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계 참여한 첫 토론..."넘어야 할 산 많다"
경기 성남지역은 언젠가는 '공공의료'의 모범으로 명성을 쌓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바로 내년 10월 정식 개원할 성남시의료원의 존재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병원은 단순한 공공의료기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2003년 성남 수정구와 중원구에 각각 위치했던 성남병원과 인하병원이 폐업하면서 본시가지에 의료공백이 발생했다. 응급의료센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인구대비 병상수가 급감하면서 시민들은 원정진료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시민들은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공공병원 설립운동에 나섰고, 16년만에 그 결실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수정구 태평동 옛 성남시청부지에 건립되는 성남시의료원은 연면적 8만2819평방미터에 지상4층, 지상9층 규모로 22개 진료과 513병상이 들어선다. 조승연 성남시의료원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시민들이 발의해 세우는 공공병원으로 시민이 주인되는 최고의 병원을 만들고자 많은 시민, 공직자, 민간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의미깊은 시민의 병원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은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이다. 성분명처방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성남시의료원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낸 건 바로 이 시민단체가 지난 21일 오후 '성남시의료원 성분명처방 실현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운영위원이자 성남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인 김상렬 좌장은 이날 "성분명처방이 공공의료 실현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비전문가여서 잘 모르겠다. 앞으로 토론을 통해 점검해 보려고 한다"고 했다.
'성분명처방'이라는 용어 자체가 내재하고 있는 갈등적 요소에다가 의약계가 한 자리에 모인 보기드문 자리여서 이날 토론은 뜨겁고 날이 섰다.
그러나 이날 토론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는 약제비 절감을 위해 성분명처방이나 대체조제가 확대되는 추세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십수년동안 단 한걸음도 내용을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걸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이는 의약간 진영논리가 여전히 평행선이었던데다가 오히려 의료계의 시선이 한층 더 멀어진 양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의미하면서도 아쉬웠던 토론이었다.

성분명처방 이렇게 좋은데?=이범진 아주대 약대 교수는 이날 '성남시의료원 성분명처방 실현방안'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시민들이 발의해 세우는 공공병원인만큼 의료공공성 확대를 위해 성분명처방을 의료원 운영조례에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성분명처방의 장점 혹은 필요성으로는 ▲경제적인 의약품 선택 가능 ▲약국과 병원의 불법적 담합행위 방지 ▲고가약 처방행태 개선을 통한 보험재정 절감 ▲약국을 찾아다녀야 하는 환자들이 편의성 증대 ▲폐기되는 불용의약품 축소 등을 제시했다.
이범진 교수는 "프랑스 등 27개 국가에서 성분명처방을 의무화하고 있고 이런 추세는 확대되고 있다. 12개 국가는 약사들이 동일성분조제(대체조제)를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건보공단도 건보재정 안정화와 약제비 절감을 위해 성분명처방 활성화 필요성을 주장하고, 리베이트를 수사했던 검찰조차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남시의료원과 같은 국공립병원, 보건소 등에서 성분명처방을 우선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범진 교수는 또 "정부는 제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유통되는 의약품 무작위표본조사를 통해 약효동등성을 점검하는 사후관리시스템을 시급히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모세 약사회 환자안전약물관리본부장은 "성분명처방은 환자안전 측에서도 중요하다. 환자들 스스로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어떤 성분인지 확인하기 쉽고, 중복처방 여부도 체크할 수 있다. 이번 발사르탄 사태의 경우 성분명처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제네릭 상품명을, 성분명 앞에 제약사 이름을 붙여 '00발사르탄' 식으로 바꾸면 회수가 훨씬 용이했을 것"이라고 했다.
조윤미 소비자권익포럼 운영위원장은 "지금도 성분명처방을 실시하는 데 법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많지는 않지만 매년 2만7천건 정도 처방이 이뤄진다"고 했다. 이어 "제네릭이 난립해 품질논란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의료기관과 제약사 간 사전결탁도 이런 현상을 야기하는 요인 중 하나라는 건 알아야 한다. 당장 성분명처방이 안되면 처방전에 상품명과 함께 성분명을 기재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동명 비즈엠디 대표는 "일본에서는 의사가 개업하기 전에 약사회를 먼저 찾아가서 근처에 처방약을 조제해 줄 약사를 소개해 달라고 한다. 고령사회인 일본에서도 저가 제네릭 활성화는 의료비 절감을 위해 사활적이었다. 의사들은 '후발약으로 변경 가능'이라는 문구를 처방전에 입력한다. '대체불가'를 쓰려면 사유를 일일이 기재해야 한다. 약사 뿐 아니라 이런 의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준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환자는 약값이 줄고 정부도 의료재정을 절감하고 있다. 제네릭 활성화로 일본내 제네릭사들도 좋다. 일본정부는 2020년까지 제네릭 대체율을 80% 이상으로 높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공감 못하는 의료계...정당성도 퇴색=성남시의료원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박응철 성남시의사회 고문(전 성남시의사회장)은 이날 '성분명처방이 환자에게 이로울까'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박응철 고문은 "성분명처방을 의약 간 대결구도로 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환자에게 이롭다면 못할게 없다"고 전제한 뒤, "상품명 약물과 성분명 약물은 차이가 있다. 주성분은 동일하지면 약물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부형물이나 기타 성분이 다를 수 있고, 일반적으로 상품명 약물이 성분명 약물에 비해 주성분 함량 비율에 대해 더 엄격하다"고 주장했다.
