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실패확률(99.98%)은 우릴 비켜 가지 않아
신약실패 맷집 허약한데 자금 계속 퍼부을 수 있나

세계50대 제약사 일본 10곳의 시사점

2018년 세계 50대 제약사에 일본 제약사가 10곳이나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16곳) 다음으로 많다. 독일이 4곳, 아일랜드가 3곳, 영국과 프랑스 및 스위스 그리고 인도가 각각 2곳씩이다.(2019 제약산업 DATA BOOK 통계정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2019.12.20.)

일본 1위 '다케다'의 경우, 처방의약품 매출만 2018년 15조1500억 원에 이른다. 일반의약품과 기타 제품 및 상품 등을 제외하고도 그렇다. 그것들을 포함하면 매출규모가 더 늘어난다. 2017년 16조4400억 원(1만7320억 엔)이었다. 연구개발(R&D)비로 연간 처방약 매출액의 22%인 3조2800억 원을 퍼붓고 있다.(2017 ECOS 종가기준 환율 100엔:949.11원)

일본 10위인 '쿄와기린'까지도 처방약으로만 2조5300억여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일본 10대 제약사 중 매출액 대비 R&D비용 비중이 가장 낮은 19.28%인데도, 연구개발비는 연간 5000억 원 규모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처방의약품과 일반의약품 및 상품 그리고 연결대상 자회사의 매출액까지 모두 포함해 산출된, 1위 유한양행의 매출액은 1조5000억 원(2018년)을 조금 넘는다. 하지만 처방의약품만 따져보면 1조200억 원으로 적지 않게 줄어든다. 또한 연구개발에 올인(all in)하고 있는 R&D 투자 1위 한미약품의 연구개발비 규모는 연 2000억 원 내외 규모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오늘의 우리 한국과 일본 간의 극명한 차이는, 언제·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동안 양국 간의 역사 2천여 년 간을 뒤돌아보면 안타깝다. 최근세 150여년을 제외한 그 이전 1850여 년 간의 긴 세월 동안은, 줄곧 우리 한국이 일본에게 발전된 세계의 문물을 앞서가며 전해 주는 입장이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1860년대 고작 10년간이 양국 간의 운명을 처참하게 갈라놨다. 우리 역사를 보면, 1863년 우여곡절 끝에 11세의 고종이 즉위했다. 열강이 동아시아지역에서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되어 각축전을 벌이는 가장 중요했던 격동기에, 우리는 어린 고종을 둘러싼 정파 간의 싸움질과 쇄국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일본은 1867년 '명치(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불과 25~30여년만의 짧은 기간에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1895년 청일전쟁 승리, 1905년 러일전쟁 승리)

그것으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만사휴의(萬事休矣)였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국가 대열에 합류했고 우리는 36년간 그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역사적으로 지울 수 없는 참담한 국욕(國辱)을 당했다.

이러함에도, 우리는 증오와 복수심만 대를 이어 넘겨주고 있을 뿐, '왜 우리가 일본한테 당했을까', '일본은 어떻게 해서 짧은 시간 만에 선진국 대열을 따라 잡고 앞서 갈 수 있었을까' 등에 대한 연구와 반성은 전혀 없는 것 같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각종 역사 교과서 등에 그러한 내용의 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고서도 앞으로 정말 극일(克日)을 할 수 있을까?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의약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일본 제약업과 유통업의 선진화 과정'을 다룬 연구물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요즈음, 국내에 진출한 서구 다국적 제약사들 덕택에, 그들 회사에서 연구·개발 및 마케팅 부서 등에 근무하면서 그들의 노하우(know-how)를 배운 인재와, 뜻있는 의과대학 의사, 그리고 강인한 뚝심과 미래를 예지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 특출한 제약사 사주(社主)분들과, 그 분들에 의해 육성된 인재들의 노력 등으로, 신약개발 기술 등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되면서, '일본은 패싱(passing)이다, 서구로 가야 얻을 것이 있다'라는 생각이 유행하는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에서 필히 배워야 할 점이 있다. 돈과 시간 등을 들여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다. 우리 국토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일본은 예사로 하는데 우리가 간과하면서 못하는 것이 있다. 신약개발에 필수인 '회사 몸집 키우기와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그것이다.

처방의약품 일본 1위(세계 20위)인 '다케다'는 2008년5월 '밀레니엄 파마슈티컬(미국)', 2011년10월 '나이코메드(스위스)', 2012년6월 'URL파마'(미국), 2013년5월 '인비라겐(미국)', 2017년 '아리아드 파마슈티컬스(미국)', 2018년7월 티제닉스(벨기에) 등의 해외기업을 M&A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특히, 2019년1월8일 세계 18위인 '샤이어'(Shire, 아일랜드, 처방약 매출 연 16조원 규모)를 인수·합병(M&A)했다. 따라서 '다케다'의 2019년 매출실적은 일거에 35조원 규모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탑 텐'인 8~9위 수준으로 수직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일본 2위(세계 23위)의 '아스텔라스'는 2005년4월 그 당시 일본 3위였던 '야마노우치'와 9위의 '후지사와야쿠힌'이 합병해 새롭게 탄생된 제약사다. 2007년 '아젠시스(미국)'를 인수했다. 2010년6월 'OSI(미국)', 2016년2월 '오카타(미국)', 2016년12월 'Ganymed(독일)', 2017년4월 'Ogeda(벨기에)', 2018년8월 '퀘테라(영국)' 등을 사들였다. 

