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로 버티는 골수섬유증 환자 "치료 공백 메울 치료제 절실"
히터뷰ㅣ 정철원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혈소판 5만 미만 환자, 기존 치료제 투여 불가로 '치료 사각지대' 놓여 미국은 신규 치료제 2022년 허가...국내 도입은 '아직'
요즘 부쩍 이른 새벽 식은땀에 젖어 눈을 뜬다. 충분히 잔 듯 한데 몸은 바닥으로 꺼지는 듯하고 개운함이 없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안 좋아진 것일까? 매일 아침마다 하던 공원 산책도 자꾸 숨이 차서 그만뒀다. 뼈 마디마디를 쑤시는 통증도 심해져 병원을 찾았지만 관절염은 아니라고 했다. 나이들면 다 그런거라고 넘어가려했지만, 가족들의 성화에 대학 병원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검사를 마쳤다. 그리고 마주한 병명은 이름도 생소한 '골수섬유증'이다.
- 환자 사례 재구성 -
골수섬유증은 혈액 세포를 생성하는 골수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진행성 희귀 혈액암이다. 골수가 섬유화되면서 혈액 생성 기능이 상실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염증성 물질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의 극심한 피로감과 통증, 체중 감소 등을 유발한다.
그 중에서도 골수 결핍 유형의 환자들은 치료가 장기화될수록 혈소판 수치가 바닥을 치게된다. 그런데 혈소판 수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기존 약물 투여가 금지되면서, 환자들은 치료를 멈추고 증상이 다시 악화되는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임상현장에서 이 치료 사각지대를 메울 새로운 치료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외치는 이유다.
지난 24일 <히트뉴스>와 만난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정철원 교수는 임상 현장에서 마주하는 기존 치료제의 한계와 이로 인한 치료 공백을 메꿀 새로운 치료 옵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 교수는 "기존 치료제를 사용하다가 혈소판 감소로 치료 중단 위기에 처한 골수섬유증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 없이 방치될 경우 2차성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이행될 수 있으며, 특히 고위험군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2~3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일상적 피로와 차원이 달라...고위험군은 백혈병·사망 위험↑"
정 교수는 "골수섬유증(Myelofibrosis, MF)은 말 그대로 '골수(myelo)'가 '섬유화(fibrosis)' 되는 질환이다. 정상적으로 혈액세포가 만들어지는 골수에 섬유성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면서 혈액 생성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환자들이 호소하는 피로는 일반적인 피로와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염증성 물질이 끊임없이 분비되면서 만사에 기력이 없고 쉽게 지치다보니 직장생활 뿐만 아니라 단순 외출도 어렵다.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섬유화된 세포가 뼈를 압박하며 통증을 유발하고, 식은땀과 체중 감소도 동반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섬유화가 진행되면 나중에는 2차성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진행될 수 있다. 골수섬유증이 백혈병으로 가는 것은 유전자에 따라서 속도가 다르지만, 치료를 하지 않으면 대부분 환자가 백혈병으로 간다"고 강조했다. 고위험군 환자의 경우 평균 생존 기간이 2~3년에 불과할 정도로 예후가 불량하다.
혈소판 5만 미만 환자들 치료 중단 직면, 수혈로 버텨보지만...
다행히 골수섬유증은 희귀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치료제가 있다. 또한 치료만 잘 이뤄지면 일상 회복도 가능하다. 정 교수는 "치료제를 써도 저위험에서 고위험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지만, 진행되는 시간은 늦출 수 있다. 특히 환자들이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식욕이 돌아오고 피로감이 사라져 '새 삶을 찾았다'고 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고위험군으로 갈수록 일부 환자에서 골수 내 조혈모세포가 감소하는 골수 결핍 유형이 나타나는데, 이들에게는 기존 치료제의 사용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골수섬유증 환자는 두 가지 양상을 가진다. 질병이 진행될수록 세포가 증식하는 유형의 환자는 혈소판도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지만, 골수 결핍 유형의 환자는 세포 수가 계속 줄어서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이 떨어진다. 특히, 혈소판이 떨어지는 경우는 예후가 안좋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치료제인 룩소리티닙과 페드라티닙은 모두 혈소판 수치가 5만 이상이여야 쓸 수 있다.
실제 임상 보고에 따르면 골수섬유증 환자의 약 25%는 진단 시 이미 혈소판이 10만 미만이며, 5만 미만인 경우도 10% 내외로 추정된다. 치료 도중 수치가 5만 미만으로 떨어지는 비율 또한 15~30%에 달한다. 그런데 기존 치료제들이 골수 억제로 혈소판 감소를 악화시키다 보니, 점차 치료 용량을 감량하게 되고, 이는 치료 효과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약물 중단과 증상 악화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정 교수는 "결국 혈소판 감소가 동반되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러한 치료 공백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며 "중증 혈소판 감소증 환자를 위한 새로운 약제의 공급이 매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환자들은 사실상 치료를 포기하고 수혈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영구적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혈소판 수혈을 하더라도 수혈 효과가 3, 4일 밖에 지속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병원에 방문해 수혈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수혈도 여러 번 받으면 동정면역이 생겨 효과가 떨어지고 열이나 두통, 심하면 합병증인 용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제가 없기 때문에 수혈을 중단할 수 없지만, 그 자체로도 몸에 무리가 되기 때문에 사실 고령 환자들은 오래 못 버티고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미국에선 이미 2022년 허가된 새 치료제...국내 도입 '절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치료 공백을 메울 대안이 마련됐다. NCCN 가이드라인(2024)은 혈소판 수치가 50,000/μL 이하인 골수섬유증 환자군을 고위험군으로 구분하고, 이 환자군에서 파크리티닙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파크리티닙은 혈소판 수치가 현저히 낮은 골수섬유증 환자에 용량 조절 없이 지속 투여 가능해 임상 현장에서 직면하는 미충족 의료수요를 해소할 수 있는 약물이다. 이 약물은 2022년 FDA 허가를 받으면서 미국에서는 치료 접근성이 확보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해당 약물이 아직 허가 전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 교수는 "환자들이 계속 수혈만 받아야 하는 지를 물어본다. 새로운 치료제가 나오면 바로 시작해보자고 얘기하지만, 현재로서는 선택지가 없어 환자들은 수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힘들어 하는 환자를 보면서 의사로써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굉장히 좌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국내에서도 빈혈 환자를 위한 모멜로티닙 등이 허가되었으나, 여전히 중증 혈소판 감소증 환자를 위한 옵션은 전무한 실정이다. 정부가 희귀난치질환에 대한 국가 지원을 강화하고 본인부담금을 낮추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 '쓸 수 있는 약'이 없는 실정이다.
그는 "환자 중 심한 증상 때문에 집에서 꼼짝 못하는 환자가 있었다. 집 앞 외출도 못하는 환자였는데, 치료제를 처방 받고 삶이 크게 달라졌다. 등산도 가고 낚시도 가고. 심지어 밤새 낚시를 하다가 화상을 입어 병원을 간 적이 있을 만큼, 활력이 넘치는 삶을 되찾았다"며 "혈소판 감소증을 겪는 골수섬유증 환자들에게도 처방 가능한 새로운 치료 옵션이 도입된다면 분명히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