휩쓸리지 않고 제약 본질로 돌진한 이행명 명인제약 회장
[칼럼] 명인제약은 어떻게 제약업계 대표 브랜드가 되었나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작성한 명인제약 '기업공개(IPO) 프레젠테이션' 자료 5페이지, 회사소개 첫 머리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로 시작한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오늘에 충실하며,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갖자!(Learn from yesterday, Live for today, Hope for tomorrow!)'. 명인제약 본사 사무실에서도 조명을 받으며 붙어있는 문구다.
문득 2009년 명인제약이 제작해 어쩌다 기자들 손에까지 들어온 마우스 패드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고민은 어떤 일을 시작해서 생기는 것보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에서 더 많이 생긴다." 영국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의 말이다. 일을 할까 말까 머뭇거리는 직장인들의 심리를 꿰뚫고 은근 용기를 북돋는 내용이다. 마우스 패드에서 만난 철학자의 말은 신선했다.
개성이 뚜렷한 창업주 이행명 명인제약 회장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장을 사랑하는 이 대표는 마음을 흔든 문장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업 경영의 방향성을 강화하거나 현실에 맞게 응용하는 데 뛰어나다. 잊혀지지 않는 이가탄 광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카피 문구나 '모아 모아 모아겐' 같은 카피가 이 회장에게서 나온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남다른 관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1985년생 명인제약은 이행명 회장의 캐릭터가 그대로 녹아 있는 분신과 같은 존재다. 산업계 분위기나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까칠함'과 제약본질이라는 시작점에서 멀리 내다보며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키우는 안목과 디테일을 장착한 이 회장이 40년 간 스케치하고 색칠하며 다듬은 기업이 명인제약이다.
명인제약에는 문어발이 없다. 대신 완제의약품과 완제의약품의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원료의약품 개발에만 올인했다. '경영다각화라는 이름'으로 산업계가 건강식품 등에 눈 길을 줄 때도 한눈 팔지 않았다. 의약품 개발, 생산, 영업 등 핵심분야의 내부역량 강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며 고수익 사업구조를 정착시켰다. 중추신경계(CNS) 분야 전문제약회사는 이 회장의 확고한 경영철학 위에서 태어나 성장한 것이다.
그는 자신만의 색채를 지닌, 분명한 원칙을 가진 인물이다. 40년 회사를 키우며 함께한 원료 납품 회사를 단기 이윤을 앞세워 사사로이 바꾸지 않는다. 업계 인사들은 이 회장은 사소한 약속도 꼭 지키고,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랫동안 변함없이 관계를 이어나간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업무적으로 엄격하고 까칠하지만 아들, 조카, 동생처럼 진심으로 걱정하며 품는 최고경영자(CEO)라는 평가도 적잖다. 이 회장은 물한방 새지 않는 경영을 하고, 자신을 위한 지출에는 인색하지만, 뜻있는 일에는 크게 쏘는 행보를 보였다. 기업공개에 앞서 임직원들에게 300%의 보너스를 지급했는가하면, 올해 5월 창립 40주년을 맞아 전 임직원과 회사발전에 기여해온 퇴직자 및 협력업체 등 약 600명과 함께 5박 6일간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명인다문화장학재단도 같은 맥락에서 출범했다. 2023년 이 회장은 사재 350억원(현금 100억원, 명인제약 비상장주식 50만주 약 250억원 규모)을 출연해 재단법인 명인다문화장학재단을 설립했다. 현금 100억원을 추가 출연해 450억원 규모가 됐다. 이 회장 지분이 많았던 시점이라 지배구조를 강화할 용도의 재단이 아니었다. "그저 뜻있는 일을 하고 싶었을 따름"이라고 말해 준적이 있다.
그는 상상하고, 실행하는 일 그 자체를 즐기는 인물이다. 이 회장은 '특별한 창립 40주년'을 위해 오랜기간 직접 기획하고 추진했다. 이가탄 광고의 카피를 직접 작성하고 촬영 현장을 지키는 것은 물론 다문화 장학생들의 국적이 편중되지 않도록 꼼꼼하게 조정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그는 디테일 부자다.
2016년부터 2년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12대 이사장을 역임한 그는 산업을 걱정하는 이타적 CEO의 모습을 보였다. 2011년 일간신문 1면 광고에 한국제약산업의 염원을 담은 광고를 실어 주목받았다. 이 회장은 자사 이가탄 광고한켠에 '제약산업 일류 국가 실현을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일자리 창출, 선진국 수준의 R&D투자, GMP 국제화 및 수출 활성화로 더 사랑받겠습니다'라는 문구를 한국제약협회 이름으로 게재했다.
빨깐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주목을 끈 '광고안 산업 PR 문구'는 제약산업계가 언론 등으로부터 온통 리베이트 온상처럼 그려졌을 때 그토록 하고 싶었던 '제약인들의 속 마음'이었다. 제약산업계가 일언반구 못하고 범죄인 단체처럼 몰렸을 때 '협회 차원에서 산업계의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시킬 수 있는 공익 광고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업계 내부 공론은 들끓었으나, 정작 실천하고 나서는 이는 그 였다.
이 회장은 10월 1일 '40년간 그의 의지대로 빚은 명인제약'을 유가증권(코스피) 시장에 상장해 투자자들에게 공개했다. 그는 명인제약이 존경받는 영속기업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3000억원 가량 현금을 그대로 두고 기업 공개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왜, 그렇게 했는지 이 회장에게 직접 물어봤다'는 제약업계의 영향력 높은 한 인사는 아래와 같은 이 회장의 말을 전해줬다.
"내 롤 모델은 유한양행이다. 사람은 유한하기 때문에 이 회사가 언젠가 전문경영인으로 갈 텐데 그러면 전문 경영인이 뜻을 펼쳐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이 많이 있어야 회사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다.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그 이유가 전부다."
600명의 임직원을 태우고 크루즈 여행을 떠났던 명인제약은 2025년 10월 1일 '코스피(KOSPI)라는 배'를 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항구를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