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는 유통 난맥상 잡는 수단? 거래소가 '도매상' 잡는 수단될라
공단 토론회에서 성대약대 이상원 교수 주제 발표를 보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은 지난 6월 26일 '의약품 공급구조 혁신 방안'을 놓고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는, 공단이 2018년 10월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이하 '연구팀')에 용역을 준 '의약품 공급 및 구매 체계 개선 연구' 결과(연구기간: 2018.11.27.~2019.11.26.)를 실천 전단계에서, 여론 파악과 환기를 위해 개최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연구물이 공개된 후 약 6개월간 뜸을 들이다가 새삼스럽게 최근 토론회를 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주제 발표는 이 연구의 '책임 연구자'인 동교 약학대학 이상원 교수가 맡았다. 발표 자료는 연구물을 응축한 것이다.
이 연구물은, 책임연구자 1인과 공동 연구인 15인 그리고 연구보조원 12인 등 28인이 연구해 낸 495쪽의 방대한 역작이다. 연구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과 노력한 결과를 보면, 공단이 보고서에 제안된 제반 방책들을 실천하고 싶을 것 같다. 연구물에는 공단의 생존 조건이자 목표가 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의 확보 수단들이, 공단의 가려운 곳을 이곳저곳 콕콕 찍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물과 이번 토론회의 유통관련 부문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게 있다. "의약품 거래소를 설립해 그 곳에서 의약품을 거래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그것이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 발표 화면(파워포인트) 자료 22번과 37번을 보면, '거래소 설립'이 유통구조 혁신의 핵심 수단 중의 하나로 거론돼 있다. 또한, 연구물 책자 제4장제4절 제4항(공정거래 풍토 조성 방안: 가칭, 의약품거래소 활용) 내용 중 412쪽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의약품 거래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그림이 실려 있다.

위 그림을 보면, 거래소의 실질적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의약품 도매상의 역할 및 기능과 동일하다.
의약품 거래소의 설립 필요성에 대한 동기는 다음과 같은 논리적 과정을 거치면서, 추론된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의 현상 자료(토론회 발표 화면자료 20번)를 통해 ▲의약품도매업소의 영세성과 비효율성 ▲유통품질 담보의 어려움 ▲회수·폐기의 어려움 등과 같은 ▲유통 난맥 문제를 추출해 내고, 이를 풀어야 할 대표적 과제의 하나로 보고 있다(토론회 발표 화면자료 4번).
이 과제의 해결을 위한 기본적 구조 혁신 방향을, 연구팀은 '유통질서 강화를 통한 효율성·투명성 제고와 함께 유통기업 경쟁력 강화'로 잡고 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의약품 유통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측면에서 제시되고 있다(화면자료 21번).
▲ 의약품 유통구조의 합리화 측면 : 현재 ▷혼재돼 있는 영업 형태 및 규모 등을 고려한 관리 그리고 ▷도매상의 미래발전모델 제시 및 지원 등이 필요함.
▲ 제도적 측면 : ▷도매상 허가기준 및 사후관리 강화 ▷편법적 직영도매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 ▷일련번호 및 공급내역 보고 제도를 정보 활용 수단으로 발전시켜야 함.
▲ 환경적 측면 : ▷누수적 유통마진율 개선 ▷포장 단위 등 물류처리의 효율화 제도 개선 ▷전문 인력 육성 등을 통해 선진화된 유통거래 환경을 조성해야 함.
▲ 공정(투명)거래 환경 조성 측면 : ▷거래 투명화 방안의 제도화 ▷요양기관의 적절 구매 유도 등이 요구됨.
이러한 정책 방향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연구팀은 ▷의약품 거래소 설립 ▷도매업 허가기준 강화 ▷우수기업 지원 ▷리베이트 제재 강화 등 4가지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화면자료 37번).
그런데, 이러한 정책 수단 중, '의약품 거래소 설립'과 '도매업 허가기준 강화'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문점과 질문이 있다.
