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제약바이오와 CRO 100% 협력의 조건①

#프롤로그, HIT는 왜 'CRO'를 화두로 삼았을까?

히트뉴스는 신약개발 임상개발에서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절대우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진국도 신약 개발의 실패와 그 교훈 위에서 발전했습니다. 국내 바이오벤처가 CRO 서비스를 잘 활용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업계 전문가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해결 과정을 모색해 보려 HIT 대담을 준비했습니다. 물론 이번 대담에서 '정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험난한 신약개발 여정의 도전자들에게 '머리카락 한올 정도의 영감'은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히트뉴스는 지난달 25일 바이오벤처 관계자와 외국계 CRO 대표가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선진 플랫바이오 회장 진행으로 지동현 커넥트클리니컬사이언스 대표,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 이소라 시네오스헬스 대표가 자신의 관점에서 바이오벤처와 CRO 협력을 이야기 했습니다.

임상수탁기관(CRO)의 업무 수행 범위가 비임상부터 임상까지 매우 넓은데 따라 이번 대담에선 CRO 개념을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연구기관(Clinical Research Organization)'으로 한정했습니다.

김선진 플랫바이오 회장, 지동현 커넥트클리니컬 사이언스 대표, 이소라 시네오스헬스 대표, 이정규 브릿자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왼쪽부터).
김선진 플랫바이오 회장, 지동현 커넥트클리니컬 사이언스 대표, 이소라 시네오스헬스 대표, 이정규 브릿자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왼쪽부터).

#1. 임상 프로토콜의 주체는 '스폰서'

 

김선진 플랫바이오 회장(전, 한미약품 신약개발 본부장)

김선진 플랫바이오 회장(김선진)=신약개발은 답이 없는 시험 문제를 푸는 과정입니다. 누가 덜 틀리냐가 관건이지, 정확한 답을 내는 게 아닙니다. 관련된 여러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첫 질문으로 임상 프로토콜의 주체는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 봅시다. 물질에 대하여 가장 잘알고 있는 사람은 스폰서이므로 임상시험에서 이 물질의 특징과 장점을 제일 잘 살릴 수 있는 필요한 모든 정보를 CRO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죠.

▶지동현 커넥트클리니컬사이언스 대표(지동현)=임상 프로토콜의 주체는 '스폰서(개발사)'입니다. 개발사가 임상시험 프로토콜의 주요 콘셉트와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소라 시네오스 헬스 대표(이소라)=스폰서(제약회사, 바이오벤처 등 신약개발 회사)가 임상 프로토콜, 임상개발계획(Clinical Development Plan; CDP) 및 운영 관련된 업무를 CRO에 외주를 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모든 임상의 주체는 '스폰서'입니다.

국내 스폰서가 임상에 대한 뚜렷한 방향성이 없을 때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CRO가 임상과 관련된 업무 전반을 맡아서 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방향성 없이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본래 계획에 맞게 업무가 수행되는지 비교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국내 스폰서 분들께 'CDP에 대한 개념'은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심지어 CDP 수립 업무 조차 CRO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폰서가 명확한 방향성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CRO가 외주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지동현 커넥트클리니컬 사이언스 대표(전, KoNECT 이사장)

▶지동현='명확한 방향성'을 세우라는 말이 국내 스폰서가 듣기에 막연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또 방향을 제시한다면 그 다음부터 모든 것을 CRO가 해 줄 것이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CRO는 결국 스폰서가 요청한 것을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임상시험을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한다면, 건축주가 건설사에 건축을 의뢰할 때 설계도를 주게 됩니다. 건축은 안전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감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임상시험에서도 환자의 안전과 데이터의 신뢰성에 대하여 GCP 준수를 감독하는 감사(audit)나 감독(inspection) 등의 법적 절차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CRO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임상시험의 운영의 효율성이나 임상시험 중간에 생기는 개발의 방향이나 효능의 평가 등과 연결된 문제해결에 대해서는 사실 회사의 관심사이지, CRO가 나서서 먼저 챙길 일은 아닙니다. CRO의 비즈니스 모델은 서비스 아이템 혹은 시간당 비용(costing)과 (프로토콜 등 업무) 변화에 따른 명령(change order )입니다. 회사가 임상시험 프로토콜이나 임상시험 운영과 관련한 변경이나 추가를 많이 하면 할수록 , 비용과 시간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발계획과 관련해서는 수정을 최소화 하기 위하여, 임상시험 계획(CDP)을 처음부터 면밀히 만들고 CRO가 이해하는 언어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과, CRO의 임상시험 운영 등을 oversight 할 수 있는 내부역량이 중요합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전, 크리스탈지노믹스 CFO)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이정규)=실제로 내부에 임상을 운영할 인력이 있어도, (저희 경험에 비춰) 규모가 큰 CRO와 일을 해 보면 (정보량 등으로 인한) 간극을 느끼기도 했어요. 오히려 컨설팅 기능이 강화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CRO와 수월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죠. 물론 비교적 임상 디자인이 쉬운 임상 1상이긴 했지만요.

