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폼페병환우회 임지나 회장

눈에 보이는 증상 없어도 혈액 내 수치 이상으로 확인 가능
"성인의 경우 근력 약하단 생각들면 무조건 검사 받아야"
"의료진, 희귀질환 대해 알아가기 위한 공부와 노력 부탁해"

손발이 뒤로 휘어있던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안짱다리는 아니고 활 모양처럼 손과 발이 뒤로 휘어있는 형태였다. 어떤 질환이 있을까 해 찾은 동네 병원에서는 어려서 유연하다는 진단만 들었을 뿐 별다른 이상을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체육 시간에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찌를 하거나 뒤처졌고 윗몸 일으키기도 한 번을 못했으며 뜀틀도 잘 못 뛰었다. 증상이 나아지지 않자 개인병원, 대학병원, 한의원 등을 다녀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괜찮다'였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찾아간 병원에서 진단한 의료진이 처음으로 이상 증후를 발견했고 의료진의 권유에 따라 서울에 위치한 대형병원을 방문하자마자 스무 살 이상 살기 어렵다는 소식과 함께 '근육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다.

아이의 부모님은 진단을 믿기 어려워 다른 병원을 찾았고 그때서야 근육병과 증상이 유사한 '폼페병' 진단을 받았다. 한국폼페병환우회 임지나 회장의 폼페병 진단 과정이다. 

폼페병과 같은 리소좀 축적질환(LSD)으로 의심되는 환자의 경우 한 번의 채혈로 간단하게 스크리닝 검사를 진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검사율과 낮은 질환 인지도로 인해 임지나 회장과 같이 오랜 시간 진단 방랑을 겪는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

히트뉴스는 한국폼페병환우회 임지나 회장과 인터뷰를 통해 폼페병의 현 상황과 실제 환자들이 겪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폼페병환우회 임지나 회장
한국폼페병환우회 임지나 회장

임지나 회장은 폼페병 진단 이후 29살 때 우연히 폼페병 치료제를 접하기 전까지 뚜렷한 치료를 받지 못해 증상이 진행됐다고 했다.

그는 "확실히 치료를 받지 않았던 시기에 가장 증상이 악화됐다"며 "원래는 자기 전에 인공호흡기를 쓰지 않았는데 대학에 가기 전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게 된 것을 보면 치료제를 투여받지 않은 기간 동안 질환이 급속도로 나빠졌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임지나 회장은 빠른 진단을 강조했다. 폼페병 진단은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신생아 스크리닝에서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폼페병 검사가 가능하다. 이때 혈액을 채혈해 유전자 검사로 진단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러한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앉거나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하면 본인이나 부모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때부터 병원을 찾아다닌다. 증상이 하나씩 나타나기 때문에 눈에 띄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미리 진단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성인이 돼 진단을 받는다.

임 회장은 "폼페병은 혈액 검사로 간단하게 진단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환우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검사를 받지 못하고 오랜 시간 방황한다"며 "빠르게 진단을 받을수록 질환이 악화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셈인데 진단을 받지 못한 상태가 계속되니까 환우들의 상황은 점차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환우들 중 증상이 나타나기 전 어린 나이에 혈액 검사를 통해 미국에서 진단을 받은 사례를 공유했다. 이 환우의 경우 바로 주사 치료를 받아서 다른 아이들에 비교했을 때 달리기를 못 하거나 하는 증상이 없었다. 특별한 증상 없이 어릴 때부터 고단백 식단까지 병행하며 재활치료도 받고 지금도 건강한 사람처럼 생활을 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부분이 빠른 진단이다. 임 회장은 "나는 늦게 진단을 받아 인공호흡기 없이는 잠도 못 자고 말을 할 때도 계속 숨이 차고 머리도 아프다"며 "신생아 스크리닝 검사는 약 10만 원 정도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 폼페병을 검사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의심 증상이 없어도 혈액 내 효소 수치에 이상이 있는지 선별 검사를 1차적으로 진행하고 문제가 있다면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 바로 폼페병을 진단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신생아뿐만 아니라 현재 폼페병을 겪고 있지만 진단받지 못한 환자들에 대한 염려도 이어졌다. 폼페병은 4만명에 1명 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할 경우 일상 생활까지도 가능하지만 한국 폼페병 환우회에서 폼페병 환자수를 1280명으로 추정하는 것에 반해 등록 환자수는 45명에 불과하다. 아직 1000여 명의 진단 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사례가 있다는 것.

임 회장은 "폼페병이 있으면 성장기 시절 기본적으로 또래에 비해 근력이 많이 떨어진다. 그러면서 서서히 계단 오르기 힘들고 고등학생의 나이에 폐기능이 나빠지기 시작한다"며 "성인의 경우 근력이 약하단 생각이 들 시 무조건 검사를 받아보길 추천한다"고 강조했다.

치료제 투여 받고 있는 환우 제공: 한국폼페병환우회
치료제 투여 받고 있는 환우 제공: 한국폼페병환우회

 

희귀질환 환자로 산다는 것은 경계의 삶이다

폼페병을 진단 받고 치료제를 사용하더라도 희귀질환 환우들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 폼페병 치료제는 고가의 약으로 모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환우들은 병원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또한 2주에 한 번씩 대학병원에 가서 주사 치료를 받아 반나절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임 회장은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는 대학병원도 있는 반면 병원 도착 후 결제를 해야 치료 준비를 시작해 환자들이 1~2시간 가량 병원에서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며 "약물을 투여받는데 기본 4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필터가 종종 막힐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들이 여러 번 확인하는 과정에서 투여 시간이 추가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겉으로 보기엔 증상이 잘 티가 나지 않는 애매한 경계에 걸쳐 있는 폼페병 환우들도 많아서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삶을 산다고 임 회장은 전했다.

그는 "증상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불편하지 않은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보이는 장애에 대해서는 수용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는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겉으로 잘 티가 나지 않는 애매한 경계에 걸쳐 있는 환우들에겐 '멀쩡한데 왜 이게 안되지?'라는 생각을 갖고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며 "경계선에 걸쳐 있는 환우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의 고충을 알아주고 포용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마지막으로 임 회장은 바라는 게 있다며 "먼저 의료진들이 보다 희귀질환에 대해 더 알아가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 환우분들은 비장애인들처럼 나가서 술도 마셔보고, 사회생활도 해보며 젊은 나이에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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