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모드 풀자 폭주하는 '까톡까톡'
"뭐 쓸 것 좀 없어요?...징징대는 기자들
본사 임원...'글로벌 시어머니'라 부르죠
"대응 쉽지 않지만 제약만의 매력 있어"

[hit-life] 2019년 제약바이오人 = (3) 제약·바이오업계 홍보인

기자와 홍보인은 가깝고도 먼 사이다. 때론 협력하지만 대립도 한다. 기자도 인간인지라 민감한 기사를 쓸 때면, 회사에서 곤란해질 그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한다. 기사와 이슈를 만들고 대응하지만, 정작 기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다양한 그들의 목소리를 네 명의 가상 인물로 설정해 각색해 봤다. 국내 제약사 홍보팀 박 이사, 글로벌 제약사 홍보팀 김 과장, 헬스케어 PR회사 이 팀장, 협회 최 팀장. 이들의 목소리로 제약·바이오 홍보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오랜만에 떠난 휴가지에서 울린 전화 한 통화…

사건은 꼭 퇴근 후이거나 주말, 휴가 때 터지는 것만 같다. 사고를 치는 주체는 제 각각이지만, 뒷수습은 모두 홍보팀 몫이다.

박 이사=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였어요. 새로 출시될 약물 때문에 눈코 뜰새 없이 바빴죠. 출시 전 할 수 있는 언론홍보 활동은 대부분 마무리 됐고, 쌓인 연차로 오랜만에 가족들과 해외로 떠났죠. 그동안 쌓인 피로에 몸은 무거웠지만, 가족들과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죠. 늘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도 잠시 비행모드로 전환하고요. 오랜 비행시간으로 몸은 아직 무거웠지만, 짓눌린 정신적 피로는 하늘에 흩날린 느낌이었어요. 제가 여행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여유는 딱 거기까지 였죠.

공항에 내려 비행기 모드를 푸니까, 카톡 알림음이 쉴새 없이 울리고, 부재중 통화가 족히 50~60통은 와 있었어요. '또 뭔 일이 터졌구나' 싶었죠. 출시예정 약물에서 이상반응이 보고돼 차질이 생긴거죠. 그렇게 가족들과 오랜만에 떠난 여행에서 저는 또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었어요. 유관부서, 기자, 팀원들과 통화한 비용만 백여만원 가까이 나오더군요.

김 과장=그렇죠. 기자들이 우리의 퇴근시간이나 휴가를 고려해서 일하는 건 아니니깐요. 퇴근을 해도, 휴가를 가도 늘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죠. 노트북 들고 휴가 가는 건 기본이고요. 연말 클로징을 하고 따뜻한 동남아로 떠난 여행지에서도 노트북을 켜고 보도자료 초안을 작성했어요. 물론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어서 다행이었지만요. 일주일만 더 빨리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면 동남아가 아닌 회사에서 보도자료를 작성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일과 개인생활의 균형을 찾는 일명 '워라밸'을 원한다면 홍보일은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이럴거면 차라리 기자를 할까봐요…

어느 집단에나 도(度)를 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기자도 그렇다. 심지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홍보팀에 요구하는 기자도 있다.

최 팀장=우리는 특정 기업이 아닌 산업 전체를 대변하다 보니, 산업계에서 이슈가 터질 때마다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질문도 각양각색이죠. 임상시험 기초 개념부터 특정 회사가 윤리적 이슈에 휘말리 때, 그런 것들의 이유를 묻기도 하죠. 다짜고짜 전화해서 오늘 마감거리가 너무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기자들도 있어요. 저한테 마감 아이템을 대놓고 요구하는 기자들도 있고요. 장난 식으로 요구하는 기자들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진지하게 말하는 기자들도 없지 않아요.

이 팀장=아이템을 요구하는 건 양반이에요. 아예 기사를 써 '드려야(?)' 하는 기자들도 있죠. 인터뷰 녹취록 작성은 통상적으로 PR회사에서 하는 일이니 그렇다 쳐도, 어떤 기자는 아예 녹취록이 아닌 인터뷰 기사를 써 달라고 대놓고 요구해요. 안 그러면 기사로 싣지 않겠다고요. 홍보팀, 기자 모두에게 '을 중에 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어요. 이럴거면 차라리 기자할까 싶기도 해요.

기자가 소설을 쓰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기자는 취재한 사실을 바탕으로 기사를 쓴다. 사실과 의견이 뒤섞인 기사는 납득하기 어렵다. 

박 이사=기자가 사실을 토대로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건 어쩔 수 없죠. 그렇다고 대응을 안할 수는 없죠. 그런데 사실과 의견이 뒤섞인 기사를 마치 사실인양 포장하는 기사를 보면 '정말 이건 아니다' 싶어요. 그렇다고 기자와 싸울 수도 없고. 이게 과연 기사인지 소설인지 분간이 안 되는 기사도 있어요. 기자가 소설을 쓰는 직업은 아닌데 말이죠.

