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희귀질환 맞춤형 치료, 이제는 '신속투자' 정책이 관건"

특별기고 | 박소라 재생의료진흥재단 원장

2025-12-24     히트뉴스
재생의료진흥재단 박소라 원장

최근 미국에서 보고된 아기 KJ의 맞춤형 in vivo 유전자치료 사례는 첨단 기술의 진보를 넘어, 초희귀질환 치료에서 국가와 제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생명을 위협하는 초희귀 유전질환을 진단받은 이 아이에게 미국 의료진은 수개월 만에 맞춤형 치료제를 설계하고, 독성시험과 영장류시험, 제조와 임상 투여까지 빠르게 연결했다. 이는 뛰어난 연구자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성과다. 이 사례의 본질은 기술 자체보다 속도, 그리고 그 속도를 가능하게 한 정책·재정·규제의 결합 구조에 있다.

미국에서는 초희귀질환과 같은 고위험·고긴급 영역에 대해 일반적인 연구비 공모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집행 가능한 자금이 작동한다. 대학병원은 자체 전략기금을 활용해 초기 위험을 감수하고, 규제기관은 사전 협의를 통해 독성시험 범위와 임상 설계를 신속히 조율한다. 이후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이나 공공 기금이 후속 연구비를 연계하는 구조다. 이는 연구개발 단계를 나누어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자를 중심에 둔 전주기 투자 모델이다. 이러한 흐름은 초희귀 유전질환 치료제를 무상으로 개발·공급하는 n-Lorem 재단, 환자·의료인·정책결정자가 함께 참여하는 환자중심성과연구원(PCORI)과 미국 국가보건기구재단(FNIH) 등 환자 중심 연구비 모델에서도 확인된다. 이들 기금은 치료 효과와 환자의 삶의 질, 사회적 가치를 데이터로 축적해 향후 급여와 정책 결정의 근거를 만든다. 초희귀질환 치료를 시장 논리가 아닌 공공 정책의 영역으로 다루는 이유다.

반면 한국의 연구개발 지원 체계는 여전히 속도에 취약하다. 연구비는 연 단위 공모에 묶여 있고, 독성시험·제조·임상·장기추적은 서로 다른 제도와 예산으로 나뉘어 있다. 규제 상담, 연구비 선정, IRB 심의 역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그 결과 과학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치료라도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 과도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제는 희귀질환 맞춤형 치료를 기존 연구비 체계에 그대로 얹어 연구자 중심으로 운영할 것인지, 아니면 별도의 '전용 차선(fast lane)'을 만들어 환자 중심으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선택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나라는 혁신 기술을 보유한 연구자와 이를 치료로 연결할 수 있는 연구중심병원 제도, 그리고 첨단재생바이오법을 통해 임상연구와 안전관리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치료제 개발 단계에 맞추어 규제와 자금이 신속하게 제공되는 '국가 신속투자펀드(National Fast Capital Fund)'가 도입된다면, 초희귀질환 맞춤형 치료의 실현 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 펀드는 독성시험·영장류시험·GMP 제조·임상 준비·장기추적까지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수 주 내 결정·집행하는 구조여야 하며, 이를 위해 일반 연구비와는 다른 절차와 기금 회계, 법적 특례가 필요하다. 또한 소용량·다품종·신속 제조를 가능하게 하는 공공–병원–CDMO 연계 허브와 결합되어야 한다.

미국의 베이비 KJ 사례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제때 절실한 환자에게 도달하도록 만드는 정책의 속도라는 점이다. 이제 한국도 "기술은 충분하지만 제도가 느리다"는 평가를 넘어, 신속투자라는 정책 도구를 갖춘 초희귀질환 맞춤형 치료 연구개발 선도국가로 나아갈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