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형제약 약가 가산, 신약 촉진보다 '기업간 깜깜이 경쟁' 키워
내년 7월 새 가산제도 시행 앞두고 눈치 싸움 우려 업계 "30%룰 혁신형 가치와 모순" 지적
정부가 최근 약가 개편안을 발표한 가운데 혁신형 제약 인증 기업 약가 담당자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혁신형 제약 기업이면서 R&D 비율 순위대로 약가 가산을 적용한다는 방침 때문에 대응 전략이 바뀌면서 치열한 눈치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복지부의 가산제도 개편안은 혁신형제약기업 우대 구조를 명확히 반영하고 있다. 내년 7월부터 기본 가산제도(혁신형제약 68%, 비혁신형 59.5%)가 폐지되고 혁신형 제약기업 등의 R&D 투자 수준에 따라 가산율을 차등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특히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이 상위 30%면 68%, 하위 70%면 60%의 가산율이 적용된다. 가산 기간은 3년 플러스 알파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혁신형 제약이라면 자동으로 68%의 기본 가산이 들어갔다"며 "하지만 이제는 혁신형 인증 제약 기업 사이에서도 신약 등 연구개발투자 비율이 높은 기업, 즉 상위 30%에 들어야 약가 가산을 더 주겠다고 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혁신형 제약사 약가 담당자들의 시선이 '30%'를 향하고 있는 배경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5년 11월 기준 혁신형 제약사는 총 49개다. 이중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상위 30%, 즉 15개 순위 안에 들어야 '68%'의 가산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혁신형 제약사 약가 담당자들이 서로의 R&D 비율을 파악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돌입할 수 있다는 지적이 들리고 있다.
중대형 제약사 약가 담당 부장은 "15개사 경계에 있는 회사 전부가 상위 30%에 들어가서 68%의 가산을 받고 싶을 것"이라며 "약가 담당자들은 정보를 취합해가면서 '올해 R&D 얼마나 쓸 것 같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 서로의 R&D 비율을 파악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전략이 도가 지나치면 과도한 눈치 싸움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그동안 약가 정보를 공유하면서 공동 전선을 구축해왔지만 혁신형 제약사들이 서로를 경쟁자로 보는 이상 상대의 R&D 비율을 가늠하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혁신형 제약기업의 취지에 맞는 행태는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중소 제약사 약가 담당 팀장도 "제네릭 약가에서 8% 가산을 3년 동안 유지하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차이"라며 "대부분의 혁신형 제약사 임원은 약가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68%를 가져오라' 지시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 실무자들이 8% 가산을 더 받기 위해 무리한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혁신형 제약사의 '매출액 대비 R&D 비율' 상위 30% 랭킹이 매년 달라진다는 측면에서 적정 R&D 투자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싸움을 치열하게 벌여 30% 박스권 주변 혁신형 제약사 R&D 투자비율을 파악할 수는 있다"며 "그러나 매년 박스권의 비율이 변할 뿐더러 상위권에 자리한 바이오사들의 R&D 투자 비율은 해마다 변동 폭이 크다. 때문에 R&D 비율을 얼마나 늘려야 30% 상위사에 들어갈 수 있는지 회사 스스로도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정부 약가 개편안은 혁신형 제약사들의 '눈치 싸움'과 '깜깜이' 행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지적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상위 30%룰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형 제약사 출신 약가업무 관계자는 "혁신형 제약 인증의 취지는 연구개발(R&D) 능력과 글로벌 시장 진출 역량을 갖춘 제약기업을 선별해 집중 지원해서 신약 개발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30% 룰 도입함에 따라 회사들이 8% 가산을 더 받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은 이같은 취지와 정면으로 모순된다"며 "정부가 혁신형이라는 가치에 맞게 과거처럼 일관된 약가 가산을 적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혁신형 제약사 중심으로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을 늘리기 위한 꼼수가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 규모가 크면 그만큼 취급하는 제네릭 품목이 많기 때문에 8% 약가 인하는 치명적이다"며 "이들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임상 계획 승인 등을 서둘러 제출해 R&D 투자 비율을 의도적으로 늘릴 수 있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투자액을 짧은 시간에 늘려 약가 가산 8% 추가로 얻는 이득이 더욱 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