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SK바이오팜에게서 전통제약과 벤처가 배울점

며칠 전 건강검진센터 응접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자니 자동차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보다 수 십만배 더 심란했다. 문제가 생긴 자동차야 고칠 수 없으면 비용대비 효용을 따져 판단하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으니까. 수시로 윙윙대고 덜덜 거리는 MRI 터널에 누워 인간이 얼마나 건강을 염원하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서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화답하는 최고의 선물은 혁신신약’이라는 평소 생각이 가슴에 뜨겁게 안겨왔다. 지금까지 신약 개발의 성공은 욕망 덩어리인 자본의 입장에서 ‘잭팟’이란 값싼 표현으로 찬사(주로 언론의 표현)를 받았지만, 환자 입장에서 바라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FDA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은 SK바이오팜의 엑스코프리는 뇌전증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인류의 일원으로 이를 해낸 기업과 관계자 모두에게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다.

요즘 대한민국 신약개발 생태계는 단군이래 가장 풍요롭고, BTS 공연장 못지 않게 뜨겁다. 아이돌 스타가 펼치는 노래와 현란한 춤에 매혹된 관객들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도록 흥이 올라 격정적인 반응을 하듯, 벤처기업들의 투자유치 소식과 간간히 터져나오는 전통제약회사와 벤처기업들의 기술 수출 낭보에 투자자들이 함께 즐거워하며 소리높여 호응하고 있다. 이제 막 막이오른 K제약바이오 공연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따로있을까 싶을만큼 뜨겁다. 결국 이 뜨거움이 K제약바이오를 움직이는 엔진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싶고, 그래야만 할 것같은 압막감마저도 든다.

조정우 대표는 "우리도 사실 실패를 많이 했다. 실패는 일종의 성장통이다. 디스커버리 과제는 셀 수 없이 많았으나 임상에서 성공한 건 몇 개 되지 않는다. 경험은 내공을 쌓아가는 단계다. 우리와 같은 좋은 선례로 국내 제약산업이 한 단계 성장할거라고 믿는다"며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은 회사가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개방된 상태로, 언제든지 함께 시장을 끌고갈 준비가 돼있다"고 기자간담에서 조언했다.

바람직한 것같은데 걱정이 밀려든다. 유령처럼 실체없는 나의 걱정은 '혁신신약 개발로 인류문명에 기여하겠다'는 연구자와 CEO의 뜨거운 가슴이나 철학이 부재한 가운데 자본의 욕망으로만 ‘K제약바이오 공연’이 진행중인 것은 아닐까 하는 점에 있다. 혹여 머니 게임의 수단으로 신약개발이 동원된 사례가 나와 K제약바이오 공연이 막을 내릴까봐 자꾸 염려하게 된다. 공식 데이터에 기반한 것은 아니지만, 투자 받은 벤처기업이 수백개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나돌고 있다. 이 지점이 걱정의 중요 포인트다. 모든 투자 계약에는 조건이 있다. 언제까지 임상시험에 진입하고, 모년 모월쯤 자본시장에 상장(IPO)하겠다는 약속들이다. 과연 K제약바이오의 기업들은 연구의 가설이 무너졌을 때 투자자에게 이를 밝히고 스톱을 선언할 수 있을까? 억지 임상을 진행해 투자자를 안심시켜 IPO를 밀어붙이거나,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주식을 매도하거나 하는 꼼수의 결과는 필연 공멸을 초래하는데 말이다.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낸 SK바이오팜의 신약개발에 대한 태도와 과정은 CT촬영을 위해 조영제 주사를 맞았을 때처럼 한껏 뜨거워진 K제약바이오에게 수 많은 영감을 준다. 첫 째는 명확한 목표 설정이다. SK그룹의 성장동력 프로젝트 차원에서 1993년 신약개발 사업을 시작할 때 ‘글로벌 신약’을 목표로 삼고, 27년을 달려왔다. 둘 째는 선택과 집중이다. 뇌전증, 우울증 등 중추신경계 분야를 주요 질환군으로 선정한 이래 흔들리지 않았다. 셋 째는 기대와 가능성으로 시작한 사업이 부분적 성공과 실패를 반복할 때 초지일관했다. 이는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돈이 안된다는 판단에 따라 제약사업부문을 매각한 CJ그룹의 이른 포기나, 몇 년 단위로 연구소를 뒤엎어 버리는 대다수 전통제약사들의 조바심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언론을 통해 본게 다지만, 최태원 회장의 캐릭터는 신약개발에 최적화된 듯하다.

‘K제약바이오 공연’에 열광하는 일반 투자자들도 투자 안목을 키우려면 SK바이오팜의 성과만 이야기하지 말고, 지난했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매우 한정된 연구(전임상 또는 임상초기)로부터 도출한 잠재 가능성 덕분에 기술수출된 신약물질이라도 FDA문턱을 넘기까지 매우 험난하다. SK바이오팜이 2001년 물질 탐색에 나서 신약후보물질 후보를 결정할 때까지 2000여개 화합물을 합성했고, 임상시험에 들어가 FDA에 허가신청할 때까지 임상자료는 물론 의약품생산 및 품질관련 자료 등 신약개발 과정이 230여만 페이지에 달한다. 그리고 “실패를 많이했다”는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의 말에서 ‘솔깃한 정보’를 판단하는 냉철함과 기다려 주는 인내심을 터득하면 좋겠다. 조영제 주사가 만들어낸 일시적 뜨거운 가슴만으로 신약개발처럼 긴 여행을 하기는 힘들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