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터뷰 | 김용주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 대표

"기술이전한 제 물질이 돌아왔을 때
제 인생이 다 끝나는 심정이었어요"

"어려움 만나도 실망할 필요없어. 새 아이디어 생기니까"

"프로젝트 12개를 실패해 본 경험이 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라이선스 아웃을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아직 신약개발 문화가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한 국내 신약개발 생태계에서 '실패'의 경험으로 중무장하고 2006년 창업을 통해 신약개발 생태계에 뛰어든 이가 있다. LG화학(전, LG생명과학)에서 본인 뿐만 아니라 회사전체로도 처음인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접어야 했을 때, 그는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실패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어느덧 임상 1상을 위한 첫 환자 투약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은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다. 하루종일, 1년 365일 신약개발 연구만 생각한다는 그의 말의 무게는 평범한 어구조차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종일, 1년 365일 신약개발 연구만을 생각한다는 김용주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 대표. 그의 말의 무게는 평범한 어구조차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종일, 1년 365일 신약개발 연구만을 생각한다는 김용주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 대표. 그의 말의 무게는 평범한 어구조차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첫 질문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대표님은 프린트를 해 가며 최신 논문을 읽는 것에 많은 시간을 보내신다고 들었습니다. 대표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하는 데 보내요. 이제 레고켐의 많은 실무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제 역할은 '방향설정'이죠. 오전에는 논문이나 우리 자체 데이터를 보는 데 시간을 보내고, 연구원들과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또 배웁니다. 다만 이런 말은 늘 해주죠. '빠른 시간 안에 승부를 보려고 하면 안 된다.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일은 없으며, 공부를 하며 꾸준히 가야 한다'고 말이에요.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선 현재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이것이 혁신(innovation)의 출발점이죠. 자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혁신을 이룰 수 있겠어요?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열심히 공부하는 수 밖에 없어요. 하루게 다르게 트렌드가 변하는 신약개발 분야에서 혁신은 필수고, 이를 따라가긴 위해선 공부가 필요해요.

 

모든 벤처가 혁신을 추구합니다. 

그렇다고 모두 혁신의 성과물을 얻는 것 아니잖아요.

수많은 벤처가 창업되지만, 대부분 없어지게 되는 것이 벤처가 속한 숙명적인 생태계겠지요. 현재 국내 제약바이오 생태계에서는 기업공개(IPO) 외에는 특별한 엑시트 플랜을 세울 수 없어요. 지금까지 3500여개 바이오벤처가 설립돼 3000개 정도가 남아 있다 하더군요.  

한해 많아야 스무곳 남짓 IPO가 되는 상황에서 나머지 회사들은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할까요? 현 시점에서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 놓을 수 있는 이도 없습니다. 바이오벤처 생태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렇게 치열한 국내 벤처 생태계 안에서 더 근본적으로 벤처의 속성을 생각해 보죠. 벤처는 숙명적으로 혁신을 이뤄내야 합니다.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선 결국 제대로 된 정보를 바탕으로 리더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니 전 공부를 게을리 할 수 가 없습니다. LG 시절부터 연구원들의 리포터를 직접 받아보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죠. 실제로 현재 레고켐바이오 100여명 연구원들은 프로젝트, 기능, 부서를 막론하고 가능한 모든 연구 리포트를 전체가 공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게도 수많은 리포트가 공유 되는데, 대부분 리포트를 읽고 수시로 연구원들과 의견을 나눕니다. 

 

LG화학 시절은 어땠나요?

만 23년을 LG화학에 몸 담았어요. 어려움도 있었지만, LG를 고맙게 생각해요. 저는 LG에서 신약개발의 틀을 배웠어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요.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는 벤처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LG화학 시절부터 많이 생각했어요.

저를 키워주신 최남석 박사님(전 LG화학 연구원장)은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었어요. 지도자의 기본을 제게 보여주신 분이죠. LG에서 처음 신약개발을 한다고 했을 때, 다들 부정적으로 봤어요. 당시 신약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실행으로 옮긴 분입니다. 최 박사님 덕분에 LG화학이 팩티브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LG화학 슬로건이 세계 30대 화학회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LG화학은 세계 3대 화학회사입니다. 이런 성과가 있었던 것은 연구개발(R&D)의 미래를 보는 리더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LG 화학을 뒤로하고 벤처의 길로 접어드셨어요. 

