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터뷰 |
스펜서 남 KSV Global 대표

한국 신약개발을 어찌할 것인가 -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한국 신약개발의 '살 길'을 모색하려 시작된 인터뷰 시리즈는 잠시 투자시장의 발치에서 쉬어갑니다. 정책과 개발전략을 다룬 것이 지난 5개 편이었다면, 이번 6편에서는 '긴 호흡의 신약개발을 지원하는 투자시장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논하려 합니다.

일견, 이 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히트뉴스>는 이미 바이오텍 상장유지조건에 대해 가혹한 면이 있음을 다룬 바 있습니다. 또 높아져만 가는 바이오텍 상장 문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사안이 정책에 연관돼 있는 만큼, 해결은 요원하며 갈 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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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탑다운(Top-down) 방식의 시장 변혁을 이끌어 주길 기대하는 만큼이나, 민간 차원에서 바텀업(Bottom-up) 방식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스펜서 남(Spencer Nam) KSV Global 대표는 이것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미국의 자본을 한국 투자시장에 불러들여, 그 힘으로 시스템 자체를 바꾸자'는 주장입니다. 그 청사진을 그와 함께 그려봤습니다.

히트뉴스는 BIO INTERNATIONAL 2024 현장에서 스펜서 남 KSV Global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 사진=박성수 기자
히트뉴스는 BIO INTERNATIONAL 2024 현장에서 스펜서 남 KSV Global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 사진=박성수 기자

시리즈 5편의 문제의식에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더글라스 팸브로 박사는 '라이선스 아웃(L/O)은 한국 신약 바이오텍이 강요당한 생존 수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에서 벤처캐피탈(VC)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본 대표님의 해석이 궁금합니다.

"팸브로 박사는 한국 투자시장과 자본 시스템의 근본적인 약점을 짚어낸 겁니다. 한국의 자본 시스템은 바이오텍 투자자들을 매우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낸다는 것이죠."

그 특정한 방향이란 무엇을 일컫는 것인가요?

"기업공개(IPOㆍ상장)입니다. 현재 한국의 자본 시스템 내에선 회사가 상장을 해야만 투자자들이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기술특례상장을 하거나, 일반 상장을 하는 2가지 방향이 있겠죠. 둘 중 무엇을 택하든 해외향 L/O 실적이 있어야 합니다. 

즉 지금의 상황에선 L/O → IPO → 투자수익이란 도식에 얽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L/O을 통한 IPO만이 정답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문제가 섞여있는 듯하니 분리하겠습니다. 첫째는 IPO를 위해 L/O 실적을 요구하는 현 시스템입니다. 둘째는 투자자의 수익화 수단이 IPO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나씩 짚어 주세요.

"투자자가 수익을 내려면 IPO를 해야 하고, IPO를 하려면 L/O 실적이 있어야 하니, 투자자들은 자연스레 L/O을 최종 목표로 삼게 됩니다. 결국 투자시장이 바이오텍에 L/O실적을 강요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L/O을 하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글로벌 신약개발이란 본질적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어져요. L/O 하는 것과 직접 후기임상까지 개발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요. 즉 한국 투자시장은 '우리 바이오텍이 임상 2상, 3상까지 직접 갈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는 것'을 두고 고민해야 해요.

하지만 IPO에 L/O 실적이 필요한 이상, 투자자들이 멀리 보고 투자하는 건 힘들겠군요. 

"그렇습니다. L/O 후 IPO를 통해 엑싯(Exit)하는 현 시스템에선 투자기간이 3년~5년 내외니까요."

자연스레 두번째 문제로 이어지네요. 바이오텍 투자자의 수익화 수단이 IPO밖에 없는 것이 또다른 어려움이라 하셨습니다.

"미국의 예시를 들겠습니다. 미국에서도 기존 상장사들은 계속 투자를 유치하는데, 신규 상장은 안 되고 있어요. 여기까진 한국의 상황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미국에선 상장이 막혀도 다른 자금조달ㆍ엑싯 수단을 동원할 수 있죠. 바이오텍의 인수합병(M&A)이 다수 이뤄지고 있고, 디스카운트를 통해 기존 투자자를 신규 투자자로 대체하며 리파이낸싱(Refinancing)하기도 해요. 즉 자본 시스템에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상비약들이 여러 개 구비돼 있어, 미국 바이오텍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금을 조달해 기술을 꾸준히 개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자본 시스템 내에선 그런 상비약들을 동원하기 어렵습니다. M&A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IPO만이 유일한 수익화 창구인 한국 투자시장에선, IPO 등용문이 막혔을 때 신규 투자도 막혀 버립니다. 'IPO가 안 되고 있으니, 지금 투자해도 수익을 못 올릴 것'이라는 게 한국 투자자들의 현재 심리인 것이죠."

