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깎아 R&D 보상" 약가개편에 제약업계는 "2012년 일괄인하 악몽 재현"
조원준 민주당 수석전문위원 "일괄약가인하와 달라" 제약산업계 "2012년 일괄약가인하와 사실상 똑같다"
금명간 공개 예정인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을 두고 정부 여당은 이번 개편안은 단순히 약가만 깎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는 '생태계 구축'에 초점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제약산업계는 그러나 '10층 건물을 단번에 7층 건물'로 낮춰버렸던 '2012년 일괄약가 인하와 결론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인식하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24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관에서 열린 '2025 KPMA 헬스케어 포럼'에 참석한 민주당 정책위원회 조원준 수석전문위원은 새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의 취지와 방향성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민주당 의약정책 싱크탱크인 그의 말은 제약산업의 미래와 직결되는 터라 참석자들은 숨죽여 지켜봤다.
2012년은 깎으려던 것, 2025년은 키우려는 것?
조 수석전문위원, "혁신 보상과 생태계 구축" 강조
조 위원은 먼저 2025년 약가개편이 2012년 일괄약가인하제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운을 뗐다. 2012년 약가개편은 재정 절감이 목표였다면 이번 약가개편은 '혁신의 확실한 보상'을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이야기다.
조원준 위원 말을 종합하면 2025년 약가개편의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은 '뒷단 보상'이다. 2012년 일괄약가인하가 재정 절감에 일시적 효과가 있었을지 몰라도, 같은 제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며 나온 결과물은 기업들을 안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CSO 양산과 제약사의 무임승차와 과잉 경쟁을 부른 만큼 신약개발 연구를 진행하는 곳에는 단순 제네릭 판매사와 달리 확실한 이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실제 앞단(가격인하)과 뒷단(기업 보상)을 함께 설계했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로는 ①협상 절차 최소화와 예측가능성 강화 ②환급제 적용 대상 확대 ③R&D 투자의 직접적 보상 방식 도입 ④충분한 가치를 갖는 의약품에 대한 인정 구조 완화 및 사후 관리 예외 적용 등이 이재명 정부의 약가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원가관리 체계도 정비해 기본 가산을 폐지하고 정책 가산을 확대해 정책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조정한다는 내용이다.
조원준 위원은 "2012년 당시 모든 기업이 동등한 기본 가산을 받아 혁신 여부와 관계없이 동일한 구조였다"며 "이번에는 기본 가산을 없애고 정책 가산(혁신, R&D, 필수의약품 공급 등)을 확대해 노력하는 기업과 (그렇게) 하지 않는 기업을 구분하자는 것이 정책 의도"라고 강조했다.
R&D 미 투자 기업에게는 상대적 혜택을 감소시키며 필수의약품 공급 기업에게는 별도의 기준을 적용하는 등 제약사가 가진 공공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조 위원 발표의 골자다.
이같은 내용을 요약하면 앞단에서 가격인하로 재정을 절감하고 절감된 재정으로 뒷단에서 혁신 기업 보상으로 재투자되며, 기업들이 R&D에 투자할 여력을 확보해 신약 개발을 늘리고, 결과적으로 국민이 혁신 의약품의 이득을 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읽혀진다.
현장의 반응은 냉담... '2012년과 다를 것 있냐'
사실상 '일괄약가 인하 시즌 2 불과' 비판론도
조 위원 발표이후 관계자들의 분위기는 냉담했다. 질의응답에서 2012년 일괄약가 인하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같은 반응은 실제 약가 인하라는 키워드 자체가 업계에 미치는 타격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실증 연구 보고서는 업계의 의구심을 데이터로 뒷받침한다.
2012년 약가인하에 노출된 제약기업의 매출액은 2013년 34% 감소했으며 2019년까지 26~51.2%의 지속적 감소가 이어졌다. 약가 감소가 합성의약품 제약사의 연구를 줄이는 동시에 소비자 부담마저 13.8% 늘어났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일부 기업의 경우 그 타격이 컸던 만큼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장통을 겪고 있는 곳마저 있다.
또 약가인하가 없었다면 추가로 발생했을 매출액 성장세를 잃어버린 만큼, 제네릭 사업 비중이 높은 우리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이 위협받는 위기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2012년의 약가 인하는 단순 매출이 아닌 기업들의 행태도 바꿨다. 실제 연구 결과에서 약가인하에 노출된 제약기업들의 급여 전문의약품 생산량 증가는 노출되지 않은 통제 기업 대비 14~36%p로 이어졌다. 협회의 후생 분석을 넣으면 약가인하만 있었을 경우 소비자 부담은 10.4% 감소했지만 기업들이 비급여로 이탈하는 풍선 효과로 건보 부담은 늘려도 소비자 부담은 13.8% 증가한 셈이다.
여기에 미인하 급여의약품의 생산을 크게 늘이며 일괄약가인하 이후 약가인하 대상이 되지 않은 급여의약품의 생산 비중이 2012년 0.6%p에서 2018년까지 최대 10.5%p까지 증가했다. 평균으로는 5.7%p 증가했다. 저렴해진 의약품은 만들지 않고, 가격이 유지되는 약은 생산을 늘리면서 결과적으로 정책 효과를 희석시켰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해외 원료 사용 증가, 매출을 위한 코프로모션 증가 등의 전략 변화까지 이어졌다.
조원준 위원도 세미나에서 2012년 약가 인하 과정에서 부작용은 있었다는 입장이다. 그는 "2012년 당시 제약사의 수출 기반이 취약했다. 그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한국 제약기업이 열악한 상황에서 도약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다만 ①약가개편이 추구 방향성에 부합하는 기업을 위한 유지책과 ②기술이 있어도 정작 신약을 쉽게 만들 수 없는 수익성 낮은 기업에게는 어떤 지원이 나올지 개편안이 나와야 상세 내용을 알 수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