일본 3위(세계 24위)인 '다이이찌산쿄'는 2005년9월 당시 일본 2위이던 '산쿄'와 10위이던 '다이이찌'가 공동지주회사를 만들어 통합된 제약사다. 2008년10월 'UB파마(독일)', 2014년 'Ambit(미국)'를 M&A했다.

일본 4위(세계 28위) '오츠카'는 2013년9월 '아스텍스(미국)', 2014년12월 'Avanir(미국)', 2018년7월 'ReCor(미국)', 2018년9월 'Visterra(미국)' 등을 인수·합병했다.

일본 5위(세계 32위) '에자이'는 2007년4월 'Morphotex(미국)', 2008년1월 MGI파마(미국), 2010년1월 'AkaRx(미국)' 등을 인수했다.

일본 6위(세계 38위)의 '쥬가이'는 2002년10월 '일본 로슈'와 합병하면서 '로슈(스위스)' 그룹으로 편입됐다.

일본 7위(세계 39위)인 '다이닛폰스미토모'는 2005년10월 그 당시 20위이던 '다이닛폰'과 22위이던 '스미토모'가 합병하여 생긴 제약사다. 처방의약품 매출 순위가 7위로 올라 선 것을 보면 합병 시너지(synergy)가 그만큼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2009년10월 'Sepracor(미국)', 2012년4월 'BBI(미국)', 2017년1월 'Tolero(미국)'를 M&A했다.

일본 8위(세계 40위)인 '미쓰비시다나베'는 2007월10월 그 당시 16위였던 '미쓰비시웰파마'와 22위였던 '다나베'가 합병하여 만들어진 제약사다. 매출 순위가 크게 오른 것을 보면, 이 합병도 '다이닛폰스미토모'처럼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미쓰비시웰파마'는, 1998년4월 '미도리주지(녹십자)'를 인수한 '요시토미(2000.4. '웰파이드'로 개명)'와, 1999년10월 '도쿄다나베'와 '미쓰비시가각구'의 의약품사업부가 합쳐 만들어진 '미쓰비시도쿄'가 2001년10월에 합병한 제약사였다.    

일본 10위(세계 49위)의 '쿄와기린'은, '쿄와하코'가 기린맥주로부터 2007년7월 독립한 '기린파마'를 2008년4월 자회사로 편입한 후 동년 10월 그 회사와 합병하여 만들어진 제약사다. 그 당시 '쿄와하코'의 매출액 순위는 21위였다.['藥事ハンドブック2019(じほう社)' 및 기타 자료]

그렇다면, 일본 제약사들은 왜 그렇게도 M&A에 사운을 걸며 몸집 부풀리기에 혼신의 힘을 다 쏟는 걸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몸집을 크게 키우지 않으면), 신약실패 확률(99.98%, 후보물질 10,000개 중 9998개 실패, 2개만 성공)을 견뎌내기 어렵고, 거금(통상 5천억~1조원)의 신약개발 자금 지출을 감당하기 힘들며, 최소 10년~15년이라는 긴 시간을 인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아니겠는가.

또한, 기업의 내적 성장 한계의 극복, 경영상의 노하우 확보, 기업의 대외적 신용 제고, 의약품 시장 지배력(점유율) 확대, 각 부문의 숙련된 전문 인력 확보, 신약 파이프라인 확대,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투자비용 절감 및 기간의 단축, 신약개발의 위험 경감 등을 목적으로 M&A를 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우리 토종 제약사들은 어떠한가.

제약사 몸집과 관련된 유의할 만한 M&A 사례는, 이제까지 딱 2건뿐이다. '한국콜마와 씨제이헬스케어', 그리고 '대웅제약과 한올바이오파마' 정도다.

일본과는 판이 완전히 다르다. 저들은 끊임없이 뭉치고 사들여 몸집을 키우는데(with), 우리는 모두가 제각각 나 홀로 각개전투만 몰두하고 있다(alone). 이래도 신약을 놓고 몸싸움이 될까?  

설상가상 우리에게도 우려되던 일이 현실로 닥치고 있다. '신약 실패확률(99.98%)'은 우리 제약바이오업계를 비켜 가지 않을 모양이다. 그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2015년 대망의 박수를 받으며 기술 수출된 것들 중 '임상'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러 건이 파기 환송됐다.

또한 지난해, 그동안 기대에 부풀었던 신라젠, 헬릭스미스, 에이치엘비 및 메지온 등의 신약 임상 결과, 그리고 지난 21일의 한올바이오파마 임상 건 등과 같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 발생 소식은 충격과 함께 시사되는 바가 크다.

이러한데, 토종 제약사들은 몸집을 안 키우고 현재의 기술수출만으로 과연 세계화가 가능할까?

언젠가는 그 기술수출의 열매로 신약개발을 주도해야 할 텐데, M&A로 몸집을 부풀리지 않고 자체 성장상태의 작은 몸집으로 신약 실패확률의 장애물과 신약 연구개발비 지출 등을 감당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

하기야 신약 연구개발(R&D)이 아닌 '제네릭'만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제약사도 있긴 하다. 세계 14위인 이스라엘의 '테바(Teva)'사다. 2018년 처방의약품 매출액만 20조3738억 원(182억6100만 $)에 달한다. 

하지만 이 제약사도 M&A의 전문가요 달인이라 할 수 있다. 이제까지 25번이나 M&A를 하면서 끌어 모아 회사를 성장·발전시켜 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토종 제약사가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신약개발'이든 '제네릭'이든, M&A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봤으면 한다. 신약개발 세계에서 선진국의 기술 하청자로 남지 않고 신약 주도국으로 도약하려면 필히 신약개발 과정의 고통을 감내할 만큼 몸체가 크고 튼튼해야 한다는 점도 저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