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립큐' 손맞잡은 웰트-한독, 이제 노리는건 약의 '운영체계(OS)'
AI 입힌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 '슬립큐', 약 올라탄 플랫폼 진화 목표 약의 힘으로 디지털을, 다시 제약 끌러올리는 '윈윈' 전략 통할까
겉보기엔 별다를 것 없는 건강기능식품 하나. 하지만 포장지 뒷면의 QR코드를 찍으면 인공지능이 말을 건다. 웨어러블을 시작으로 AI 솔루션까지 뻗어나가는 웰트 그리고 투자를 맡으며 디지털헬스에 주력하는 한독의 다음 단계는 이제 약을 다루는 '운영체계'(OS)다.
한독과 웰트는 최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출입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디지털치료제 2호로 지정받아은 '슬립큐'의 진화 로드맵을 공개했다. 이미 허가 임상에서는 수면 효율이 기저치 대비 약 15.14% 향상되는 결과를 확인했다. 현재는 25만원의 비급여로 처방되고 있다.
슬립큐의 버전 1.0은 정해진 CBT-I 프로그램을 6주간 돌리는 구조다. 처방 이후 치료가 시작되면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은 뒤 처방이 나온 종이를 입력하면 치료가 시작된다. 수면 시간 등을 측정하면 콜센터와 전화를 통해 조언을 받고 이를 불면증 환자가 수행하는 인지치료가 진행되는 형태다.
하지만 강 대표는 "거기서 그치려고 시작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1.0버전은 처음부터 AI 탑재를 목표로 했다고 운을 뗐다.
강 대표는 향후 슬립큐가 환자가 차고 있는 웨어러블 기기에서 수면 데이터를 수집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오늘 밤 잠이 안 올 확률'을 예측한다. 강 대표는 병원이 스냅샷으로 찍던 환자를, 우리는 연속 영상으로 본다고 표현했다. 실제 수면의 질을 측정하는 수면다원검사 역시 수 주 동안 많은 기간을 연속해서 관찰해야 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다른 환자의 진료를 보기 어렵고 환자 입장에서도 번거롭다.
더욱이 인공지능이 의학 교과서와 논문을 다 읽었어도 실제 환자를 본 적은 없는 만큼 슬립큐 처방을 통해 불면증 환자의 데이터를 모으고 다시 이 데이터를 훈련시키는 식으로 환자를 케어하는 것이 슬립큐 차기 버전의 목표라고 그는 말했다.
또 하나의 그림은 '콤보'다. 기존 약물에 AI 디지털 치료기기를 결합해 '디지털 융합 의약품'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강 대표는 이를 '여러 약의 OS라고 칭했다.
파트너인 한독의 경우 국내 수면제 시장을 이끄는 졸피뎀 계열 '스틸녹스'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슬립큐 AI를 얹었을 때 의사가 처방 범위를 설정하면 AI가 환자 증상을 실시간 추적해 약을 먹어야 하는지를 가이드하는 단계까지가 가능하다. 약물의 적정 사용은 끌어올리고 부작용은 막는 것이 목표기도 하다.
여기에 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 제제를 비롯해 혈당 관리제, 고혈압약, 공황장애 약물 등 다양한 의약품을 자사 AI 엔진과 접목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나아가서는 국내 제약사 파이프라인에 함께 붙여 기존 약을 '스마트 약'으로 업그레이드하는 플랫폼 사업자의 개념으로 끌어낼 수 있다. 'AI 기술 레벨의 라이선스 아웃'이라는 표현을 강 대표는 꺼냈다.
독일 임상부터 UAE까지
해외 디지털 치료제 시장 진출 준비도
이런 가운데 지난 1월부터는 독일에서의 연구를 진행 중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19일 독일 베를린 샤리테 대학병원에서 첫 환자 등록을 마쳤는데 80명을 대상으로 12주간 부작위 배정을 통해 기존 치료에 슬립큐를 추가한 군과 기존 치료 단독군을 1:1 비교해 효과를 평가한다. 불면증 심각도 지수(ISI)를 1차 평가변수로 삼고 우울·불안·삶의 질 등 다양한 지표도 함께 본다.
이번 임상이 성공할 경우 독일 DiGA 등재를 위한 준비가 갖춰진다. 향후 확증 임상과 보험 등재 절차를 거쳐야 하긴 하지만 이미 지난해 9월 유럽 CE 인증, 11월 ISO 27001 인증을 취득한 만큼 규제 기반은 어느정도 갖춰놨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상호 조약을 활용한 아랍에미리트에서의 움직임도 흥미롭다. 현지에서 에스조피클론 제제 'Jomac'에 슬립큐 AI를 QR코드 형태로 약에 붙여 콤보로 진입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규제가 갖춰진 나라에서는 단독 수가를 타고 규제가 미비한 나라에서는 기존 약에 올라타는 형태로 운영체계의 기반을 갖춰나가겠다는 게 강 대표의 의지다.
디지털이면 '올인원' 가능하다
한독이 디지털 헬스 띄운 이유
웰트의 투자자이자 디지털 헬스에 힘을 들이는 한독의 셈법 역시 '윈윈'에 향해있다. 한독은 2021년 웰트 투자를 비롯해 2년 전 디지털 헬스케어실을 신설하면서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 브리핑에서 발표를 맡은 김경한 한독 기획조정실장은 회사가 디지털 헬스 시장에 뛰어드는 건 단순히 디지털이 아닌 의약품의 전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 실장에 따르면 이미 국내 의료환경은 기존 의사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여기에 만성질환 등의 경우는 단순히 약을 복용하는 것이 아닌 일상 생활의 관리가 자연스레 건강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실제 슬립큐는 물론 식단 관리 등을 돕는 닥터다이어리 등이 대표적인 예다.
환자가 의료현장을 찾아오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레 디지털헬스케어를 보유한 환자-의사 사이의 접점이 만들어진다. 원격기능과 물류, 유통까지의 원스톱이 장기적으로 구축되는 셈이다. 즉 디지털헬스 자체의 가치에 더해 기존 제약사가 운영하던 모든 과정을 한 흐름 안에서 모두 구현할 수 있다
슬립큐를 예로 들면 한독이 판매하는 '스틸녹스'는 국내 수면제 시장의 '근본 치료제' 중 하나이지만 제네릭 경쟁이 이미 농익은 약물이다. 여기에 AI 디지털 치료기기를 결합해 '스마트 수면 솔루션'으로 구축하면 브랜드 차별화와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이 직접 개입해 디지털 기반 치료 솔루션의 고질적 약점인 낮은 완주율 등 부작용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의약품과 디지털헬스가 모두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제약의 역량으로 디지털 헬스케어를 띄우고, 다시 디지털 헬스케어가 '약의 운영체계'를 노리는 이들의 도전이 향후 어떻게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