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도매, 양업계 논리 다 일리는 있다

도매유통업계가 힘든 것 같다. 유통마진율(조마진율) 하락추세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한계상황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음 때문이리라. 세칭 병원직영도매와 CSO형(총판형) 도매를 제외한, 통상의 100대(매출기준) 도매유통사들의 2017년 조마진율(매출액총이익률)이 6.19%까지 떨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젠 어느덧 6.17%인 일본 수준이 됐다.(藥事핸드북2018 310쪽, 지호우社, 도쿄)

이와 같은 마진율 하락에 대한 우회적인 대책의 일환일까?

지난 4월 유통협회가 카드결제 문제의 포문을 열었다. 도매유통사들의 제약사들에 대한 의약품 구매대금 결제를, 약국 등 요양기관들이 하는 것처럼, 신용카드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제약사들에게 보낸 후, 곧이어 답변을 촉구하는 문서를 다시 내보낸 것이다.

이에, 제약사들은 고압적이라면서 불만을 쏟아냈다. 대금결제는 거래 당사자 간의 문제인데 왜 유통협회가 관여해 카드결제를 강요하는가. 유통협회의 답변요구에 응할 이유가 없다는 공감대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제약사들의 본산인 제약바이오협회도 지원사격을 했다. L이사장은 취임기념 간담회에서 "유통협회가 각 제약사에 공문을 보낸 것은 무리다. 각 회사들이 1대1로 협의하는 것이 맞다"고 피력했다는 것이다.(메디파나 뉴스 2018.04.26.)

제약협회가 거들자 유통협회가 즉각 반발했다. 협회가 회원사들의 절박한 건의를 대변하는 것은 '회원에 대한 당연한 의무'라는 것이다.

그런데 슬기롭게도 양 협회가 일촉즉발의 확전을 피했다. 지난 4월27일 유통협회장과 제약바이오협회이사장이 각각의 수행원들과 함께 회동 하고, '양측은 국내 의약품산업의 지속적인 성장·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해야 할 순치(脣齒)관계임을 재확인하고, 카드결제 문제를 비롯한, 소포장 문제, CSO 문제, 반품문제, 최저임금에 따른 유통비용 상승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한다.(메디파나뉴스 2018.4.30.)

그러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번 대화했다고 뽑은 칼을 그냥 어정쩡하게 거두어들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양쪽 주장을 음미해 보면 다 일리가 있다.

유통업계는 약국과 의료기관(이하 '약국 등')으로부터 신용카드로 대금결제를 받고 있다. 제약업계도 직거래 약국 등에는 꼼짝도 못하고 카드로 결제를 받으면서, 그러나 유독 유통업계한테는 여러 가지 이유 등을 들면서 카드결제를 받지 않고 있다. 이것은 실정법상 위법이고 형평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유통업계를 만만한 '을'로 생각하고 그러는 것 아니냐? 라는 것들이 도매유통업계 주장의 골자다.

제약업계는, '대금결제 문제는 상거래상의 문제이므로 거래 당사자 간에 풀어야 하고, 또한 상장 제약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9.7% 수준에 불과한데 또 카드수수료로 2~2.5%를 추가로 부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 이라는 시각을 일관되게 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양 업계 간의 그러한 팽팽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 중에, 무게 중심을 가르는 중대한 요소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여신전문금융업법'이다.

1997년8월28일 법률 제5374호로 제정되어 1998년1월1일부터 시행됐다. 국민의 금융편의를 도모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여 제정됐다. 동법률 제19조제1항을 보면 '신용카드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 한다'고 돼 있다. 또한 제70조제4항의 벌칙 규정은, 앞의 제19조제1항을 위반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신용카드 결제가 강제적 의무조항으로 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금결제 문제'가 비록 상거래로 비롯된 당사자 간에 풀어야 할 과제라 할지라도, 이 문제는 법치주의 원칙에 입각해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싫지만 저촉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강제돼 있다는 점을 제약업계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대금결제 문제는 반드시 협상으로 풀었으면 한다. 재판(裁判)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국내 의약품(洋藥)산업 역사 70여년(1945년부터)동안 양 업계가 항상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일컬어 왔던 '순치의 신뢰관계'는 그 문제가 법적으로 가는 순간 허망하게 무너질 것이 빤하고, 그렇게 되면 의약품을 원활하게 돌게 하는 산업간 제대로 된 역할분담의 유통시스템이 망가져 결국 의약품산업계 전체는 물론 국민에게까지도 손해가 적지 않게 미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연할 것이 있다. 대금결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 타결의 실마리는 오로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뿐이라는 점을 새겨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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