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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신약개발 이슈와 국내 업계 동향

이제 신약개발 분야에서도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한 추론을 할 수 있다는 인공지능(AI)의 효용성 자체에 의문을 품는 이는 많지 않다. 다만 현 시점에서 신약개발의 '어느 단계'까지 인공지능을 활용할 지, 어떤 '종류'의 의약품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히트뉴스는 현 단계에서 업계에서 주요하게 회자되는 인공지능 신약개발 이슈와 국내 제약업계는 인공지능 신약개발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본다.

 

임상 1상 진입 AI 신약개발 회사 '엑센시아'를 보는 다양한 시선

올해 2월 AI 신약개발 기업 엑센시아(Exscientia)가 도출한 후보물질이 임상시험 1상에 진입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Exscientia는 일본 제약회사 스미토모(sumitomo)와 공동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강박장애 치료후보물질(DSP-1811)을 약 1년여만에 도출했다고 발표했다. Exscientia는 2012년에 창업한 회사로, GSK, 로슈, 바이엘, 세엘진, 사노피 등과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개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보통 전임상 단계에서 최종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데는 5년 이상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당시 다수의 언론은 Exceientia의 성과에 대해 인공지능을 활용해 신약개발 기간을 단축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엑센시아(Exscientia) 신약개발 기술[출처=엑센시아 홈페이지]

그러나 일각에서는 회사의 성과를 좀더 면밀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에 데릭로우(Derek Lowe) 박사의 의견을 인용해 엑센시아 성과에 대해서 "이번에 발굴된 물질은 혁신신약(first in class) 물질이 아니며, DSP-1811이 표적으로 하는 화합물에 대한 연구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아직 인공지능이 신약개발 전체 과정에서 큰 도움은 못 된다"고 설명했다.(관련 내용 링크 참조)

 

다국적사와 손잡은 인공지능 신약개발 기업들 눈 여겨 봐야

인공지능 신약개발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보는 주된 시선이 그들의 구체적인 기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업 역시 그들의 사업 모델 자체를 공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보통 신약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회사와 협업하고 있는 회사들이 이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는다.

최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인공지능 신약개발 기업의 경우)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면 사업 경쟁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해당 기업 외부에 있는 입장에서는) 결국 다국적 제약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또 "아무리 인공지능 신약개발 회사라고 할 지라도 (다국적사의) 후보물질 파이프라인을 기술이전해야 하는 이상 적어도 다국적 제약사에게는 자기 기술을 공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관점에서 AI 신약개발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아톰와이즈(Atomwise), 베네볼런트(BenvolentAI), 엑센시아(Exscientia) 등이 있다. 이들 모두 글로벌 제약회사와 공동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아톰와이즈는 애브비, 머크, 바이엘, 릴리,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회사와 협업을 맺고 있다. 또 국내 바이오벤처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와도 펠리노저해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톰와이즈 파트너사들[출처=아톰와이즈 홈페이지]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아톰와이즈 협력연구 진행상황과 관련해 히트뉴스에 "펠리노를 포함한 여러 표적 단백질을 대상으로 하는 신약 후보물질 관련 과제들을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첫 번째 타깃 관련 과제 이후에 두 번째 타깃 과제에 착수했으며, 아톰와이즈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서 후보물질들을 더욱 정교화 해나가고 있으며, 향후 최대 13개 과제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베네볼런트 AI는 얀센의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로 개발 중이던 약물을 파킨슨병 치료제로 개발로 전환하는 약물재창출(drug repositioning) 전략을 펴기도 했으며, 지난해 아스트라제네카와 만성신부전과 특발성폐섬유증 치료제 공동개발 계약을 맺기도 했다.

 

국내제약회사, 자체 플랫폼 구축부터 AI회사 협력까지

국내 제약회사도 인공지능 신약개발에 있어서는 글로벌 회사와 함께 외부 협력 네트워크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체 인공지능 신약개발 플랫폼도 구축해 나가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AI 신약개발 기업 투자아(twoXAR) 협력에 앞서 지난 2018년 AI 기반 '약물설계(Drug Design) 플랫폼' 개발했다. 이는 국내 최초로 AI 기반 약물설계 자체 플랫폼을 개발한 사례다. 이 플랫폼에는 지난 20여년간 회사가 축적해 온 중추신경계에 특화된 연구 데이터를 학습한 신약개발에 최적화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적용됐다. 이는 SK C&C와 사업계약 체결 후 협업을 통해 완성됐다.

