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포커스] 제약업계의 자사주 교환은 '상호 불가침 조약'
상법 개정 영향 속 시너지? 주요 제품군도 사업군도 겹치지 않아 담합 의심+적대적 M&A 등 사전 방어용이다 분석도 나와
연말 제약회사 간 자사주 상호 교환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중견 제약사가 공시를 통해 맞교환 거래를 발표한 가운데 경쟁구도가 크지 않은 회사를 대상으로 '불가침 네트워크'를 만들어 상법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이어질 듯 보인다.
이달 11일부터 19일까지 ①환인제약을 중심으로 동국제약ㆍ경동제약ㆍ진양제약 ②한국유나이티드제약과 환인제약 ③일동제약 지주사 일동홀딩스와 국제약품 간 자사주 교환 공시가 연속해 나왔다.
환인제약은 11일 동국제약·경동제약·진양제약 등 3곳과 자사주 맞교환을 공시했다. 회사는 동국제약에 60만주, 경동제약에 40만주, 진양제약에 31만6880주 등 총 131만6880주, 154억원 규모를 처분했으며 이들 회사도 동국제약 37만1987주, 경동제약 77만4257주, 진양제약 90만4391주를 환인제약에 넘겼다. 환인제약 전체 발행주식의 약 7.08%에 해당하는 양이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과 환인제약은 18일 자사주를 맞교환한다고 밝혔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총 95만4750주, 약 191억원의 자사주 처분을 공시하면서 이 가운데 51만9750주(약 104억원)를 환인제약과 교환하기로 했다. 같은 날 환인제약은 90만주(약 104억원)를 한국유나이티드제약과 맞교환했다. 이 거래를 통해 유나이티드제약은 전체 보유 자사주 규모를 189만2187주에서 93만7437주로 절반 이상 줄였다.
하루 뒤인 19일 일동홀딩스와 국제약품도 자사주 전량을 맞교환하기로 했다. 일동홀딩스가 보유한 24만8311주, 국제약품이 보유한 79만7330주를 상호 교환했다.
연말 자사주 맞교환의 배경에는 상법 개정을 둘러싼 제도 환경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회와 정부를 중심으로 논의 중인 소위 '3차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를 포함한 기업 지배구조 전반을 손질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소속 오기형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취득 후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의무화하고 △예외적으로 임직원 보상·우리사주제도·신기술 도입·재무구조 개선 등 목적을 가진 경우에만 주총 승인을 받은 뒤 보유할 것 △위반 시 이사 개인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것 등의 내용이 골자다.
실제 이같은 내용은 이재명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코스피 5000' 시대를 외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관련 기사 참조)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상태다. 실제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3차 상법 개정안을 연내 마무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으며 당 지도부가 기존 보유 자사주에는 처분 유예기간을 최대 2년까지 허용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다만 같은 기간 국회 본회의 일정이 여야 대치 등으로 지연되는 국면도 확인되고 있어 정기국회 내 최종 통과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시너지' 외쳤지만, 업계선 "불가침 조약" 이유는?
자사주 교환 거래에 참여한 기업들은 공시를 통해 사업적 시너지 및 전략적 협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다만, 업계에서는 실제 거래 구조를 보면 현실적으로 당장의 시너지가 날 만한 구조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환인제약의 경우 매출의 80% 이상이 중추신경계에서 나오는 국내 정신신경계 약물의 대표주자 중 하나다. 다만 나머지 회사들은 이 같은 라인업이 매우 빈약하다. 일동홀딩스와 국제약품 역시 마찬가지다. 내분비와 소화기,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등이 강한 일동제약과 달리 안과 등이 강한 국제약품과 겹치지 않는다.
즉 주력 사업, 영업 채널, 파이프라인 등에서 직접적인 경쟁 관계가 제한적이어서, 단기간 내 실질적인 협업 성과로 이어지기 쉽지 않은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단순 지분 교환인데다가 혹여 실제 협업을 해도 경쟁자를 만드는 상황이 된다. 즉 시너지를 추구할 만한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해당 거래를 보면 사실상 과거 GC녹십자와 적대적 인수합병 이슈가 있었던 일동홀딩스(일동제약)를 제외하면 창업주 일가의 영향력이 강한 기업으로 꼽힌다. 그렇기에 업계 관계자들은 자연히 이번 자사주 교환은 사실상 '침범이 어려운 회사들의 불가침 네트워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같은 선택에는 현실적 제약이 작용한다. 국내 제약사 중 특정한 분야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회사들의 지분 맞교환은 담합 또는 공동행위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단순 투자라고는 해도 영업·임상·가격 정책 등에서 내부 통제 문제 가능성도 있다. 특히 대주주 입장에서는 실제 협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리스크 부담이 크다는 점도 맞교환이라는 형태로 이어지지 않았냐는 관측이다.
그렇다고 자사주를 그대로 보유하면 향후 제도 변화에 따른 규제 리스크가 남고 소각을 선택하면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이 발생한다. 반면 자사주 교환을 선택할 경우 자사주 비중을 낮추면서도 기존 지분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상법 개정 방향에 따라 언제든 비교적 조용히 정리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게다가 현행 법령상 위법 소지는 사실상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상법 개정 취지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남고 이 같은 거래가 확산될 경우 금융당국이 향후 유사 사례를 관리·감시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가도 나오지만 현재로써는 그나마 할 수 있는, 자사주를 지키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이야기는 이 때문에 나온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창업주 일가가 신약개발이나 회사 운영해서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자사주다. 그만큼 경영권과 창업주 일가의 자유로운 운영이 가능했는데 상법 영향으로 지분 희석이나 주주와의 마찰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다고 그 수많은 자사주를 퇴직 후 활용하는 스톡옵션으로 나눠줄 수도 없는 만큼 자연히 자사주를 (타 제약사에) 이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내 업계에서도 자사주 비중이 높은 제약업계인 만큼, 모험없이 자사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같은 수단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