(우리도 후기 임상을 준비하면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체계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국내 업계에서 CRO와 스폰서가 서로를 불신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이소라=스폰서와 CRO 간 파트너십은 정말 중요하죠. 이런 파트너십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초반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초반에 두 주체가 임상개발 혹은 운영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서, 앞으로 임상을 어떻게 진행할 지 논의를 해야 합니다.

최대한 스폰서가 CRO에게 자신들의 방향성에 맞게 임상 각 지점 별로 꼼꼼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추후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어요.

▶이정규=현실적으로 초기 바이오텍 입장에서 CRO에게 모든 것을 확인하고 넘어갈 여력이 충분하진 않습니다. CRO 쪽에선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체크박스를 잔뜩 보내오면, 초기엔 사실 막막했습니다.

결국 컨설팅 기능이 강한 작은 CRO와 일을 하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우리 회사 모델자체가 외부 의존도가 높았고, (최근엔 나아지긴 했지만) 초기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조차 많지 않았어요. 투자가, CRO, 임상컨설팅 인력 자체가 없었거든요.

우리는 비교적 CRO와 좋은 파트너십을 맺으며, 그 동안 잘 버텼지만 아직 국내 업계 전반에는 CRO와 스폰서 간 불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폰서 입장에서 CRO 가격은 어차피 올라가니, 무조건 가격을 내리라는 말도 돌고, CRO 역시 스폰서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불신을 해소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소라 시네오스헬스 대표(전, 한국화이자제약 북아시아 임상연구 총괄) 

▶이소라=중요한 지적입니다. 두 주체 간 파트너십을 위해 초반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툭 터놓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CRO는 스폰서에게 자신들이 임상을 수행하는 과정을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국내 스폰서 간 경험치가 달라, 스폰서 역시 CRO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이렇게 논의없이 넘어가는 과정이 쌓일수록 불필요한 오해가 생깁니다.

스폰서 역시 그 입장에서 주요하게 강조할 부분, 예를 들어 투자와 직결된 마일스톤, CDP 방향성 등에 대해 말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초기엔 될 수 있으면 대면 미팅을 하는 걸 권장합니다. 글로벌 CRO의 경우 대면 미팅이 프로세스화 된 곳도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 회사에는 '트러스티드 프로세스(The Trusted Process)라는 프로세스화 된 미팅이 있습니다. '퀵 스타트 캠프(QuickStart Camp)'를 통해 프로젝트 매니저(PM), 임상시험모니터요원(CRA), 통계팀,  DM팀 등 해당 연구 관련 모든 담당자들이 내부 미팅을 진행해 전체적인 세부 임상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후 스폰서를 초청해, 관련 미팅을 다시 진행하면서, 자세한 임상 계획 및 과정, 두 주체 간 소통(communication) 주기를 어떻게 가져갈 지 알려드리고, 논의합니다.

▶지동현=CRO 선정과정을 잘 이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CRO를 모집하는 제안요청서(RFP) 과정을 통해 회사의 기대치를 스스로 정리해 보고, 지원하는 CRO들도 회사의 기대를 잘 이해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대치가 명확하고 자세할수록 CRO의 제안(proposal)이 달라질 수 있고, 또한 CRO가 만들어 오는 proposal을 가지고 후보 CRO와 대면으로 질의응답하는 세션을 가지면, 해당 CRO의 문화나 역량에 대해서 잘 알게 되고, CRO도 의뢰사의 제품이나 니즈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되어, 추후 change order를 최소화 할 수 있겠습니다.

 

#2. 임상을 이끌 수 있는 'CMO'가 필요하다

 

▶김선진=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앞서 이야기가 잠깐 나오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신약개발 성공 스토리가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또 다른 화두로 '전문가'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환자들을 진료하는 영역과 신약개발을 위한 개발임상 영역은 엄연히 다릅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신약개발 임상을 모니터링, 오디트(audit), 집중 소통(concentrate communication)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툭 터놓고 한번 이야기해 보죠.

▶이소라=앞서 강조한 임상에 전반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최고의학경영자(CMO; Chief Medical Officer) 역할이 필요합니다. CMO의 리더십 하에서 CDP를 수립하면, 적재적소에 CRO를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김선진=과연 국내에 신약개발을 직접 해 본 전문인력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보통 임상시험계획승인(IND)을 준비할 때, 그리고 임상시험을 기획하고 디자인할 때 실제로 임상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실무를 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 게 관건입니다.

