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 혐의 받는 일양약품, 증선위 권고에도 '오너십'은 남겼다
PERI-SCOPE | 김동연 부회장 사임 후 '단독대표' 바꾼 이유
분식회계 혐의로 주권 거래가 정지된 일양약품의 전문 경영인인 김동연 부회장이 사임하며 창업주 3세 정유석 대표가 단독 대표 자리로 올랐다.
일각에서 책임소재를 강화하기 위한 선조치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오너십을 유지하기 위해 증권선물위원회의 권고를 거슬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양약품은 17일 김동연 부회장이 공동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고, 정유석 사장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했다고 공시했다. 이와 함께 이사회는 공동대표 규정을 폐지했는데, 이는 금융당국이 내린 권고 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증권선물위원회는 9월10일 일양약품이 종속회사가 아닌 중국 법인을 연결대상에 포함해 수년간 재무제표를 부풀렸다는 혐의로 주권 거래를 정지시켰다. 이와 함께 정유석 사장과 김동연 부회장 등 공동대표 2인, 그리고 담당 임원에 대해 해임권고 및 직무정지 6개월 처분과 검찰 통보를 결정했다.
또 회사와 관계자 3인에게 과징금과 감사인 지정 3년 등 제재를 의결했다. 일반적으로 감사인 지정 3년은 회계 투명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될 때 내려지는 중징계로, 투자업계에서는 이를 매우 무겁게 받아들인다.
증선위 제재의 핵심은 중국 합자회사인 통화일양보건품유한공사와 양주일양제약유한공사의 실적을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연결재무제표에 포함해 당기순이익과 자기자본을 과대계상한 것이다. 연결대상 확대에 따른 과대계상 규모는 2014년 637억원에서 2022년 1699억원까지 늘어나 총 1조1497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외부감사 과정에서 위조 서류를 제출하는 등 정상적인 감사 절차를 방해한 정황도 확인됐다. 당시 외부감사인은 통화일양과 양주일양이 실질적으로 일양약품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회사의 연결 편입이 과도하다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실제 회사는 통화일양과 양주일양에 대한 지분과 이사회 참여 등을 근거로 종속기업으로 판단해왔지만, 통화일양의 지분율은 45.9%에 불과했고 나머지 34%는 중국 통화시가 보유하고 있었다. 양주일양은 일양약품 지분이 52%였지만 중국 고우시와 공동 지배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 중 통화일양은 수익 배분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이 때문에 현재 일양약품은 통화일양 청산 및 합자계약 소송을 진행 중이다.
결국 회사는 외부감사인의 지적과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해 두 법인을 종속기업이 아닌 공동지배기업으로 재분류하고, 2021~2023년 3년치 연결 실적을 정정했다. 이 과정에서 매출은 최대 35%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최대 65% 줄어들었으며, 2023년 연결 기준 순손실은 2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이 같은 문제는 현행 한국거래소 코스피 및 코스닥 상장규정에 위반된다. 연결범위 허위 확장과 감사방해 행위는 통상 '중대한 위반'으로 분류된다. 현재 거래가 정지된 상태에서 당국은 오는 11월 6일까지 기업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상장폐지 여부, 개선기간 부여 여부, 매매거래 정지 여부·기간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공동대표 '사임 권고'에도 창업주 3세는 남았다
"사실상 형식적 책임" 지적
이번 공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김동연 부회장의 사임이다. 그는 1976년부터 50년 가까운 기간을 한 회사에서 근무하며 연구원 출신 대표라는 입지전적 이력을 쌓은 인물이다.
1950년생인 김 부회장은 한양대학교 화학공업과를 졸업하고 아주대학교에서 의약화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76년 일양약품 중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중앙연구소장을 거친 뒤 2008년 3월부터 대표로 연임하며 국내 제약업계의 장수 CEO로 꼽혔다. '놀텍'과 '슈펙트' 개발에도 공헌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대표직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업계에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정유석 단독대표 체제 전환과 함께 '공동대표 규정'을 폐지했다는 부분이다. 검찰에 사건을 의뢰하고, 주권 거래가 정지된 상태에서 대표이사 체계를 바꾼 것은 회사의 의중이 반영된 결정으로 해석된다. 향후 당국의 소명과정에서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권고에 대한 '완전한 이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증선위는 공동대표 2인과 담당 임원에게 해임권고 및 직무정지 6개월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문경영인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을 뿐, 창업주 집안의 대표는 여전히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당국 입장에서 이는 권고사항이 전면 이행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특히 창업주 측이 의사결정권을 쥔 상태에서 감사방해나 연결범위 허위 산정 등 회사 경영의 핵심 문제가 대표이사 직속 라인에서 발생했다면 실질적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직무정지나 사임 권고 없이 대표직을 유지한 것은 사실상 '부분 이행'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물론 증선위는 행정기관으로서 직접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고, 사임을 강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매우 크다. 결국 핵심은 '책임 소재'다. 거래소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는 단순한 법 위반보다 회계 위반의 중대성과 회사의 책임, 시정 의지를 종합적으로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계 위반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지고 내부통제를 어떻게 개선했는지가 관건이다.
이 때문에 단독대표 체제 전환은 개선 의지를 보이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거버넌스 개선을 중시하는 현 정부 기조에서 이런 변화가 긍정적 평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오너십이 강한 제약바이오 업계 특성상 김 부회장의 사임은 실질적 변화보다는 상징적 조치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증선위 권고를 완전히 이행하지 않은 채 전문경영인만을 사임시킨 것은 형식적으로 책임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오너의 책임 회피 구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1조원 넘게 과대계상이 이뤄졌는데 이걸 창업주 가문 쪽에서 모른다는 게 말이 안되지 않느냐"며 "제약업계에서 전문경영인 도입은 거버넌스 개선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 창업주 집안만이 자리를 지키는 것은 역으로 비판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