'신약개발'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이들이 의가투합해 창업을 했어요. 대기업보다 더 각자의 개성을 살려 연구활동을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벤처에서 구현하고 싶었어요.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벤처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다양하잖아요. 신약개발 프로젝트가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역설적으로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특히 구성원 개개인이 '내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는 순간부터 조직이 무너지는 것도 지켜봤어요. 지금도 조직을 운영하면서,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이에요. 회사에 직접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경우 회사가 잘 안 깨져요. '우리 것'이 아니라, '내것'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 조직에 어려움이 찾아와요. 박세진 부사장과 늘 공정하게 성과를 보상하는 체계를 고민하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죠.

 

최근 벤처들은 특정 기술을 갖고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레고켐은 처음부터 항체접합의약품(ADC)로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시작은 LG 경험을 살려 저분자화합물(small molecule)로 신약개발을 해 보자는 것이었어요. 이후 ADC로 넘어갔을 때도, 결국 우리가 다루는 도구(tool)는 화학(chemistry)이 근간이고요.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chemistry에서 벗어날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무기를 다양한 곳에 접목해 보고 싶던 차에 ADC라는 분야를 알게 된 것이죠.

몇 년 전 한 게임회사 대표가 '내가 이걸 할 줄 몰랐다'라는 말을 하는데, 크게 공감이 됐어요. 벤처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창업하지만, 대부분 아이디어는 바뀌거든요. 세상은 참 공평한 것 같아요. 기회는 언제든지 오고, ADC는 우리에게 기회였죠. 사실 처음엔 ADC가 뭔지도 몰랐어요.

창업 당시 레고켐바이오의 주요 연구분야 중 하나는 합성 항암신약이었어요. 수많은 난관 속에서 포기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2010년 하반기, ADC 분야를 우연히 접하고 관련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금의 ADC 개념과 약간 달랐지만, 미국 메사추세츠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생물학(biology)을 기반으로 공동연구 제안이 왔어요. 그 연구실에는 chemistry를 잘 아는 연구자가 없었거든요. ADC는 항체와 톡신을 링커로 연결하는 반면, 당시 연구 프로젝트는 항체 대신 small molecule이었어요. 쉽게 말해 small molecule conjugate죠. 2~3년간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논문출판까지 했어요.

당시 연구를 하는데, 상대 연구팀이 원하는대로 링커를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다시 활용하려고 보면 불안정(unsatable)해서 자꾸 깨져 있더라고요. 원인을 분석해 나가다보니, ADC 분야에 흥미가 생겼고, 우리만의 기술력으로 링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현재 인투셀을 창업한 박태교 박사 중심으로 ADC 연구가 시작됐죠. 안정한 링커를 만들기 위해 시험관 결과(in vitro)를 도출하고, 동물실험을 시작하던 게 얼마 전 같은데 임상단계까지 와 있네요.

 

문제 원인을 분석하다 ADC 개발까지 하게되셨다는 말씀, 인상적입니다.

연구원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안 되는 것을 눈 여겨 보라고 말이죠. 거기에 답이 있다고.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쉽게 해결된 것이 없어요. 처음에 난관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연구원들의 손끝에서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항상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죠.

아직도 ADC 분야에서 혁신이 이뤄져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경쟁자보다 딱 반박자 빨리 기술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전히 ADC라는 새로운 분야를 보는 것이 재밌어요.

레고켐바이오의 주요 철학 중의 하나는 '모든 연구결과는 연구원의 손 끝에서 나온다'에요. ADC 분야가 여기까지 온 것도 모두 연구원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것이죠. 

 

안 되는 것을 눈 여겨 보는 것, 참 어려운 작업이잖아요.

연구원들을 어떻게 독려하나요?

독려는 잘 안 해요.(웃음) 다만 저는 연구원들에게 실패에 대한 잔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연구원들이 직접 해 보는 것이 중요해요. 물론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전 충분히 사전 숙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일단 수행해 보라고 합니다.

전 실패한 연구원에게 '당신이 거기서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물으며, 강조합니다. 지나간 것은 그저 과거일 뿐이라고 말해주는데, 이런 말이 독려라면 독려일 수도 있겠네요. 

 

현재 ADC 분야에서 어떤 혁신이 이뤄져야 할까요?