첫째, 앞의 그림을 보면, 의약품 거래소의 구조와 기능은 도매상의 그것과 아주 똑 같다. 그리고 도매상도 거래소를 통해 의약품을 요양기관에 유통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제약(수입)업체→도매상→거래소(기능상 실질적 도매상)→요양기관' 이라는 새로운 의약품 유통경로가 만들어진다. 이 경로는 곧,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라고 비판 받는 실질적인 도·도매 유통경로가 아닌가.
이러한 도·도매 경로상에 있는, 도매상의 옥상옥(屋上屋)이라 할 수 있는 의약품 거래소가, 어떻게 유통 난맥상을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둘째, 현 도매유통 시스템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의약품 거래소'를 통해 의약품이 유통된다고, 거래질서가 과연 잡힐까? 연구팀은 거래질서 확립 수단으로 ▷리베이트 제재 강화와 ▷의약품 거래소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토론회 발표 화면자료 22번). 의약품 거래소를 마치 거래질서를 잡는 준(準)만병통치 수단으로 본 것 같다.
'거래질서 문제'는 '경쟁 행위'의 산물이다. 경쟁이란 '같은 목적에 대하여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것'이다. 때문에 시장 독점(獨占) 상태 이외는 경쟁 행위가 불가피하다. 두 경쟁자뿐인 복점(複占)부터, 몇몇 경쟁자만 있는 과점(寡占), 경쟁자가 제법 많은 불완전경쟁(不完全競爭) 그리고 경쟁자가 수없이 많은 완전경쟁(完全競爭) 상태까지, 경쟁은 존재하게 돼 있다.
따라서 거래질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쟁자 수를 줄이는 환경 정비가 급선무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구팀은 그런 장치를 해 놓았다. '도매상 허가기준 및 사후관리 강화책'을 제언(토론회 발표 화면자료 21번)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매상 허가 기준을 강화시킨다고 이미 고착된 도매유통업계의 완전경쟁 상태를 거래질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수준까지 완화시킬 수 있을까?
허가기준은 구체적으로 어느 선까지 강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창고 실면적 150평? 300평?, 500평? 아니면 1000평 이상? 이러한 고정 관념적 발상이 아니라면, 새로운 도매상 허가기준 강화책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설마 '허가기준 강화'를 논하면서 그 정책의 구체적인 수단을 미리 그려보지 않고 피상적으로만 정책 제안을 했을 리는 만무했을 텐데 말이다.
사후관리 강화책도 궁금하다. 사후관리를 강화해서 이미 완전경쟁 상태로 고착된 도매유통업계의 경쟁 상태를 과연 완화시킬 수 있을까. 사후관리는 누가할 것이며 그 강화책의 구체적인 수단은 무엇일까.
일례로, 공무원들의 약사감시 일손이 부족해 당국이 물류 위·수탁 도매유통업체들의 변칙 운영 상태를 제대로 파악·관리하지 못해 지금 도매유통업계 내부에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어떠한 방법으로 사후관리를 강화해 경쟁을 완화시켜 거래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현재 도매유통업계에는 업체가 3000여 곳에 달한다. 이러한 경쟁 상태를 그대로 두면서, 옥상옥의 거래소를 통해 의약품이 유통된다고 의약품시장의 거래질서가 정말 잡힐까?
셋째, '의약품 거래소'가 창설되면, 거래소가 요양기관이 필요한 의약품을 주문받아 제약(수입)업체들에게 그 약들을 주문하고, 거래된 의약품의 대금을 거래소가 요양기관으로부터 받아 제약업체에 결재해 주는데, 그럼에도 도매유통업체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남아 있을까?
공권력까지 갖추게 될 '의약품 거래소'가 제약(수입)업체와 요양기관 중간에서, 도매상이 이제까지 수행해 왔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현 도매유통업체들의 설 자리가 남아 있을까?
혹시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혹시 대형 물류센터를 보유한 도매유통업체들의 경우, '의약품 거래소'의 하청 물류센터 역할로 일거리를 확보할 가능성은 남아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럴까.
앞으로, 의약품 도매유통업계가 공단의 '의약품 거래소'에 대한 진척 상황을 주시해야만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