▶이정규=초기 후보물질 도출, 전임상, 임상 과정에서 전임상 단계를 했던 사람이 국내에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임상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임상시험에 대한 여러 문제(issue)가 발생했습니다. 최근 이런 상황이 점점 개선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직도 불확실성과 변수가 많은 실제 임상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아직 많습니다. 정확히 말해서는 임상 현장을 모른다는 표현이 적합합니다.

▶지동현=한 회사 내에서도 임상팀과 연구소 사이의 유기적인 협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소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하고 임상팀에 넘기면, 그 때부터 임상이 시작되니, 임상팀이 모두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개발은 '끝을 생각하고 시작하라(Begin with the end in mind)'라는 말처럼, 임상단계 전의 연구부터 임상시험과 시장을 염두에 둔 개발이 필요합니다.

▶이정규=아직까지 국내 신약개발은 후기 임상개발을 제대로 해 본 곳은 거의 없습니다. 임상시험과 초기 연구 인력 간에 이해도 역시 높지 않은 편입니다. 이 둘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인력(physician scientist, medical scientist)이 필요합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경험을 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CMO가 내부에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인력 자체를 모시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CRO와 논의를 거쳐 자문기관(advisory board)을 구성했습니다. 자문단구성 역시 임상의와 의과학자를 적절히 구성해 개발 중인 약물에 대한 핵심 포인트를 잡아 IND를 제출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내부 CMO를 영입하기 어렵다면, 해외 있는 분들에게 개발 중인 물질의 메커니즘, 독성, 안전성 프로파일, 경쟁 시장에 대해 발표한 뒤, 사전질문을 통해 핵심이 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CRO 역시 자문기관 구성을 준비해 주는 것도 추천합니다.

▶이소라=국내 기업 중에 CDP 개발이나  (자문단 구성의 필요성을 간과하는) 기업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신약후보물질 자체가 좋아도, 임상개발 계획에 대한 큰 그림이나 명확한 목표없이, 단순하게 미국 IND 승인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약제가 △시장에 출시되면, 어떤 약과 경쟁하는지 △어떤 적응증으로 어느 국가에서 허가를 받을 지 △유효성과 안전성, 더 나아가 향후 허가와 보험 적용을 위해 어떤 임상 디자인을 수립할 지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와 계획이 있어야 성공적인 임상개발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에 기반해 필요한 경우  자문단도 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문단 구성조차 어렵고, 임상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한 경우라면 차라리 몇몇 CRO라도 불러서 요구할 수 있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정도라도 묻는 작업이 선행돼야 합니다. 특히 글로벌 CRO는 신약개발 전주기를 경험해 봤기 때문에, 관련 조언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지동현=국가임상시험재단 재직할 때 바이오벤처 임상개발 자문을 하면서 20회 정도 Advisory Board Meeting(ABM)을 경험했습니다. ABM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면, 회사가 임상계획을 위하여 무엇을 물어볼지를 미리 준비해 자문단이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닌, 회사가 알기 원하는 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바이오텍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자문 의뢰사는 ABM을 구성할 때, 이미 그 회사의 자문위원으로 계시는 의사를 고집하기도 합니다. 다른 physician이 다른 의견을 낼 경우, 그 것을 이미 기존 자문의사와 의논한 계획에 어떻게 추가 반영할 지에 대한 어려움이나 두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다른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의사 자문가의 의견을 바로 프로토콜에 적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의사들의 조언의 가치는 의료현장과 환자의 니즈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들에서 필요한 답을 도출하여 임상개발 전략을 짜는 것은 또 다른 전문분야입니다.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의 자문을 잘 판단해서 들어야 합니다. 또 될 수 있으면 회사와 독립적인 사람에게 의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정규=동의합니다. 신약개발의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는 프로젝트 책임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앞서 나온 것처럼 아직 신약개발 경험이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예전만 하더라도 독성(tox)이 조금만 나와도, 물질(molecule) 자체를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에서 버려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미국을 보니, 그런 것도 아니더군요. (신약개발 과정이) 이미 물질은 정해져 있고, 이에 따라 적응증(indication)을 찾아가는 가는 것임을 알게 됐어요.

▶김선진=사실 신약개발에서 독성은 회피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핵심은 효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적응증과 요법(regimen)을 개발하면 됩니다. 결국 (적응증 등) 확대(expansion)가 얼마나 될 수 있는지 보는 것이 미국에서 이뤄지는 신약개발 임상 방식입니다.

