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와 닮아있는 혁신형 제약기업 기준

생각을 HIT | 무엇을, 어떻게, 평가받을지 불명확한 약가인하 피난처

2026-04-02     이우진 수석기자

6월 월드컵 축구경기를 앞둔 한국대표팀은 1일 오스트리아와 가진 친선 평가전에서 0-1로 패했다. 코트디부아르전 0-4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지 채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평가전 2연패에 축구팬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경기를 본 사람들의 지적은 하나로 귀결됐다. 대표팀의 '스리 백'(Three-Back, 후방 수비로 3명을 배치하는 것)은 실패 아니냐는 것이다. 빈 공간으로 공격이 들어올 때 '포 백' 대비 골문이 쉽게 열릴 수 있다는 지적에도 무리하게 수비 3명에게 최종 방어를 맡긴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패배 이후 인터뷰를 통해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는 절대 한 가지 전술(포 백)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더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차갑다.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성장하겠다는 건지를 말하지 않았다. 문득 며칠 전 제약업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약가개편에서 혁신형 제약기업 기준을 떠올렸다.

보건복지부는 3월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14년 만의 약가제도 개편안을 최종 의결했다.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5%로 낮추고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에는 차등 우대를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이번 개편으로 연간 최대 2조 40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이야기했다.

지난해 11월 28일 건정심에 해당 안건이 처음 보고됐을 때 제약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정부 측의 주장에 일견 타당성이 있다는 점 역시 부인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방향은 맞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정부의 이번 약가제도 개편은 업계가 가장 절실하게 알고 싶은 것들에 아직 답하지는 않았다.

 1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번 약가개편 속 제네릭 약가에서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줄 것은 혁신형 그리고 새로 생길 준혁신형 제약기업 기준이다. 다만 연구개발 비율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산정하는지의 세부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경우 연구와 생산-판매가 분리된 기업의 경우 기준도 모호해진다. 분명히 연결 기준으로는 상당한 수준이지만 허가권자인 제약사는 매출 대비 연구비 비중이 3% 미만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발표 이후 업계에서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추정만 나온다.

 2  '준혁신형'은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가.

자연스레 혁신형과 일반 기업 사이에 준혁신형이라는 새 카테고리가 생겼다. 매출 규모와 R&D 비율을 교차 적용해 대상을 정한다는 방침은 나왔지만 경계선은 아직 고시 개정 과정에서 확정될 사안이다. 혁신형 인증을 목표로 수년째 R&D에 투자해온 중견 제약사들은 지금 자신이 혁신형이 될지, 준혁신형에 머물지 아니면 일반으로 분류될지 알지 못한다. 일단은 예산을 어떻게 짜야할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3  10년 뒤 이 개편이 성공했다는 것을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

이번 개편은 2026년 하반기 1차 조정을 시작으로 2036년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최소 두 번 이상 정권이 바뀔 시간이다. 개편의 설계자와 집행자는 자연스레 달라진다. 정부는 연간 절감 목표와 재정 효과를 제시했지만 제약산업의 혁신 성과를 어떤 지표로 평가할 것인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개편의 기대효과를 두고 '신약생태계 조성'이라고 이야기했던 정부의 첫 마디는 결국 사라지고 '재정절감'이라는 말도 바뀌어버렸다.

그나마 '의약품 공급 안정'과 '유통 투명화'라는 표현이 있긴 하지만 이는 기존 약가 정책과 코로나19 정국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쓰였던 말이다. 이번 개편만의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10년 뒤에도 '아직 진행 중'이라는 말로 끝날 수 있다. 업계 입장에서는 그 10년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의미를 찾기 쉽지 않다.

물론 일각에서는 업계의 반발을 단순한 이익 집단의 저항으로 읽는 시각도 있다. 일부는 그럴 수 있지만 이를 전부로 보는 것은 억울할 수 있다. 실제 이번 비대위에 참여한 기업 중에는 이미 수년째 연구비 비중을 높여온 곳들도 있다. 이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약가 인하 철회가 아니다.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혁신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명확히 알려달라는 것이다. 투자 계획을 세우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투자는 도박이다.

비대위 기준 상위 100대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 수준이라고 말한다. 이 수치를 두고 '그래도 버틸 수 있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R&D에 매출의 10% 이상을 쏟아붓는 기업에게 3%의 순이익률은 다음 파이프라인을 이어갈 여력이 빠듯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약가 인하 자체보다 언제 얼마나 내려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경영진의 손을 멈추게 한다.

출처=대한축구협회.

축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홍명보 감독 체제에서 선수들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하는 것은 체력 소모나 전술의 난이도가 아니다. 다음 경기에서 내가 뛸 수 있는지,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코트디부아르 전에서는 소속팀에서 우측 윙백(공격과 수비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수비수)으로 나섰던 세르비아 츠르베나 즈베즈다 소속 설영우가 왼쪽을 맡았고, 대전 하나 시티즌의 김문환 역시 기존 수비수 4인 체제(포 백)에서 스리 백으로의 적응이 필요했다. '밥만 먹고 포 백'만 준비하던 선수들에게 급작스러운 변화는 준비 부족으로 이어졌다. 준비하지 못한 선수에게 좋은 경기력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에 가깝다.

제약업계의 수많은 플레이어도 이와 같다. 약가는 내려가지만 3년뒤 시작될 혁신형 기업의 틀에서 우리의 투자가 어떻게 평가받을 지 알 수 없다. 지금 진행 중인 파이프라인은 이 개편 이후에도 수익성이 있는지 알고 싶을 것이다. 이제 발표된 정책에 너무 많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고민에 비해 정부가 내놓은 답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과거 일괄 약가 인하와 '1+3 공동생동 제한' 및 기준요건에 맞는 약가 개편은 퍼센트부터 명확했고 기준도 명확했다. 건정심 의결 전까지 인하폭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번 약가 개편은 세부사항마저 불확실성으로 귀결됐다.

가는 길이 맞는 방향이라고 해도 어떻게 갈 것인지 명확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도 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