SK바이오팜의 AI 약물설계 플랫폼 기술은 △AI 모델(약물특성예측/약물설계) △화합물 데이터 보관소 △AI 모델 보관소로 구성된다. AI 모델은 SK C&C의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법을 통해 개발됐다. 화합물의 ADMET(흡수, 분포, 대사, 배설, 독성) 프로파일 및 약물작용 기전을 확인 할 수 있는 ‘약물특성 예측’ 모델과 이 예측 결과를 활용해 데이터에서 약물의 숨겨진 패턴과 속성을 파악해 새로운 화합물을 설계 및 제안하는 '약물설계' 모델로 구성된다.

'화합물 데이터 보관소'는 화합물의 실험 정보와 특허 정보가 포함된 내외부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AI 모델의 학습데이터로 가공해 연구원들이 검색, 활용이 가능하도록 구축했다. 화합물 데이터 보관소에서 제공되는 최신 학습 데이터는 'AI 모델 보관소'에 탑재되어 'AI 모델'을 고도화하게 된다.

SK바이오팜은 개발된 AI 기반 약물설계 플랫폼과 함께 'SKBP 디스커버리 포털 시스템'을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을 효율적으로 탐색, 설계하고 이에 대한 연구 가설을 제시할 계획이다. SKBP 디스커버리 포털 시스템은 신약개발 연구데이터와 수집·통합·검색 및 활용 목적의 어플리케이션들로 구성된 SK바이오팜의 신약 연구개발 통합시스템이다.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이사는 지난 15일 열린 상장 기자간담회에서 "중추신경계 특화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3만개 보유하고 있으며, 상업화 된 라이브러리와 알려져 있는 가상 라이브러리 35만개를 (AI 플랫폼을 통해) 돌릴 수 있다"며 "AI 플랫폼도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를 토대로 플랫폼 디스커버리 사용할 것이며, SK 홀딩스와 많은 벤처와 협업을 통해 혁신 연구개발(R&D) 플랫폼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국내 제약회사의 AI 신약개발 협업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유한양행(사이클리카와 /신테카바이오) △한미약품(스탠다임) △일동제약(심플렉스) △보령제약(파미노젠) 등이 있다.

유한양행은 캐나다 바이오텍 사이클리카(Cyclica)와 공동연구 계약을 맺고 자사 파이프라인 2개에 AI 신약개발에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사이클리카는 앞서 바이엘과도 협업을 맺은 바 있다.

사이클리카의 AI 기반 후보물질 발굴 플랫폼(Ligand DesignTM, Ligand Express)은 약물표적에 결합하는 후보물질들의 약리학적, 물리화학적 및 체내동태적 특성까지 선별한다는 점에서 다른 AI 신약개발 플랫폼들과의 구별되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한미약품은 AI 기반 신약개발 전문기업 스탠다임과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고, 신약개발 초기 연구단계에서 AI 활용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고 지난 1월 밝혔다. 이번 업무협약에 따라 두 회사 협력으로 도출된 신약 후보물질은 한미약품 주도로 상업화 개발(임상/생산/허가) 단계를 밟게 된다.

