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품비 배분은 제로썸 게임... 국내 전문약이 왜, 외자사를 위해 희생해야 하나
칼럼 | 원외처방액 1조원도 가능한 키트루다와 약가개편 속내
국민건강보험공단 1월 28일자 보도자료를 보고 '11.28 약가개편 방안'을 통해 국내 제약산업을 쥐어짤 수밖에 없는 보건복지부의 다급한 처지를 확실히 이해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25년 건강보험 총수입은 102조8585억원, 총지출은 102조3589억원으로 2021년 이후 5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흑자 규모는 2024년 1조7244억원에서 4996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흑자규모가 줄어든 원인은 총지출이 5조원 가량 늘었기 때문인데, 그 내역을 보면 ①수가인상 ②비상진료 지원 ③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 본격 시행 등 보험급여비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
건보재정 당국이 직면한 고민은 직장보험료 수입 증가율 감소 등 종합적인 건보재정 관리다. 실제 진료비 증가율이 보험료 수입 증가율보다 2배 높은 상황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1월 9일 2030년 총진료비는 189조 원에서 최대 191조 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했다. 2023년 진료비가 대략 111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7년 동안 80조 원이 불어나게 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11.28 약가 개편 방안의 목표점'은 '정부가 앞세우는 제약산업 체질 개선보다는 건보재정 안정화'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총진료비의 23% 언저리를 오락가락하는 약품비 26조원(2023년 기준)이 빠르게 늘지 못하도록 꾹꾹 밟아주고, 이 참에 한정된 재원(약품비)의 배분을 달리해 '신약급여가 늦다는 다국적 제약회사와 환자단체의 오랜 목소리'도 해소하려는 정책으로 해석 가능하다.
◇ 11.28 약가개편안 : 외자사 받을 이익 〉 국내 제약사 인센티브 총량
'11.28 약가 개편 방안'을 인수분해하면 제로썸 게임(zero-sum game)의 속성이 나타난다. '누가 얻는 만큼 반드시 누가 잃는 게임'이라는 것인데, 복지부의 약가 개편안은 '혁신신약 가치+환자접근성+코리아 패싱'을 엮어 365일 외쳐온 외자 제약사들이 이익을 얻고, 국내 전문의약품(일명 제네릭 의약품)을 주력 비즈니스로 삼고 있는 전통 제약회사들이 잃는 구조다.
'제약산업 구조 개편을 위해 연구개발 기업들에게 약가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은 슈퍼 규제 당국 보건복지부가 많이 잃게 되는 국내 제약회사들을 의식해 나름 정책적 균형감을 맞추려 한 '토닥토닥 보완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국내 제약산업계는 고마워하기보다 반발하고 있다. '외자사가 얻게될 이익이 국내 제약회사들이 받게될 인센티브의 총량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5000억 키트루다 급여 확대가 될때마다 제네릭 약가는 위태롭다
11.28 약가개편은 MSD 면역항암치료제 키트루다로 설명할 수 있다. 2015년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시판 허가를 받은 키트루다는 2017년 8월 비소세포폐암 적응증으로 약제급여목록에 처음 등재된 이후 적응증을 계속 넓혀왔다. 올해 1월 1일부터 13개 암종에서 18개 적응증으로 급여되고 있다. 대한민국 건강보험 시스템에서 급여 확대는 '제약사 A가 13개 신약을 급여받은 효과'와 다르지 않다.
급여 확대의 저변에는 원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 OSMU) 전략을 펼치는 MSD의 중단없는 임상개발 비즈니스와 함께 한달 약값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비급여 항암제를 복용하며 삶의 희망을 이어가는 환자들의 급여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다.
매출이 5000억원대(아이큐비아 기준)에 이르는 키트루다의 암종과 적응증이 늘어나 건강보험급여를 확대할 때마다 '제로썸 게임이 작동하는 건보재정 운영'에서 제네릭 의약품은 잠정적 약가 인하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슬픈 존재가 되었음을 '11.28 약가개편안'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몇년 간 약품비 비중을 보면 정부가 인내할 수 있는 약품비 비중은 20% 초반으로 볼 수 있는데, 약품비가 느는 추세가 감지되면 정책 관계자들 시선은 자동으로 제네릭 의약품을 바라봤다. 키트루다 성장세를 보면 단일품목 사상 원외처방 1조원 돌파도 머잖아 실현될 것으로 보이는데, 미래 '성장분 5000억원'은 MSD에겐 기쁨, 국내 제약회사들에겐 가까운 미래의 눈물이다.
◇ 2012년 상처 핥으며 뛰어왔더니 2012년으로 되 돌아가라는 정책
신약개발 기술을 수출한 한미약품 유한양행 대웅제약 종근당 GC녹십자 등 규모가 있는 국내 제약회사는 물론 국내 전통 제약회사들은 품질이 우수한 의약품을 '건강보험 시스템' 안에 안정적으로 공급해 왔다. 쿠팡과 달리 외자사들이 '대한민국 건강보험 시스템 안'에서 순응하는 것도 건강한 국내 제약회사들의 존재감 덕분이다. 몇몇 외자사가 가격이 맞지 않는다며 한국 시장철수를 결정할 때 국내 제약사들이 거뜬히 커버한 것도 사실이다.
정책은 시대의 문제의식과 함께 미래 개선 방법론을 담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에 애정을 품었던 공무원들이 글로벌 제약강국을 넘볼 수 있는 오늘 날 제약산업을 키웠다. 국내 제약회사가 R&D 투자를 늘려 혁신의 기업으로 도약해 글로벌에서 돈을 벌어들이려면 '건강보험 약가정책 안 캐시 카우가 살아야 한다'는 신념은 곳곳의 정책으로 나타났다. 그 덕분에 국내 신약을 41개나 개발하고, 조단위 신약개발 기술 수출과 함께 글로벌 신약을 넘보는 제약선진국 문턱에 도달했다.
정부가 설정한 글로벌 5대 제약강국이 정부 비전으로 내걸린 상황에서 2012년 일괄약가인하를 빼닮은 11.28 약가 개편안이 툭 튀어나왔다. 2012년 일괄 약가인하의 깊은 상처를 어렵게 회복하며 2025년까지 달려 왔는데, 다시 2012년 출발점으로 돌아가라는 정책과 다르지 않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눈물을 철철 흘리고, 외자사들은 웃음을 참지 못해 돌아서서 입을 가리는 '11.28 약가 개편안'은 당국이 내놓을 수 있는 최적기, 최고의 정책으로 일수불퇴(一手不退)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