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비엘바이오의 힘은 '사이언스를 향한 이상훈 대표의 목마름이 원천'
[HIT 포커스] 이상훈 대표의 '전략과 집념' 운이 아니다…과학 기반의 '확실한 데이터'와 '플랫폼 확장성' 사노피, GSK이어 릴리까지… 지분 투자로 220억원 추가 확보
"사이언스를 제일 잘하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올해 4월 GSK와 4조원대 기술수출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혁신신약살롱' 발표에서 "매출도 중요하고, 사업 개발도 중요하지만 사이언스를 잘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며 그의 '과학 중심' 경영 철학을 전한 바 있다.
에이비엘바이오의 '그랩바디-B(Grabody-B)' 플랫폼이 낳은 연이은 초대형 기술 수출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다. 창업 10년(2016년 2월)만에 일군 굵직한 성과물들은 이상훈 대표의 '사이언스를 잘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마름이 원천이다.
지난 11일(현지 시각 기준) 에이비엘바이오는 미국 일라이 릴리에 그랩바디-B 플랫폼을 기술 수출하며 최대 3조8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이는 지난 4월 GSK에 4조1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을 한지 단 7개월만의 '더블 잭팟'이다. 2022년 사노피와 계약까지 포함하면 그랩바디-B 플랫폼의 총 잠재 가치는 10조원을 넘어섰다.
그랩바디-B, 데이터 기반의 '전략적 설계' 통했다
그랩바디-B의 성공에는 과학에 기반한 '신뢰와 집념'이 있었다. 뇌혈관장벽(BBB) 셔틀 기술 개발 당시, 안전성이 입증된 셔틀 타깃으로 대부분의 경쟁사들은 뇌에 가장 많이 발현되는 트랜스페린 수용체(TfR)을 타깃으로 삼았다. 하지만 에이비엘바이오는 과감하게 IGF-1 수용체(IGF-1R)를 선택했다.
이 대표는 "TfR은 뇌에 많지만, 몸 전체의 정상 조직에도 뇌보다 훨씬 많이 발현돼있고 약물의 반감기가 짧아지는 문제가 있다"며 "하지만 IGF-1R은 정상 조직에 상대적으로 적게 발현되어 안전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항체 디자인에서도 치밀한 설계 전략이 있었다. IGF-1R 타깃이 인슐린 신호에 영향을 주어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에이비엘바이오는 IGF-1R의 활성을 막지 않고 순수하게 바인딩만 하는 '논블로킹(non-blocking) 항체'를 찾고자 노력했고, 결국 수용체 본래 기능을 방해하지 않고 단순히 뇌로 들어가는 통로로만 활용할 수 있는 항체를 찾는 데 성공했다.
특히 약물 운반체인 항체는 보통 '2가(bivalent)' 구조를 갖는데, 이는 때때로 항체가 세포 안에서 분해되어 약물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또한 그랩바디-B는 '1가(monovalent)' 구조를 가졌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여러 실험을 통해 bivalent보다 monovalent 형태가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 구조가 약물이 세포 내에서 분해되는 과정을 최소화하고, 최종적으로 뇌 실질 조직으로 전달되는 약물의 양을 최대화하는 데 유리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확실한 사이언스 데이터'에 기반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랩바디-B'가 탄생했고, 이는 이제 항체뿐만 아니라 siRNA, ASO(Antisense Oligonucleotide) 등 RNA 기반 약물까지 BBB 셔틀을 적용하는 차세대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
데이터로 쌓은 '신뢰'와 '타이밍', 그리고 '확장성'
이번 릴리와 계약에 앞서 에이비엘바이오는 2022년 사노피에, 지난 4월에는 GSK에 대규모 기술이전을 했다. 회사는 어떻게 글로벌 제약사들을 사로잡았을까.
이 대표는 "사노피와 계약하기까지 80개가 넘는 방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노피와 정기적으로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사노피가 의문을 가졌던 부분에 대해 실험들을 하나씩 추가해 나가며 데이터를 계속 업데이트해 보여줬다"며 "그렇게 신뢰를 쌓아간 것이, 결국에 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딜의 성사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타이밍'을 꼽았다. 그는 "100원을 받아야 한다는 욕심보다 80원만 받아도 만족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딜의 속도가 붙고 클로징이 빠르게 이뤄진다"고 분석한다. 더불어 GSK와 협상에서 유리했던 이유에 대해 "상대방(빅파마)이 자기 회사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경우(싱글 컨택)로 여기면 협상력이 떨어지지만, 여러 회사와 접촉 중이라는 신호를 주면(멀티 컨택) 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노하우를 전했다.
릴리, 기술 계약 이어 지분투자까지…답은 '플랫폼 확장성'
릴리가 4조원대 기술수출뿐 아니라 에이비엘바이오에 지분투자까지 단행한 데는 '플랫폼'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된다. 그랩바디-B 플랫폼이 CNS(중추신경계)를 넘어 '대사 질환'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폭발적인 확장성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릴리는 현재 알츠하이머와 GLP-1 비만 치료제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메가 플레이어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 7월 설명회에서 아이오니스(Ionis)와 공동연구를 통해 그랩바디-B가 근육 조직까지의 약물전달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선행 데이터들이 비만과 근육 질환 등 릴리가 주력하는 분야의 미충족 의료 수요에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훈 대표는 "릴리와 기술이전 계약은 그랩바디 플랫폼 적용 가능 모달리티의 확장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며, 그랩바디-B가 단순히 '뇌' 장벽을 뚫는 셔틀을 넘어, 인체 전반의 치료 영역을 넓힐 수 있는 혁신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밝힌다.
한편 연이은 초대형 기술수출을 달성하며 에이비엘바이오는 충분한 현금 유동성과 글로벌 신뢰도를 확보했다. 회사는 현재 CNS 외에도 면역항암 분야의 '그랩바디-T'를 기반으로 ADC(항체-약물 접합체) 분야를 강화하고, 미국 임상 전담 조직인 'Neok Bio' 법인을 설립하는 등 세계시장에서 K-바이오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