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성공률 87%, 기술이전 69건… R&D '타율왕' 파마비전

히터뷰 | 제제 R&D의 판을 바꾸는 파마비전 진종범·민태권 대표

2026-03-03     이현주 취재팀장/기자
파마비전 진종범 대표(왼쪽) 민태권 대표(오른쪽)

제약업계에서 '연구소(Research)'와 '개발부(Development)'는 흔히 창과 방패, 혹은 물과 기름에 비유된다. 개발부는 '시장이 원하는 약을 경쟁사보다 빨리 만들어 내라'고 재촉하면 연구소는 '데이터로 증명하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맞선다. 각자의 입장이 뚜렷하다 보니 크고 작은 마찰은 일상다반사다. 그런데 이 태생적 앙숙 관계를 완벽한 시너지로 승화시키며 업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는 강소기업이 있다. 바로 제제 연구 및 개발 중심 R&D 기술기업 '파마비전'이다.

2019년 설립돼 이제 8년 차에 접어든 이 회사는 현재 16명의 임직원이 이끌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이들이 제약 시장에 던지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지금까지 총 40건의 임상시험을 수행해 87%라는 성공률을 기록했으며 누적 기술이전 계약만 69건에 이른다.

업계 최고 수준의 타율을 자랑하는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파마비전 R&D 센터에서 진종범 대표(Research 담당)와 민태권 대표(Development 담당)를 만나 그들의 생생하고 치열한 스토리를 들었다.

 

 정글로 뛰어든 두 남자… "우리가 뭉친 이유"

파마비전의 시작은 진종범 대표의 치열한 현실 인식과 생존 본능에서 출발했다. 연구소에서 묵묵히 제제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마흔 살 즈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회사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자사 전환 이슈 등과 맞물려 연구 의뢰가 들어왔고, 제제 기술력 하나는 자신 있었기에 회사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연구 개발에 특화된 진 대표는 지속적인 '영업망 확장'과 '사업 기획'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그 시기, 민태권 대표 역시 제약회사 개발부 소속으로 미래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제약회사에서 개발 부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곳이지만, 만약 내 사업을 하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약 비즈니스의 전체 사이클을 경험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R&D 베이스만 갖춰진다면 충분히 독립적인 사업으로 승산이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기술력을 가졌지만 기획과 영업이 필요했던 진종범 대표와 탁월한 시장 분석력을 가졌지만 확실한 R&D 엔진이 필요했던 민태권 대표가 만났다. 물론 주변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연구소 출신과 개발부 출신이 동업을 한다고? 10명 중 9명은 얼마 못 가 깨질 거라고 장담했죠.(웃음)"

하지만 그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비결은 '완벽한 선 긋기'와 '절대적인 상호 존중'이었다. 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개발이나 영업을 모르고, 민 대표는 제제 연구 실무를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영역만 전담하고 상대방의 영역은 터치하지 않습니다. 이 명확한 분업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의사결정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핵심 동력입니다."

파마비전

 

'기획 중심 제제 R&D'라는 신무기
그리고 숫자로 증명하는 실력, 87%의 임상 성공률

파마비전은 직접 약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전통적인 제약사가 아니다. 이들의 핵심 자산은 약물의 물성을 파악해 임상 성공 확률을 극대화하는 제형 설계 역량이다. 단순히 고객사가 의뢰한 대로 약을 만들어주는 수동적인 연구가 아니라 초기 단계부터 임상과 사업화를 동시에 고려하는 '기획 중심의 R&D'를 수행한다.

민 대표는 "시장성을 먼저 철저히 분석해 품목을 선정합니다. 시장에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약, 부가가치가 높은 약을 추려낸 뒤, 진 대표와 함께 제제 구현 가능성을 검토하죠. 시장성에 대한 정확한 타깃팅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제 기술력이 결합하기 때문에 고객사들의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전략은 파마비전 특유의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 비즈니스 모델로 직결된다. 파마비전은 하나의 우수한 제제 기술을 완성한 뒤 이를 복수의 제약사에 기술 이전한다. 실제로 파마비전이 개발한 파이프라인 하나당 평균 3개에서 많게는 6개 제약사와 중복 계약이 체결된다. 이는 파마비전 입장에선 막대한 생산성을 담보하고 파트너사 입장에서는 허가 및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규제 당국의 보완 요구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어 리스크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상생 모델이다.

파마비전을 향한 업계의 신뢰는 철저히 결과와 데이터에서 기인한다. 지금까지 파마비전이 수행한 임상시험 40건 중 무려 87%(2026년 3월 기준)가 동등성 확보에 성공했다. 업계에서 고난도 과제를 포함한 일반적인 임상 성공률이 50~6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진 대표는 "저희는 고객사가 지정한 각기 다른 위탁생산(CMO) 공장에서 장비와 조건이 모두 다른 상태로 연구를 진행합니다. 공장이 다르면 처방도 미세하게 달라져야 하는데, 그 수많은 변수를 통제하고 40건의 동등성을 입증했다는 것은 파마비전의 제제 설계가 그만큼 튼튼하고 재현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를 증명한 사례가 바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PVG-004(테고프라잔)'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테고프라잔의 결정형 특허를 우회해 제네릭을 개발하는 것을 두고 수많은 억측과 불확실한 소문이 난무했다.

