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 KRPIA 부회장
"각 주제를 펼쳐놓고 볼 때, 우선 순위에 있는 것은 '약가'입니다. 한국에서 제약바이오 산업이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은 자명합니다. 약값이 무조건 낮아야 한다는 논리로 신약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제도와 환경이 만들어지면, 국내 기업 역시 (신약을) 개발하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것입니다."
다양한 신약을 가진 글로벌 제약사의 의견을 모으고, 그들의 의견을 일정부분 대변해 주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의 부회장 자리에 누가 올지 업계에 관심이 쏠렸고, 드디어 지난해 9월 이영신 부회장이 취임했다. 미국약물정보학회(DIA) APAC & India 대표와 ISS (International Scientific Standard) CEO를 역임한 그는 업계에 친숙한 인물이 아니었다. 때문에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한국 지사의 글로벌 제약회사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가 KRPIA 각 회원사의 어려움을 잘 살피고, 의견 조율을 할 수 있을지 말이다.
특히 국내의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내에서 '적정' 약가를 받아, KRPIA 회원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까지 높이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임무다. 다국적제약 출입 기자모임은 이영신 KRPIA 부회장을 만나 적정 약가문제부터 최근 인수합병(M&A) 등으로 인한 노사갈등 문제까지 다국적 제약사 앞에 놓인 문제에 대해서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1. 약가 이야기 – '적정 약가' 국내산업 육성 위해서도 필요
-제도를 바라보는 관점 등 다양한 부분에서 회원사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모여 있는 협회의 부회장으로 지난 1년간 근무하면서 느낀 업계에 대한 인상이 궁금합니다.
"현재 협회에는 7개의 위원회(Committee)가 있고, TFT와 워킹 그룹까지 합하면 약 50개 모임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각 주제들을 펼쳐 놓고 볼 때 우선 순위에 있는 것은 '약가'입니다. 약가는 KRPIA 회원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중요한 아젠다일 것입니다.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 100대 기업 안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또 해외 기술수출 또한 조 단위 수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을 단순히 한국만의 산업으로 보기보다는, 글로벌 시각에서 봐야하는 상황입니다. 약값은 무조건 낮아야 한다는 논리로 신약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제도 및 환경이 만들어 지면, 국내 기업 또한 신약을 개발하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것입니다.
혁신적인 신약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선순환이 이루어지려면 적정한 약가가 담보돼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불이 넘어섰고 이제 개발 도상국의 지위를 버리고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적정 약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의 경우 OECD 평균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OECD 약가 수준이 적정한 약가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OECD 약가 수준을 가늠할 방법이 있습니까? 향후 관련 보고서를 또 낼 계획입니까?
"보고서를 다시 준비할 계획은 없으며, 데이터에 한계가 있기는 하나 OECD 약가에 대한 통계치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혁신의 가치를 인정해달라는 것은 신약을 개발하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목소리입니다. 신약의 가치에 대하여 언제든 토론하고 협의해 나갈 것입니다."
정부와 회사가 생각하는 '적정 약가'에 대한 견해를 좁혀 나가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와 함께 (졸겐즈마와 같은) 억단위를 훌쩍 넘는 약제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초고가 약제에 대해 회원사와 정부 사이에서 어떤 조율을 할 수 있을까요?
"고가의 약제들은 계속 나올 것입니다.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데 평균 약 3조의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지속적으로 재투자하여 연구개발(R&D)이 이뤄지려면, 혁신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신약의 혁신성, 사회적인 필요성 등을 고려해 ICER 임계치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정부, 회사, 환자가 모두 상생하는 방안은 '위험분담제'라고 생각합니다. KRPIA는 위험분담제가 보다 탄력 있게 운영되길 바라며, 초고가의 약제도 위험분담제 틀 안에서 합의를 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위험분담제의 범위가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전문가는 신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약가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네릭 사용과 맞물려, 만성질환 치료 등 불필요하게 약에 들어가는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고요. 하지만 KRPIA는 제네릭에 대한 입장은 잘 밝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네릭에 대해서는 협회에서 입장을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국내 제약사의 경우 아직까지는 신약 보다 제네릭 비중이 높기 때문에 다른 이해관계에 민감한 아젠다를 건드리면서까지 협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네릭은 국내 제약산업의 근간이고, 국내 제약사들의 재원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네릭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국내 제약회사들이 의약품 생산시설을 갖고 있는 건 큰 장점입니다. 좀 더 넓은 차원에서 제네릭 제품을 해외로 더 많이 수출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건강보험공단-제약단체 간담회 직후 공단의 간담회 운영방식, 지침개정 과정의 불투명성, 약가협상 과정의 불합리성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서를 공단 측에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요?
