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주도 유전자·세포치료제 개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특별기고 | 정경숙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글로벌TOP 유전자·세포치료 전문연구단장

2025-11-25     히트뉴스
정경숙 생명공학연구원 단장

글로벌 바이오 산업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유전자·세포치료제(Gene & Cell Therapy, GCT)는 질환에 대한 표적 정확성이 높아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희귀난치 질환을 치료하고 미충족 의료수요(Unmet Needs)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로 인해 기존 의약품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해답을 제시하며 차세대 혁신치료제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CAR-T 치료제, 유전자편집 치료제, AAV(Adeno-Associated Virus) 기반 유전자치료제 등 유전자·세포치료제의 사회적·기술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이미 미국·유럽 중심으로 상용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조 단위 투자를 통해 시장을 선점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국의 정부기관도 개발 활동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공공투자·민관협력·규제신속심사 인프라로 R&D와 상용화 역량을 확충하고 있다.1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산업 트렌드가 아니라 국가 기술력과 보건안보를 좌우하는 전략기술 확보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희귀난치 유전질환, '국가 책임' 생태계 구축 필수

유전자세포치료제의 주된 질환 적응증인 희귀·난치성 유전질환은 환자 수가 적고 기존 치료제 승인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원(기술력,자금 등) 및 제도(인허가, 수가 등)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높아 개별 민간 기업들의 수준에서 단독 개발만으로는 경제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승인된 제품은 대부분 글로벌 제약기업에서 개발한 것들이다. 실제 의약품 개발까지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대규모 집중 지원과 산·학·연·병·관의 광범위한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주요 선진국은 이미 국가 주도 R&D 투자, 환자 데이터 플랫폼 구축, 공공 임상 인프라 운용을 통해 희귀질환 치료기술을 국가전략 프로젝트로 육성하고 있다2. 한국 역시 유전자·세포치료제 분야에서 기술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분절된 연구·규제·임상·생산 구조가 발목을 잡고 있다. 국가 차원의 통합된 프로그램과 지속적 생태계 지원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유전자세포치료제는 기초유전학, 유전자 편집, 벡터 시스템, 세포 플랫폼, 제조공정 및 품질 분석 플랫폼, 임상개발 및 규제가 한 흐름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구조적 혁신이 요구된다.

첫째, 글로벌 상위 수준의 연구단(Flagship Lab)을 국가가 전략적으로 지정하고 집중 투자해 원천기술을 확보해야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해 유전자세포치료글로벌 Top 전략연구단을 출범하였으며 대학·연구소·병원·기업이 참여하는 공공 R&BD 플랫폼 구축과 더불어 희귀난치성 질환 유전자세포치료제의 신속한 임상진입과 사업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둘째, 유전자세포치료제의 초기 개발 단계 중에 많은 부담이 되고 있는 개발 후보 물질들의 개발 최적화 및 평가 확인을 위한 안정된 시료 생산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공공 CMO·CRO 인프라 확보를 통해 초기 기업과 연구자가 비용 부담 없이 GMP 생산·비임상·임상 설계를 진행할 수 있는 공공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셋째, 민간 주도 개발 전략으로 공공이 관련 분야의 개발 후보 물질들과 기술들을 도출해 줄 수 있는 초기 개발 플랫폼 기술과 비임상 및 특성 분석 개발 인프라를 제공하고, 민간 개발 기업이 도출한 개발 후보 기술과 물질들을 기반으로 치료제의 상용화·임상·사업화를 견인하는 첨단 유전자세포 치료제 개발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넷째, 규제·법제도의 신속성을 높이고 첨단재생의료법·특례심사제도 등을 실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하도록 개선하기 위해 △규제 절차 간소화 △국가 공공 R&BD 플랫폼 강화 △비임상 및 임상 데이터 공유 △조건부 허가 활성화 △국제 정합성 확보 등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미국 NIH의 재생의학 네트워크, 일본 CiRA, 영국 Catapult 프로그램에서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됐다.

마지막으로 환자 중심의 맞춤형 치료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한다. 유전자·세포치료제의 본질은 '맞춤형 치료'다.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려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환자군 정의, 신속 임상, 안전성 모니터링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희귀질환환자 데이터·유전체 기반 코호트 구축 △병원 중심의 신속 임상 플랫폼 △실사용데이터(RWD)·실사용근거(RWE)를 활용한 규제 혁신 모델 △환자·가족과 연계한 치료 접근성 향상 프로그램 등의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실제로 환자가 혜택을 받는 '진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국가 전략기술 확보와 국민 혜택을 위한 마지막 퍼즐

유전자·세포치료제는 단순한 신약 개발이 아니다. 앞으로 10년, 한국 바이오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전략기술이며, 국민 건강권을 높이는 핵심 자산이다. 국가 주도적으로 산·학·연·병·관의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고, 공공 인프라와 규제 혁신으로 기술 상용화를 가속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환자 중심의 맞춤형 치료까지 책임지는 모델을 만든다면 우리나라는 유전자·세포치료제 분야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수 있다. 국가 주도의 전략적 투자는 결국 기술 경쟁력과 산업 성장, 그리고 환자 생명을 살리는 '국민 혜택'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결단의 시기이며, 유전자·세포치료제는 그 중심에 있다.

참고

1. 미국의 ARPA-H(Th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for Health), 유럽의 Horizon Europe, IHI(Innovative Health Initiative), EIC (Europe Innovation Council) 등

2. 미국 맞춤형 유전자치료제 컨소시움, Bespoke Gene Therapy Consortium(BGTC), Rare Disease Clinical Research Network(RDCRN), EU Accelerating Research & Development for Advanced Therapies(ARDAT), European Joint Programme on Rare Disease(EJPRD)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