한국 투자시장 시스템부터 변화시켜야, 신약 후기임상까지 멀리 보고 투자하는 게 가능하겠군요.

"맞아요. 한국 투자시장은 더 유연해져야 합니다. 지금처럼 L/O 실적이 있어야만 상장되거나, IPO가 거의 유일한 수익화 수단인 상황에선 신약개발에서 긴 호흡을 가져가기 힘듭니다."

어떻게 해야 한국 투자시장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당장 바꾸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둔 바가 있어요. 일종의 '박세리 효과'를 일으켜야 합니다."

'박세리 효과'라면, 한국 바이오텍의 미국 진출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하지만 이미 존재했던 담론을 다시 꺼내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의 바이오텍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게 아닙니다. 미국에서 회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한국의 기술을 도입해서요. 그리고 미국의 자본 시스템을 통해 긴 호흡으로 신약을 개발해서 빅 딜(Big Deal)을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업프론트(Upfront) 50억~100억원으로 구성되는 라이선싱 계약보다는 총액 5000억원 이상 규모의 물질 이전ㆍ양도 계약을 말하는 겁니다. 혹은 M&A로 회사를 통째로 파는 케이스도 만들어야 합니다.

오름테라퓨틱이 작년 11월에 BMS와 맺은 물질양도계약이 좋은 예시입니다.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글로벌 회사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가 어떻게 '박세리 효과'를 일으키고 한국 투자시장을 변화시킨다는 건가요?

"빅 딜은 계약 상대방이 사들이려는 기술에 강한 확신이 있어야 발생합니다. 한국의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한 미국의 회사가 그런 성과를 보이면, 글로벌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어요. 'We have more, 한국엔 이런 기술이 넘쳐난다!'라고요. 

이 같은 케이스가 1~2개만 생겨도, 다른 한국의 바이오텍들도 따라서 미국에 들어갈 겁니다. 한국 기업 정서 상 성공 케이스만 있다면 빠르게 추격이 가능하거든요. 반복하다 보면 미국 투자업계가 한국의 바이오텍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 둘 들어올 거예요. 그 때는 한국 바이오텍이 라이선싱을 할 게 아니라, 댄스(Danceㆍ양자가 사업을 논의하며 공방을 주고받는 행동을 일컫는 표현)하면서 투자나 M&A를 제안해야 합니다.

그렇게 미국 자본이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투자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들은 한국의 방식을 따를 리 없으니까요. 유연한 자본 시스템을 한국 바이오 산업에 이식시키자는 것이죠."

1990년대 외환 위기 당시 IMF가 했던 역할이 떠오릅니다.

"한국은 이미 IMF를 통해 자본 시스템을 바꾼 역사를 겪었지만, 이것은 강제로 이뤄진 일에 가깝습니다. 자발적으로, 적은 리스크로 한국 투자시장을 개혁하려면 민간에 맡겨야 합니다."

'한국의 기술을 들고 미국에서 시작하라'는 조언은 이전 편의 인터뷰에서도 등장했습니다. 더글라스 팸브로(Douglas Fambrough) 박사는 '나스닥(NASDAQ)에 상장하라'고 말했거든요.

"저도 동의합니다. 사실 정부가 '바이오텍 나스닥 유학보내기'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ㆍ인재유출)을 유발할 거라는 우려도 있겠지만, 일단은 미국으로 보내서 하나라도 더 배워서 돌아와야 합니다.

<히트뉴스>가 인터뷰 기사로 냈던 앰플리파이 서지컬(Amplify Surgical)의 사례도 같은 맥락상에 있습니다. 한국의 기술이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적으로 상업화됐죠. 이런 일들이 더욱 많이 벌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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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국 투자시장 개혁'과 '한국 바이오텍 유학보내기' 프로젝트를 위해 우리 언론이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답하기가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큰 상태에서 언론이 주도해서 푸쉬(Push)하는 건 많은 의견차를 불러올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미국 바이오텍은 어떤 문제를 어떤 전략으로 풀어나가는지 조명해 주세요. 한국에는 이런 정보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미국의 문제의식을 한국 바이오 업계에 풀어서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아이디어의 창발이 이뤄지도록 유도해 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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