스탠다임은 인공지능 기반 선도 물질 최적화(AI-based lead optimization) 플랫폼인 '스탠다임 베스트(Standigm BEST)' 등 자체 개발 AI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 항암, 비알콜성지방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스탠다임은 신테카바이오에 이어 인공지능 신약개발 기업으로 올해 안으로 상장이 예측되는 기업이다. SK케미칼과 공동 연구를 하던 중 SK그룹은 스탠다임에 투자를 했으며, 지난해 말 SK 그룹은 100억원의 지분 투자를 했다. 당시 스탠다임은 카카오벤처스와 LB인베스트먼트 등 다른 투자 기관까지 포함해 총 26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일동제약은 인공지능 신약개발 기업 심플렉스와 지난 2018년 협업을 시작해 면역항암 후보물질 15개를 도출했다. 권진선 일동제약 중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히트뉴스와 지난해 인터뷰에서 "약물 구조와 활성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다양한 인공지능 활성 예측모델을 보유한 국내 기업 심플렉스(CIMPLRX)와 협력하고 있다"며 "현재 면역항암제 신약 선도물질 15개를 발굴해 외국 시험기관에 효력 평가를 의뢰한 상황인데, 이달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면 선도물질을 신규 약물후보로 최적화시켜 나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령제약파미노젠 보유한 딥러닝 기반 플랫폼을 활용해 타겟 단백질에 대한 새로운 화학구조 발굴 및 약물 최적화 작업을 거쳐 다양한 신약 후보물질을 도출할 계획이라고 지난 25일 밝혔다. 구체적으로 파미노젠이 보유한 약 200억건의 화합물 구조와 약 16만건의 약물 표적 단백질에 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의 물성과 독성 예측을 통해 약물 최적화 연구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국내 인공지능 신약개발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며, 결국 인공지능 신약개발이 정확한 논문을 출판하거나, (기술 공개 등을 이유로) 논문 출판이 어렵다면 다국적사와의 협업을 통해 마일스톤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며 "단순한 업무협약(MOU)가 아닌 진정한 공동연구를 통해 협업 모델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관건은 '데이터'…"정부 주도 임상 데이터 제공해야"

정부는 올해 인공지능 신약개발플랫폼 구축사업에 지난해 50억원에서 10% 증액된 55억원을 배정했다. 또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지난해 5월 '인공지능 신약개발 지원 시범사업'(2억6000만원) 공고를 내 작년 12월 31일까지 사업을 지원했다.

해당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수요기반 국내 제약사, 인공지능개발사 간의 협업 구조 지원 △제약사는 개별적 신약개발 적용 목표 제시 및 특정 고유 정보 데이터제공으로 인공지능개발사에 플랫폼 요구 및 예산 지원 △Public 모델 구축을 위한 인공지능개발사/학·연 간의 협업 지원 △국내 제약사의 private data를 활용한 public 모델 개선 및 응용을 위한 인공지능개발사/학·연 간의 매칭 지원 △지속적인 해외 첨단기술 및 시장 동향 조사 △인공지능 신약개발 관련 연구과제 지원 산학연 네트워킹 포럼 개최 △중장기 추진계획 구체화 로드맵 제시 등이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보건산업진흥원은 인공지능(AI) 신약개발지원센터를 공동 설립하고 지난해 3월 제약바이오협회에서 개소식과 현판식을 진행했다.

이어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SK C&C(대표이사 박성하)는 지난 5월 '개방형 인공지능(AI) 신약개발 인프라 구축 및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기술 협력 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를 위해 AI신약개발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신약개발 개방형 인프라 구축 △신약 개발을 위한 빅데이터 확보 △빅데이터 분석 기술과 관련 서비스 공유 △제약사 대상 교육 및 서비스 홍보 지원 등 상호 협력 방안들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 사업 내용으로 산업계 간 네트워크 기회 제공, 세미나 개최, 중장기 로드맵, 공공 데이터 구축등이 명시돼 있지만, 정작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 주도 인공지능 사업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오픈 API 등에 대한 정확한 범위를 규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오픈 API는 데이터 또는  플랫폼을 외부에 공개하고, 외부 프로그램 개발자와 사용자가 이를 활용해 새롭게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공지능 신약개발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의 경우 매우 복잡한 수학적 모델이기 때문에 인공지능 개방형 API를 마련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특히 신약개발은 질환 데이터, 의약품 데이터 등 데이터 형태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하나에 담은 API를 구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정부 역할은 임상 데이터를 각 업계가 사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정부는 데이터 수집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임상을 진행할 때 축적된 데이터에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이러한 데이터를 공공재 형태로 만들어 주는 작업을 정부가 한다면 인공지능 산업계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제약회사마다 신약개발에 대한 관심도와 참여도가 다를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인공지능 신약개발에 관심이 있는 회사들의 요구를 반영할 지, 모든 제약사를 아우를 수 있는 인공지능 신약개발 사업을 진행할 지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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