) 처방을 하던 그 선택권을 의사사회에 전적으로 일임하고 의약분업을 봉합한 결과가, 오늘까지 양측 간의 극심한 갈등을 초래할 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알았든 몰랐든 의약분업이라는 대업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렇게 미봉했다면 양측 중 한 측은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 같다. 

국회 서영석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식약처 오유경 처장의 성분명 처방과 관련된 앞으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서 의원과 오 처장의 임기는 유한하고, 양측은 갖은 명분을 내세우며 팽팽히 맞서고 있으며, 여차하면 여론전을 위해 길거리로 나설 판인데 '성분명 처방 제도화'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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