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포커스] 정부에 '원칙과 융통성' 사이 정책 고민 던진 휴텍스 소송
이우진의 PERI-SCOPE | 휴텍스 약가취소 승소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코로나19로 자사생동 후에도 변경허가 못받아 15% 약가인하 이후 2년간 이어진 소송전…'일관성의 예외' 인정했다
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한 판결이 있었다. 한국휴텍스제약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약가인하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1심 패배를 뒤집는 판결이었다.
이 소송이 주목받는 이유는 정부의 약가 인하를 취소했다는 것뿐만은 아니다. 행정은 엄격해야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법원이 정해준 사례기 때문이다. 사건의 흐름을 알기 위해 1심의 판결문과 소송 기록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사건의 시작은 2020년 6월 30일. 정부가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 계획을 공고하면서부터다. 2018년 발사르탄 불순물 검출 사태 이후 양질의 제네릭 생산과 함께 그 약가 체계를 개편하려는 정책이었다. 기준은 명확했다. 자체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자료 제출과 등록된 원료의약품 사용 입증 서류 제출이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면 약가를 유지하겠다는 조건이었다.
한국휴텍스제약은 이같은 발표에 위탁제조하던 의약품들을 자사제조로 전환하려 했다. 여기에 생동시험도 시작했다. 계획서 제출 기한은 2023년 2월 28일이었다.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기에는 아직 2년 8개월의 시간이 남았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코로나19 과정에서 단순히 제조단가만 오른 것이 아니라 생동에 참가할 이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소위 '시국이 시국인' 상황이 펼쳐졌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23년 5월 4일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가 열렸다. 한국휴텍스제약은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는 생동시험과 임상 자료일 뿐 품목허가 변경은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식약 당국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필수의약품, 생동성시험으로 인한 변경 업무 등이 몰리며 상대적으로 변경허가가 늦어진 것이었다.
약 일주일 뒤인 그해 5월 10일 회사는 평가결과를 받아들었다. 약가 인하 메시지에 회사는 이의신청을 진행했다.
한 달 뒤인 6월 8일 한국휴텍스제약은 위탁제조 허가증에 따라 이미 등록된 원료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자사제조로 변경을 시도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변경신청은 기한 이전에 진행했고 추가 신청도 마쳤다고 주장했다.
이미 다수의 제약사들이 동시에 변경신청을 한 상황에서 회사는 불가항력임을 어필했다.
다시 한 달여가 지난 2023년 8월 1일.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이의신청을 심의했다. 하지만 10일 뒤 나온 결과는 약가인하였다. 품목허가가 변경되지 않아 등록된 원료의약품 사용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변경 허가가 완료됐다는 허가증이 없으면 기준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2023년 9월 1일 정부는 한국휴텍스제약의 품목에 15% 추가 인하를 단행했다.
회사는 변경신청에 대해 식약처 심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고 2024년 1월 3일에야 일부 품목 변경허가가 승인됐다. 그러나 약가인하 타격은 그대로 받았다.
회사는 기한 이전에 신청했지만 심사가 밀렸고 그로 인해 약가가 15%가 깎였다. 결국 회사는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의 책임을 함부로 따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1년간 법정논쟁이 이어지던 2025년 1월 17일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정부가 옳다고 판단했다. 내용은 이러하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늦어도 피고측이 약가를 유지할 수 있는 충족 여부를 확인해 약제급여 목록표의 변경 고시가 이뤄질 시점에는 허가를 받아 입증서류를 제출하는 것이 맞다.
등록된 원료의약품을 (허가증 없이) 사용할 예정이라는 사정만으로는 기준요건인 DMF 등록의약품 사용을 충족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정부가 2020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약 2년 8개월을 유예기간으로 제공했으므로 충분했다고 본다.
1심 재판부 판결 논리는 '절차'였다. 기준이 명확했고 기준 역시 충분했기에 정부의 조치는 적절했다는 뜻이었다.
1년의 소송, 1년의 항소... 승부는 업계 편으로 뒤집혔다
한국휴텍스제약은 불과 4일 뒤 항소장을 제출했다. 2심에서 준비서면이 더 늘어났다. 1심 준비서면은 4회인 반면 2심은 11회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2025년 9월 4일 변론 종결 후 나온 변론에서 도과기간확인 석명준비명령이다. 물론 서면이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지나온 소송에서 1심이 봤던 그 논리가 과연 맞을까를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2심 판결문이 나오지 않아 정확한 이유를 알기 어렵긴 하지만 1심 판결문을 다시 보면 그 안에 든 판시 중 '생물학적동등성시험 등 수행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크다', '품목허가 변경이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준요건1의 충족을 인정하는 것은 형평의 관점에서(중략)' 등의 표현이 나온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한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나온 2026년 1월 15일 판결은 한국휴텍스제약의 승소로 돌아갔다. 대법원 상고가능성도 있지만 2심에서 정부 측 논리를 무너트리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정부의 정책은 일관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를수도 있다
한국휴텍스제약의 변경허가 신청을 통한 자체 생산은 약가를 받기 위한 움직임이기도 하지만 실제 정부가 원했던 '양질의 의약품 공급'이라는 목적에도 어느 정도 부합한다. 자체생산을 하지 않는 의약품이 상당한 상황에서 생동시험까지 진행하면서 품목을 자체생산으로 돌리는 것은 정부의 정책에는 맞는 대처다.
물론 정부가 준 시간도 충분했지만 그 시간을 둘러싼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원료와 부재료 부족은 물론 원가 인상으로 제품들이 걸핏하면 품절됐다.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에 생동성시험은 물론 임상마저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바이오업계에서 자금부족을 겪는 회사도 있을 만큼 환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은 상황이었다.
정부의 정책 일관성은 있었지만 상황을 둘러싼 현실성 부족은 업계 내부에서 의문이었다.
허가를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심사관을 대거 충원하겠다고 밝힐 만큼 처 승격 이후 인력 부족을 꾸준히 호소해왔다. 코로나19에서 식약처 공무원들은 '며칠 씩 집에 못들어가 옷을 준비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정신없는 때였다.
정부는 안정된 산업계의 생태계 구축과 양질의 의약품 공급이라는 점에서 정책적으로 일관된 움직임을 보인 것은 맞다.
이런 상황에서 1심을 뒤집고 2심 승소를 내린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질문을 던진다. 이 불가항력적 상황을 이유로 약가 인하라는 '페널티'를 주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실제 2심 과정에서 회사는 ①자사제조로 전환하려던 노력 ②생동시험을 진행하려던 노력 ③기한을 못 맞춘 상황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증거에 집중했다. 비록 '한 판례'지만, 이번 소송이 정부와 산업계가 동반자로 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과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