▶지동현=자문 경험이 아직은 짧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바이오텍들에게 적응증 선택에 대해 전략적인 조언을 하는 경우, 실제 개발에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그 조언에 동의하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시장의 기대가, 스마트한 개발 전략, 좋은 데이터의 발표 등 개발 프로그램의 우수성 보다, 외부에 크게 어필할 전략을 원하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무엇이 회사의 미래에 중요할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요.

CRO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CRO도 (업계에 털어놓은 불만에 대해) 억울한 면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고심해서 가져간 임상 설계도를 처음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자신들이 의도한 바와 다르다고 말하기도 하니깐요.

▶김선진=지금 한국의 신약개발 상황을 보면, 독성연구, 제조품질관리(CMC), 약동학적(PK) 연구 등은 이미 비임상시설관리기준(GLP) 시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표준화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효능시험(efficacy test)은 엉망입니다.

저도 몇몇 업체에 자문을 해주면서, 과연 어떤 근거로 해당 적응증에 대한 임상을 준비하는 지 고개를 갸웃할 때도 있습니다. 또 이런 데이터 패키지를 가지고 CRO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지동현=(이소라 대표에게 묻고 싶다.) 혹시 의뢰자에게 주요한 결정을 요청했을 때, 업계에서 '그래서 CRO를 쓰는 것'이라는 답을 들은 적이 없나요?

▶이소라=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스폰서 측에서 저희에게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CMO 혹은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해주실 내부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내부에 CMO를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만 외부 컨설턴트를 고용할 때, 그들의 권한과 책임 범위를 명확하게 해 주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또 다양한 CRO와 사전미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브릿지바이오도 처음 미팅할 당시와 마지막 미팅할 당시 완전히 달랐어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김선진=CRO에게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네요. CRO를 운영하며, 스폰서가 가져온 효능 데이터가 도저히 (임상시험에 진입할 정도의) 확신이 서지 않은 경험이 있나요? 이럴 때는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나요?

▶이소라=그런 경험이 드물긴 합니다. 기본적으로 유효성 데이터는 임상 IND 제출 자료의 일부로 포함되므로 규제당국의 관점에서 해당 데이터를 면밀히 검토하고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은 스폰서와 미리 충분히 토의를 합니다. 또한, 시장 성공 가능성을 역으로 질문하기도 합니다. 임상을 진행해 어느 정도 허가를 받을 만한 데이터를 얻어도, 경쟁 약물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면 (신약개발 자체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거든요. 해당 신약후보물질의 포지셔닝에 대해 토론하고 이를 임상 디지인에 반영합니다. 

▶김선진=사실 컨설턴트에게는 파이프라인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해당 파이프라인은 회사의 존폐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해당 파이프라인을 임상에 진입시켰는지 의문이 드는 것을 종종 봅니다. 현재 한국 신약개발 생태계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정규=현재 국내 생태계의 큰 이슈입니다. 자본은 넘치고, 주가는 올라가고, 기회는 둥둥 떠 다녀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신약개발'이라는 본질(essence)은 있지만, 미성숙하게 진행되는 곳도 많고, 심지어 어떤 경우는 본질조차 없이, '신약개발 과정'만 밟고 임상에 진입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는 실패의 뼈저린 경험을 해 봐야 알 것입니다.

 

#3. 언제까지 ‘학습’만 할 것인가?, 이제는 깨야 할 때

 

▶김선진=중요한 지적입니다. 제 생각엔 국내 생태계도 이미 큰 학습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굴지의 제약회사가 기술수출로 인해 성공의 단맛과 이것이 반환돼 돌아온 쓴맛을 함께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전된 기술이 반환되어 오는 것을 꼭 실패로만 규정할 수만은 없습니다. 해당 파이프라인의 가치가 하락하긴 하겠지만, 또 다시 기술이전을 추진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실패의 원인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개선된 방법을 학습할 수 있으니까요.

진짜 중요한 것은 학습 경험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이제 '기술이전'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즉, 이전된 기술은 돌아올 수 있고 더 큰 실패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물질의 개발 뿐 아니라 생산기반의 설립경험등 부수적인 효과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기술이전에 따른 생산시설의 처리 및 전환등 더 큰 학습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현재 한국 생태계가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정규=서로 간에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습니다. 기술이전의 경우도 자본력의 한계로 주식시장 요구에 어느 정도 따라야 하는 측면도 있고요.
이 과정에서 일부 미숙한 기술이전 계약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분명히 이전에 비해 발전하고는 있지만, 업계 원로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채널이나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이소라=회사마다 편차는 있지만,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이 편차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선진=지금까지 잘 해 왔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혁신'을 추구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신약개발 성공 스토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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