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약사 "전문가는 정확한 정보 알려줘야"

발사르탄 때문에 포스팅이 엄청난데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은 글들도 많다. 오늘 라디오에서도 PD의 부탁으로 10분동안 다루었지만 헬스케어 전문가인 우리는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알려줘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몇마디 끄적인다.

1. NDMA라는 발암물질?

2A급 발암물질이란 것은 동물에게서 암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인체에 암을 일으킨다는 결과는 확실하지 않은 '일정량 이상을 초과할 경우 사람에게도 잠재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추정된 물질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가공식품에는 1급 발암물질들도 많이 사용된다.

2. 중국산 괴담?

얼마전 중국산 가스를 사용해 눈수술을 한 후 실명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중국산이라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가스'가 의료기기나 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아 관리감독이 허술했기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 해당 가스를 '의료기기'로 변경했다. 이번 원료 회사도 22개국에 수출한 의약품 원료를 만들던 회사다. 중국산 고춧가루에 벽돌가루를 섞는다더라 이런 식의 괴담이 아니라, 의약품 원료 수입, 허가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를 논해야 한다.

국내에서 생산된 원료는 과연 정확한 시험을 거쳤을까? 조사해 봐야할 문제다. 중국 회사에서 '발암물질'을 첨가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제조공정'이 바뀌어서 원치 않는 물질이 생긴 것이다. 제조 공정에 대해 검토하고 기타 다른 원료 회사들도 조사를 해야 한다고 유럽에서 이미 밝혔다.

3. 약을 판매 중지하는 경우

보통은 시판 후 아주 위험한 부작용이 보고된 경우 판매 중지 및 회수 조치를 했지만 이번에는 '예방 차원'의 판매 중지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인체에 유해한 결과를 미쳤는지 정확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 원료 또한 아주 오랜 기간 쓰여온 것도 아니다.

4. 발사르탄이 나쁘냐

좋은 약이다. 고혈압약이지만 심부전, 당뇨, 고지혈증 등에서도 심혈관계 합병증 방지를 위해 널리 쓰인다. 발사르탄 성분이 마치 '발암물질'인냥 호도되고 있다니.

5. 왜 115개나 달하는 약들이 언급되나

우리나라는 오리지널의 특허가 끝나서 따라 만든 '제네릭'약에 사람이름과 같이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인다. 성분이 동일하지만 이름으로 보기에는 약 종류가 수천가지도 될 수 있는 거다. 고혈압약 중의 특정 한 성분인데(그것도 해당 회사 원료를 사용한 제품만 문제) 한바닥 가득히 나열된 이름만 보자면 고혈압약 드시는 분들은 정말 겁이 날만 하다. 약사도 못알아보는 제네릭 약 이름 좀 이번 기회에 정리했으면 한다.

6. 대체조제가 문제냐

그렇다고 볼 수 없다. 문제시되는 약을 처방한 경우 문제 없는 약으로 대체조제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나. 이건 병의원과 약국을 탓할 일이 아니며 의사랑 약사가 싸울 일도 아니다. 원료 수입돼서 사용한 제약사, 처방한 의사, 조제한 약사 잘못이 아니라 원료를 제대로 검증하고 판매 허가해야할 일이다.

7. 방송이 어이없어

어제 황당한 사회부 기자 전화를 받았다. 문제되는 약을 사용하는 약국을 어떻게 찾나? 처방한 병원을 어떻게 찾나? 이런 전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심평원에 전화하시죠'라고 하고 끊었다. 뻔한 그림이 그려진다. 처방한 의사 인터뷰 따고 조제 약사 인터뷰 따고 고혈압약 먹고 '이상한 부작용' 경험한 사례자 찾아서 인터뷰 따고 그럴싸한 '공포물' 하나 찍기 좋다. 언론의 비판 기능은 어디로 간거냐? 한심하다 정말

8. 여담

얼마 전에 친한 약사들을 만나서 사대주의 농담같이 '약도 미제가 잘 들어 한국약은 똑같은 감기약도 안듣는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purity에 문제 있는 거 아니냐며 웃으며 말하고 헤어졌는데 사실 국내 제네릭약에 대한 신뢰를 높여줄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이 사태가 또 리베이트 문제로 연결되고 누가 이런 약을 썼느냐 이런 이상한 논란으로 번지지 않길 바란다.

9. 제언

고혈압약은 갑자기 중지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 약을 중단하지 말고 내 약이 궁금하다면 병의원이나 약국에 상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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