"간담회 이후 참석자들이 많이 실망했습니다. 사전 요청에도 불구하고 간담회장에서 지침을 공개 후 현장에서 회수해, KRPIA는 지침에 대해 제한적인 의견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침은 상위 기준 및 법령이 작동하게 하는 실질적인 규정이므로, 명확히 공개되어 의견 수렴절차를 거쳐 개정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공단에서 분기에 한 번 정기적으로 간담회를 진행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향후 간담회에서 발전적인 개선방안을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진행 방식에 대해서도 공단과 함께 고민해봐야 할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 탄력적 '위험분담제' 운영으로 신약 접근성 높여야
위험분담제의 탄력적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각 나라별로 위험분담제를 운영해 온 방식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것을 국내에 도입할 수 있는 지, 국내 도입 시 변형이 필요한지 등을 살펴봐야 합니다. 일례로 호주의 위험분담제는 탄력적으로 운영돼, 환자가 혜택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재정적인 면에서도 절약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논문에 따르면, 사망률이 1% 감소할 때마다 국가 전체가 누리는 사회적 가치는 최대 약 126조원으로 추정됩니다. 아울러, 약가를 단순히 숫자로만 보기 보다는 사회적인 시스템에서 거시적으로 노동력 상실 및 환자 가족의 생활 등을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위험분담제의 유형 범위를 넓힌다는 의미인가요?
"범위도 넓히고, 유형도 다르게 가져가는 탄력적 운용을 제안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단이나 심평원, 복지부에서 제약사들의 제안을 보다 더 이해할 의향이 가지는 지입니다. 정부 측 입장에서는 간단한 정책 모델을 가져가고 싶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언제든 토론하고 협의해 나가겠습니다."
(최근 면역항암제 등이 등장하면서) 동일 약제에 대한 적응증별 약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국적 제약업계의 기조는 정해지지 않은 것인가요?
"동일약제에 대한 적응증 별 약가는 추가 적응증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입니다. 호주 등 해외의 여러 국가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며 해당 내용에 대해 심평원과 공단에 이미 의견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단일 약제에 대해 단일 약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내 시스템 상에서 당장 적응증별 약가를 도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향후 제도 도입을 위해 지속적으로 정부와 협의해 나갈 예정입니다."
#3. 인수합병으로 인한 구조조정, 협회가 직접 나서기 어려운 점 있어
지난해 안타깝게도 회원사 임직원 자살사건이 있었습니다. 구조조정이 있을 때마다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각 회원사의 복지 부분에도 협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마음 아픈 일입니다. 가족분들이 잘 견뎌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복지 부분은 각 회원사에서 개별적으로 운영되는 부분이므로 잘 몰라서 말씀드리지 못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부 회원사에서 본사 차원의 인수합병(M&A)이 이뤄짐에 따라 임직원들의 소속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임직원들의 동의도 없이 소속이 바뀌는 것에 대해 협회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M&A 결정은 본사 차원에서 이뤄집니다. 이러한 M&A는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국내기업은 M&A 케이스가 많지 않은데, 본사 소재국의 환경과 문화가 우리와 다른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각 회원사의 운영에 관한 부분이므로, 협회의 테이블에서 논의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HR 위원회의 아젠다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협회의 특성상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은 점은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국적 제약사에 대한 이미지는 국내에서 여전히 부정적인 편입니다. 협회 차원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기획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실제 모습이 그대로 보여 지지 않고, 이미지가 좋지 않은 편이라 아쉽습니다. 한번 만들어진 이미지를 바꾼 사례가 있나 찾아보니 많지 않았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자주 논의합니다. 이 부분은 기자님들께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모습을 미화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회원사들과 함께 모금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얼마의 비용이 모였고, 어느 곳에 기부했는지 보다는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의미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회원사들과 정기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다른 협회와 함께 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