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R&D 혁신이 정당하게 보상받아야 글로벌 진출 가능

승객에게 보다 안락함을 줄 '혁신의 기차'는 만들어 놓았지만 레일이 없어 출발하지 못하는 처지나, 레일은 깔려 있지만 기차가 없는 경우나 승객 입장에서 안타깝기는 매한가지다. 이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합리적 의사 결정은 '혁신'이 달릴 수 있도록 '기찻길'을 내는 것이 아닐까. 제도가 혁신을 유인하기도 하지만, 혁신이 제도를 수반하는 게 더 일반적이다. 당신들 마음대로 만든 기차니 '아스팔트 도로'로 달리든, 차고에 세워 놓든 '모르겠다'고 사회가 팽개칠 때 해당 기업뿐 아니라 산업계의 혁신에 대한 도전 의지는 꺾이기 마련이다. 파클리탁셀 주사제를 액상경구제로 혁신한 대화제약 리포락셀의 약가 산정 과정이 그렇다.

리포락셀은 1999년 대화제약이 KIST와 함께 개발에 나서 2016년 9월 식약처에서 재심사기간 6년의 개량신약으로 허가 받았다. 개발비 200억원이 투입됐는데, 이 중 75억원을 산자부 복지부 지경부 산업부 등 4개부처가 국민 세금으로 지원했다. 정부가 이처럼 꾸준히 지원했던 이유는 성공이 몰고 올 혁신의 과실 때문이었다. 파크리탁셀 성분 항암 주사제를 액상경구제로 개발하면 환자들에게 그 만큼 혜택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대화제약에 따르면, 리포락셀은 파클리탁셀 주사제와 달리 스테로이드, 항히스타민 투여같은 전처치 과정이 없다. 환자의 복약 편의성과 안전성을 확보한 것이다. R&D가 만들어 낸 혁신의 가치다. 

투여경로를 변경한 경구 항암제 리포락셀은 대한민국신약대상을 받았다.
투여경로를 변경한 경구 항암제 리포락셀은 대한민국신약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2016년 9월 허가받은 리포락셀은 출시 2년이 다 되도록 환자들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약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체계에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전문의약품은 '약이되 약일 수 없'다. 대화는 '개량신약 약가특례'를 받으려 시도했다가 자진취하 했다. 리포락셀이 이 개량신약 약가특례를 받으려면, 산정기준에 따라 '주사제→액상경구제'로 바꾼 '롤모델 약'이 약제급여 목록에 있어야 했지만 리포락셀처럼 투여경로를 바꾼 약은 없었다. '웃픈 아이러니'다. '모델 약'이 없는 게 바로 선구자의 혁신이고, 고유한 가치 아닌가. 제약산업 R&D를 유도하기 위한 '개량신약 약가 특례'가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더 뿌리를 둔 염변경 특허 도전은 잘도 보호하는데, 혁신다운 혁신은 배제시키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대화제약은 리포락셀의 혁신가치를 '개량신약 약가특례'가 품을 수 없게되자 신약 급여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신약 급여 절차는 '아흔아홉 지옥문'을 통과하는 게임인지라 더 절망스러운 늪에 빠졌다. 다양한 이슈가 존재하지만, 크게 보면 기존 치료제(오리지널)와 견줘 임상적으로 얼마나 우월한지, 그 경제적 가치가 얼마인지 입증해야 한다. 대개 개량신약 같은 경우 비열등성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를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 부터 '산식'을 손에 쥔 정부가 흐름을 주도하게 되는데, 정부는 오리지널 파클리탁셀 주사제가 아니라 제네릭들을 대체 약제로 내세워 '협상 가격'이 형편없이 낮아지게 된다. 당당했던 개량신약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혁신의 가치를 잃게된다. '이러려고 R&D 했나.' 산업계는 자괴감이 든다고 정부를, 정책을 원망한다. 참으로 꾸준한 이야기다.

17년 연구개발을 진행하면서도 꿈에 부풀었던 대화제약은 야심차게 세웠던 글로벌 진출 계획마저 차질을 빚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약가를 받아야 거래가 시작되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 한데 더 큰 문제는 제 가격을 받아야 글로벌 시장에서 제 가격을 받는다는 점이다. 국내서 혁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의약품에 대해 외국서 자비를 베풀리 만무하다. 가치를 보상받을 길은 안개처럼 사라진다. 그렇다면 정책적 으로 문제를 풀기위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 냉장고가 작으면 용량을 키워야지 코끼리를 휴지처럼 구겨 넣으려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고혈압치료제에 대해 3년간 높은 가격을 주고, 이후 약정 가격으로 환원시키는 방식으로 '혁신가치와 글로벌 진출 문제'를 한방에 해결한 선례도 있다. 리포락셀이 그 경우에 합당한지 모르겠으나 적극적 정책이 만든 진전임에는 틀림없다.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혁신의 기차를 만들었는데 기찻길이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레일을 까는 것이 맞다. 레일은 혁신을 부르는 기반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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