"(민) 일부에서는 제대로 원료를 다뤄보지도 않고 부정확한 정보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성급하게 대응하지 않았어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철저히 실질적인 연구 데이터를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수십 곳의 제약사를 직접 찾아다니며 과학적 근거로 설득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제제 기술이 완벽하다는 것을 데이터로 입증해 냈고 이는 파트너사들과의 신뢰로 이어졌습니다. 국내 최초 생동시험 동등성 확보라는 성과도 얻었어요. 69건의 계약 중 단발성이 아닌 후속계약이 이어진 건이 38건이에요(전체 과제 중 약 55%). 파마비전의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찾아주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세계 최초 정제로 제형변경 임상시험에 성공한 시트룰린말산염, 대조약이 변경되는 악조건 속에서 임상과 생동시험을 동시 수행해 일관된 결과를 얻어낸 'PVG-012(프란루카스트 건조시럽)', 국내 처음으로 생동에 성공한 'PVG-009(오시머티닙)' 등 파마비전의 파이프라인 리스트에는 유독 최초와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위기를 기회로, 정책 변화는 두렵지 않다

최근 제약업계는 생동성 규제 강화, 약가 인하 압박, 개량신약 차별성 기준 강화 등 혹독한 정책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제네릭을 주력으로 하는 중소 제약사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위기 상황이다. 하지만 파마비전 두 대표의 표정은 오히려 여유로웠다.

두 대표는 이 상황을 '기회'라고 단언했다. "(민) 규제 환경이 어려워질수록, 결국 살아남는 것은 정교한 개발 역량과 진짜 기술력을 가진 기업입니다. 아무리 약가가 인하된다고 해도 제약회사가 신제품 개발(R&D)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무분별하게 제품을 쏟아내던 관행이 사라지고 시장성이 확실하고 제제 기술 진입 장벽이 높은 품목에 집중하는 현상이 뚜렷해질 것입니다."

파마비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다름 아닌 사람, 바로 조직 문화다. 

파마비전은 이미 설립 초기 제네릭 위주의 개발에서 벗어나 현재는 제형 변경, 복합제, 서방제, 생체이용률(BA) 개선 등 고부가가치 중심의 포트폴리오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시장에서 실질적인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한 품목을 기획하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파마비전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도 결국 품목과 파이프라인이다.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해야 시장에서 고객사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마비전은 회사의 본질인 연구개발(R&D)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올해도 10개 안팎의 파이프라인이 추가될 예정으로, 실제 가동되는 전체 파이프라인은 30개 가까이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대형 제약사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수준의 개발 역량으로 평가된다.

또한 첨단 제제 기술과 정교한 기획력 이면에 자리한 파마비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다름 아닌 사람, 바로 조직 문화다. 파마비전은 설립 초기부터 일정 부분 직원들에게 배당하는 파격적인 보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진) 회사는 대표 두 사람의 힘만으로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밤낮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직원들이 없다면 파마비전의 기술력도 무용지물입니다. 회사가 거둔 성과를 실무자들과 확실하게 나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직원들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파마비전의 직원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의 퇴사율은 제로에 가깝다.

"(진) 외부에서 경력직으로 입사한 분들이 가장 놀라는 것이 조직 분위기입니다.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직원들이 모두 '내 회사, 내 일'처럼 주도적으로 업무에 임합니다. 억지로 끌려가야 하는 저녁 회식 문화도 아예 없앴습니다. 대신 확실한 인센티브와 성과 공유를 통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죠."

 

파마비전의 넥스트, '제약 생태계의 허브(Hub)를 꿈꾸다'

임상 성공률 87%, 69건의 기술이전, 18개의 활성 파이프라인. 놀라운 지표를 달성했지만 파마비전은 여전히 목이 마르다. 이들의 시선은 글로벌로 향하고 있다.

최근 베트남의 AQP사(Research and Control Pharmaceuticals Joint Stock Company)와 임상연구 독점 계약 및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저비용 예비 임상 수요를 충족시켜 새로운 매출을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동남아시아 시장에 파마비전의 파이프라인을 기술 이전해 로열티 수익 구조를 확립하겠다는 치밀한 글로벌 전략을 세웠다. 또한 최근에는 사우디 Alpha pharma와 R&D 및 제제기술이전에 대한 전략적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양사는 항우울제, 비만, 아토피 등 주요 치료영역의 공동연구 뿐만 아니라 파마비전의 파이프라인을 Alpha pharma에 단계적으로 기술이전할 계획이다. 이 역시 GCC 시장에도 진출하려는 것이다. 또한 케미컬 의약품을 넘어 GLP-1 계열을 포함한 올리고·펩타이드 등 고난도 약물 전달 분야로 제제 기술의 영역을 거침없이 확장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 두 대표에게 각자의 궁극적인 목표를 물었다. 결은 달랐지만 결국 파마비전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수렴되는 답변이 돌아왔다.

"(진) 제제 연구자로서의 제 꿈은, 파마비전의 역량을 총동원해 진정한 의미의 '신약' 개발 과정에 참여해 보는 것입니다. 국내 제약 산업의 구조상 대부분 제네릭에 머물러 있지만 다가올 2030년 즈음에는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력이 담긴 신약 파이프라인을 세상에 내놓고 싶습니다."

"(민) 저는 파마비전이 단순한 R&D 기업을 넘어, 제약 산업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드는 거대한 솔루션 허브(Solution Hub)이자 즐거운 비즈니스 놀이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과 사업 모델을 다각화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외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를 믿고 따르는 직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제약업계에서 당당하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연구와 개발, 기술과 기획, 그리고 경영진과 직원이 완벽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곳. 파마비전이 제약 R&D 생태계에 제시할 다음 해답(Solution)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