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팜비오, 니치 마켓 전략 통했다… '노자임' 스테디셀러 등극

장용코팅 2mm 크기 주목, 업계 "20년 전 미충족 수요 예측 적중"

2025-12-18     최선재 기자

한국팜비오의 '노자임캡슐(주성분 판크레아틴)'의 꾸준한 약진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시장 도입 초기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췌장 효소제 시장에서 100억원 이상 매출을 일으킨 간판품목으로 급성장했다는 이유에서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팜비오는 일찍부터 노자임의 제형적 특성을 주목하고 니치(틈새)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져 매출이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한국팜비오는 2005년, 독일 노르트마르크사가 개발한 췌장 외분비 부전증 치료제인 노자임 캡슐을 국내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췌장 외분비부전증은 만성췌장염 환자가 겪는 증상으로 췌장(이자)의 외분비선에서 분비되는 효소가 결핍되어 지방성 설사를 하거나 흡수 장애가 생기는 증상을 말한다.

당시 췌장암은 10만 명당 10명 정도 발생하고 췌장암의 위험인자 만성췌장염은 5-12명 정도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었다. 췌장 외분비 부전 치료 시장 규모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노자임캡슐은 췌장 효소제 시장을 주도하는 리딩품목으로 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팜비오는 2020년 알약형 장 정결제를 개발하면서 이름이 알려진 제약사"라며 "한국팜비오가 노자임캡슐을 들여왔을 당시 이를 주목하는 제약사들이 없었다"라고 밝혔다. 노자임 캡슐은 그러나 도입 20년만에 췌장 효소제 시장을 주도하는 리딩 브랜드로 자리잡아 매년 100억 이상의 매출을 일으키면서 한국팜비오의 간판 품목 지위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아이큐비아 데이터에 따르면 노자임캡슐은 2021년부터 승승장구했다. 2021년 노자임 매출액은 142억원을 기록했고 췌장 효소제 시장 점유율은 80.9%였다. 2022년 137억원, 2023년 138억원, 2024년 119억원으로 블록버스터 지위를 굳혔다. 같은 기간 시장 점유율은 80.9%, 81.1%, 77.7%, 80.2%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73억원으로 79.4%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출시 약 10년 만에 췌장 효소제 시장 강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한국팜비오가 췌장 효소제의 제형적 특성에 주목한 점이 노자임캡슐의 약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들리고 있다. 

중대형 제약사 개발본부장은 "만성 췌장염 치료 시장은 미충족 수요가 높지만 환자가 적어 대부분의 제약사가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이라며 "그러나 한국팜비오는 대다수 제약사와 달리 희소 분야의 미충족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 즉 니치 전략으로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일찍부터 만성 췌장염 치료제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배경"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특히 췌장 효소제 시장은 장용코팅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맞아야 하는 시장"이라며 "장용코팅 제형 기술을 지닌 파트너사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팜비오는 노르트마르크사를 설득해 파트너십을 맺는데 성공했다. 제형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시장에서 적절한 파트너사를 찾아냈고 이것이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자임캡슐 25000 이미지. 사진= 한국팜비오 제공

실제로 유럽췌장학회(United European Gastroenterology, UEG)와 유럽소화기학회(ESPGHAN) 가이드라인은 만성췌장염 환자에게 필요한 '췌장효소 대체 요법(PERT)'을 위해서는 '장용 코팅'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내과 전문의 의견에 따르면, 췌장효소대체요법(PERT)은 충분한 양의 췌장효소가 분비되지 않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분비되지 않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췌장효소를 외부적으로 보충해 주는 요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췌장효소제를 통해 정상적인 체내 소화 환경을 최대한 유사하게 재현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돼지, 소 등에서 추출한 판크레아틴에 포함된 충분한 양의 리파아제(lipase, 지방 분해 요소)를 공급해야 한다. 

리파아제 효소가 활성을 유지하며서 십이지장까지 제대로 전달돼야하기 때문에 췌장 효소제는 '장용코팅'이라는 제형적 특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유럽 가이드라인의 첫번째 조건이다. 

국내 제약사 소화기 임상연구팀 관계자는 "만성 췌장염 등 췌장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은 췌장에서 판크레아틴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지방이 분해가 되지 않는다"며 "대변에 지방이 둥둥 떠다닐 정도로 지방변 증세가 심한 이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여기서 판크레아틴에 포함된 리파아제를 공급해줘야 한다"며 "판크레아틴 효소는 단백질의 일종이기 때문에 산성에 민감하다. 판크레아틴이 장용 코팅이 되지 않으면 십이지장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산성이 강해 위에서 불활성화 즉 파괴된다. 판크레아틴은 장용코팅이란 특수한 제형적 조건이 있어야 십이지장까지 도달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장용코팅' 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조건이 있다. 바로 '미립정'의 형태로 입자 크기를 2mm 이하로 유지해야 판크레아틴 성분의 약효 발현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한국팜비오 관계자는 "위와 십이지장 사이에 있는 유문부는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음식물을 조절하는데 정제 크기가 크면 비교 용출 시점이 늦다"며 "유문부에 머물다가 십이지장으로 천천히 내려가기 때문이다. 정제가 2mm 이하 크기를 유지해야 유문부에 머물지 않고 십이지장으로 음식물과 동시에 내려가서 충분히 약효가 발휘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장용코팅'과 '미립정'이란 특수한 제형적 조건이 충족되면 만성췌장염 환자들의 지방 흡수 효율이 좋아지면서 지방변이 줄고 영양상태가 개선될 수 있다. 유럽 학회 가이드라인이 췌장두부암, 중증 만성췌장염, 중증 괴사성 급성췌장염 이후, 췌전절제술 이후 등 췌장 외분비 기능장애가 나타날 개연성이 높은 환자들의 경우 별도 진단 없이도 경험적으로 PERT 치료를 권장하고 있는 배경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한국팜비오의 니치 전략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췌장 외분비 부전증이라는 '미충족 수요'를 발견하고 틈새 시장을 꾸준히 공략한 결과 시장의 수요를 제대로 예측해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2015년 노자임캡슐은 초창기 만성 췌장염 환자를 대상으로만 주로 쓰였다"며 "미축종 수요가 있지만 시장 크기가 협소했다. 당장 환자가 늘어나 시장이 커진다는 예측도 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흐르면서 만성 췌장염 뿐 아니라 급성 췌장염은 물론 췌장암 환자에게도 노자임캡슐이 쓰이고 있다"며 "췌장효소제가 지닌 제형적 특성을 일찍 주목함으로써 시장 확대를 정확히 예측했다. 회사가 확신을 가지고 10년간 니치 전략을 고수해 성과를 보이고 있는 점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