ADC는 △항체 △결합방법 △링커 △페이로드 등 4개 플랫폼으로 구성된 암세포 살상능력이 매우 높은 약물입니다. 이렇게 강력한 약물이 약효를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혈중에서는 안정적이어야 하며 암세포내에서만 링커와 페이로드가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레고켐이 개발한 ADC 플랫폼의 하나인, 항체의 특정부위에 링커-페이로드를 부착하는 결합방법이 장점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이제 이 부분은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이는 것은 10년 전 차별화 전략입니다.

현재 우리의 가장 큰 차별적 장점은 혈중에서 페이로드를 떨어뜨리지 않는 매우 안정적인 링커와 암세포내에서만 링커와 페이로드가 깨끗하게 떨어져 약효를 높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암종별로 끊어지는 메커니즘이 달라야 한다는 숙제가 있습니다. 항체 역시 단클론항체 뿐만 아니라 이중항체를 붙일 수도 있고, 톡신 외에 면역항암제 등 새로운 페이로드를 붙이려는 전략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제 마지막 꿈은 알츠하이머(치매)를 ADC로 약물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항체가 혈관뇌장벽(BBB) 투과가 어렵다면, 이 문제를 ADC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LG 시절부터 해왔던 항생제도 ADC로 개발하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레고켐은 지난해 4건의 기술이전 실적이 있잖아요.

초기 기술이전 이후 전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초기 임상시험을 자체적으로 진행해 보려고 해요. 이를 위해 전문인력도 영입했고요. 임상결과가 없었기 때문에 초기 선수금이 적은 편이었지만, 향후 임상을 진행해 우리가 개발한 ADC 플랫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보스턴에 개발을 전담할 현지법인 설립을 진행 중입니다.

 

기술이전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일부 개발자들이 기술이전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도 회자됩니다.

경험이 부족해서 그럴 겁니다. 전 LG에서 12개의 프로젝트를 실패한 본 사람이에요. 23년간 LG에서 제가 개발한 물질이 15개인데, 이중 12개를 실패한 것이죠. 실패의 여정이 얼마나 험난한지 누구보다 잘 알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술이전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뼈저리게 깨달았죠. 1991년 제가 기술이전 한 물질이 1년 만에 돌아왔을 때, 저는 제 인생이 끝나는 심정이었어요.

저의 첫 신약 프로젝트였던 세파계 항생제는 연구 시작 3년 만인 19991년 세계최대 제약사인 글락소(지금의 GSK)에 기술이전 됐어요. 이 기술이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후보물질 기술이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개의 프로젝트가 죽고, 또 다른 프로젝트가 죽다보니, 어느덧 제가 임상 1상 첫 환자 투약을 앞두고 있더라고요. 기술이전은 최종 신약개발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 일 뿐입니다.

 

ADC 분야는 세계적으로 임상 인력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가요?

임상을 진행하기 위해 이뮤노젠에서 8개 파이프라인에 대한 임상을 진행한 분의 컨설팅을 받고 있어요. 모두 우리의 기술력을 보고 선뜻 응해준 것이죠. 이제 임상을 통해 우리 기술력을 입증해야 하는 도전 앞에 섰어요.

 

신약개발자로서 최종 목표나 꿈은 무엇인가요?

특별한 꿈은 없어요. 저는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1980년대 대한민국이 신약개발을 할 당시는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이었어요. 항생제 학회를 가 보면, 일본이 절반이고 한국 연구자는 찾아볼 수 조차 없었죠. 이젠 그때와 확연히 다릅니다. 적어도 미국, 일본 등과 경쟁은 해 볼 수 있는 위치까지 왔어요. 불과 한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대표님은 국내에서 신약개발을 개척해 온 인물로 손 꼽힙니다.

후배 신약 연구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실 전 아이디어로 창업한 사람은 아닙니다. 신약개발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을 뿐이죠. 요즘 창업하는 분들을 보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창업을 하니, 어찌보면 저보다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역으로 아이디어가 작동(working)하지 않을 때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설사 아이디어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CFO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CFO의 역할은 단순히 재무(finance)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CFO의 중요한 역할은 '중재'입니다. 조직에서 갈등은 늘 존재합니다. 이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사람 간 갈등을 관리하고 중재할 수 있는 CFO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기를 꼭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