간혹 친분이 있는 기자가 이런 기사를 쓸 때면 '이건 아니지 않냐'고 전화를 걸기도 해요. 기자 본인의 의도가 아닌 데스크의 의중이 들어간 경우도 있죠.

김 과장=워낙 다양한 약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임상 1상부터 시판후 임상까지 다양한 임상이 진행되고 있어요. 임상시험은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더 많아요. 또 모든 약물은 효능이 있으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죠. 하지만 자극적인 외신보도를 인용해 과도하게 부작용을 부각시킬 때면 난감할 때가 많아요.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죠.

다양한 일을 하지만…홍보는 특정 성과를 낼 수 없어요

홍보팀은 주로 사건이 터질 때 위기관리를 수행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평가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김 과장=글로벌 제약사 홍보팀은 소수 인원으로 많은 약물의 홍보를 담당해야 해요. 물론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지만, 단순 언론홍보뿐만 아니라 본사와 커뮤니케이션, 각 팀과 소통 등 할 일이 무척 많아요. 본사에서 책임자가 한명이라도 오면, 수행업무 때문에 다른 일을 거의 할 수 없어요. 우리끼리 농담으로 '글로벌 시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하죠. 사실 이런 일들이 성과로 연결되긴 쉽지 않잖아요.

대표이사도 홍보를 바라보는 시각이 제 각각이에요. 홍보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 대표가 오면 인력부족부터 시작해 어려운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에요.

박 이사=지금이야 간부급이니 좀 줄어들긴 했지만 사원이나 대리 시절에는 사회공헌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했어요. 물론 결과물로는 보도자료 하나가 끝이죠. 그래도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어 뿌듯했어요. 김장, 연탄 나르기 등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즐거워하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최 팀장=일당 백으로 움직여야 하니 하는 일이 정말 많아요. 보도자료 배포와 언론 대응은 물론이고, 회원사를 방문해 그들의 고충을 듣기도 하고요. 회사 홈페이지 관리는 물론이고, 최근 미디어 플랫폼이 다양해져서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계정도 도맡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도 새롭게 개설해 동영상 콘텐츠도 만들고 있어요.

이 팀장=매년 각 제약사 프로젝트 '비딩(bidding)'을 따와야 하니 이 시즌이며 한창 바쁘죠. 제안서 작성부터 프리젠테이션 발표까지 밤을 새는 건 이 시즌엔 일상이에요. 물론 프로젝트를 따오면 그래도 그간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 피로가 확 달아나는 것 같지만요. 거꾸로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 하면 그 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심지어 몇몇 제약회사는 기획안만 도용하고 값이 저렴한 경쟁사를 뽑는 경우도 있어서 허탈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의약품 홍보, 보람 느껴요

건강관리부터 생명에 직접 연계된 것 까지. 의약품은 일반소비재와 달리 제품 자체가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제약바이오 홍보만의 차별점이 있다. 

김 과장=항암제나 희귀질환의약품의 경우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잖아요. 그래서 이런 의약품에 대해 제대로 전달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도 있어요. 환자들을 위한 사회공헌프로그램에서 우리 회사 약물로 건강을 되찾았다는 환자 분들을 뵐 때면 실제로 이 일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요. 요즘 인터넷 상에 약물 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어서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약제에 대한 문의도 종종 들어와요. 우리가 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어 안타까운 맘이 크죠.

이 팀장=예전에 소비재 PR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소비재는 사실 경쟁제품과 비교해 좋은 점을 부각해서 전달하기가 쉽지 않아요. 옷, 신발, 음식 등은 특정제품이 유달리 뛰어난 무언가가 있기 쉽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온갖 형용사와 수식어를 총동원해요. 심지어 소비재 PR 쪽에는 ‘보그체’(무분별하게 외래어를 남발하는 것)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아티스틱한 그린 컬러', '퓨어한 컬러', '러블리한 옐로우'. 제가 보도자료에 쓰던 단어였지만, '퓨어한 그린'과 '아티스틱한 그린 컬러'의 차이를 아직도 모르겠어요.(웃음)

'보그체'와 각종 수식어로 PR 일에 회의를 느낄 때쯤 헬스케어 파트로 넘어 왔어요. 신세계였죠. 임상데이터로만 말하고, 객관적인 지표가 아닌 것으로 홍보할 수 없었어요. 특히 글로벌 제약사는 CP 규정이 매우 엄격하거든요. PR 일에 다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죠.

최 팀장=힘들지만 재밌어요. 특히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잖아요. 이 시기에 제가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건 좋은 기회라고 봐요. 전문용어들이 많아서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재미가 있어요.

박 이사=예전에 국내 제약사는 제네릭 제품을 팔거나 글로벌 제약사 제품을 코프로모션만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컸어요. 사실 이전에는 과도기라고 봐요. 신약개발은 워낙 많은 자본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한 순간에 신약개발을 하겠다고 나설 수가 없잖아요. 최근 기술수출 계약이 이뤄지면서 국내 제약업계도 신약개발 주체로 점차 체질개선을 하고 있어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일원으로 이런 환경 변화가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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