또 "성분명 약물들의 경우 상품명 약물에 비해 ±20 정도의 생체이용률 차이가 날 수 있다. 부형제로 어떤 게 들어있는 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성분명처방이 환자에게 이로울 게 없다는 걸 간접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박응철 고문은 "과거 국립중앙의료원 시범사업을 통해 성분명처방의 무의미성은 이미 검증됐다"고 말해, 사실과 다른 이해와 인식도 보여줬다. 어찌됐든 박 고문의 이런 시각은 성분명처방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전형적인 태도와 일치한다.
흥미로운 건 김종명 성남시의료원 공공의료정책연구소장의 토론이었다. 김종명 소장은 이날 "현재 성분명처방은 성남시의료원 내부 검토도 없었고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긋고 말을 시작했다. 또 "앞으로 의사 100여명이 채용될텐데 의사들이 처방권을 가지고 있어서 성분명처방을 하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김종명 소장은 그러면서 "개인적인 소견을 이야기하면, 의약분업 당시엔 성분명처방을 찬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성분명처방이 의료의 공공성에 기여할까 스스로 자문하면 '글쎄'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의약분업은 왜곡된 형태도 안착됐다. 기존약국은 동네약국이 중심이었다. 그래서 성분명처방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의료기관 앞으로 다 이동해 있다. 이런 구조 자체가 사실상 의료기관과 약국 간 담합이다. 성분명처방만으로 재정이 절감되는 것도 아니다. 더 강력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김 소장의 이런 의구심과 성분명처방 무용론은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과거 성분명처방에 우군이었던 개혁적 성향의 의사가 18년이 지난 현재는 부정론자로 인식이 전환된 것이다.
한번의 토론으로는 안된다=기자도 히트뉴스 편집국장 자격으로 이날 패널토론에 참여했다.
기자는 "고혈압치료제를 보면, CCB, ARB 등과 같이 작용기전이 같은 계열별로 약물이 구분된다. 또 같은 계열 내에서는 여러 성분이 존재한다. 가령 ARB 계열에는 로살탄, 이베사탄, 발사르탄, 텔미사르탄 등이 있는데 이중 어떤 성분을 선택하고, 2개 이상의 약물을 쓸 때는 어떤 성분들을 조합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게 약사들이 할 수 없는 의사들의 고유의 권한, 바로 처방권"이라면서 "이런 배타적인 처방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굳이 제네릭이 있는 성분의 특성상품까지 처방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어 "박응철 고문의 지적처럼 성분명처방은 의약 간 갈등의 문제로 접근하면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의약사가 환자에게 적절한 의약품이 전달될 수 있도록 상호 신뢰하고 협력해야 한다. 환자, 소비자의 시각에서 성분명처방의 의미를 들여다봐야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재정절감과 관련해서는 "성분명처방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해외에서처럼 최저가 대체조제 의무화와 같은 다른 제도적 장치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기자는 특히 "성분명처방 논란은 의약간 시각차가 너무 크고 갈등을 내재한 쟁점이어서 한번의 토론으로는 정리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박응철 고문의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에 대한 오해와 같이 이날 토론에서 제기된 주장들 중에는 '팩트체크'가 필요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다.
김상렬 좌장도 "토론과정에서 여러가지 쟁점들이 표출됐는데 시간관계상 오늘 정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번에 정리될 사안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두에 언급했지만 솔직히 성분명처방이 왜 성남시의료원에 필요한지, 이걸 토론의제로 삼아야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뜨거운 토론의제인만큼 가까운 시일 안에 오늘 다 못한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사회에서 제기할 테니까 다음번 토론회는 가급적 빨리 성남시의료원이 주최가 돼서 마련해 달라"고 김종명 소장에게 주문했다.
한편 은수미 현 성남시장은 지난 지방선거 운동기간이던 6월1일 저녁 7시 성남시약사회가 주최한 '시민건강권 강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성남시의료원에서 성분명처방을 도입하는 문제를 두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숙의과정을 거치겠다"고 약속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