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사각지대 놓인 VHL 환자들의 '웰리렉 딜레마'
[환자고충보고서] 폰 히펠-린다우 증후군(VHL)의 치료제 '웰리렉정' 복용량 줄여서 버티기도… 월 2000만원 약값 앞에 무너져 의료진도, 환자도 낯선 희귀질환 VHL, 적정치료에 어려움
[환자고충보고서]는 희귀난치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과 환자치료 접근성 확대를 위해 히트뉴스가 부정기적으로 기획 보도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2023년 4월 신경섬유종 환자의 어려움을 조명한 [환자, 尹케어를 말하다]의 취지를 살리되 명칭을 2025년 3월부터 [환자고충보고서]로 변경하여 진행합니다.
40대 가정주부 수진(가명) 씨의 일상은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폰 히펠-린다우 증후군(VHL)',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유전성 질환이었다. 유전자 변이로 체내 다양한 장기에 종양이 생기는 질환이다.
수진 씨의 어머니는 뇌와 척수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그리고 이내 발가락 조차 움직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번졌다. 병원에서 추천해준 방사선 치료로 버티고 있지만, 근본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은 불가능한 상태로 언제든지 위독하게 급변할수 있는 상황에 두려움이 앞섰다. 병원에서는 조심스럽게 수진씨에게 '웰리렉정(성분 벨주티판/한국MSD)'이라는 치료제의 사용을 권했다. 한 달에 2000만 원이 넘는 약제비에 놀랐지만, 당장의 선택지는 없었다. 다행히 약제 사용 후 종양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점차 전신 감각을 되찾았다.
기적이 일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경제적 부담이 현실로 다가왔다. 수진 씨 어머니는 하루 복용량을 3정에서 1정으로 줄여 버티고 있지만, 회복 속도가 더뎌진 것 같은 느낌에 불안감이 앞섰다
효과를 보인 치료제가 존재함에도, 사용할 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현실에 어머니께 죄송하고, 무력하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영호(가명)씨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신장 주변에 약 3cm 크기의 종양이 관찰됐다는 것이다. 다행히 수술적 제거가 가능한 상태라는 말을 듣고 수술을 받았지만, 경과 관찰을 위해 방문한 외래에서 동일 자리에 재발, 그리고 뇌에도 암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호 씨는 누구보다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던 터라, 유전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병원 측의 권유에 따라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형제들을 수소 문해보니 VHL 증상을 앓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술과 재활에 전념하기 위해 학업을 쉰지도 2년 째, 먼저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조바심이 들었다. 이 번 수술이 마지막이 될 지, 다음에는 어떤 예상치 못한 종양이 발견될 지 모르는 상황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몸 안에 시한폭탄이 있다면, 딱 이런 기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 다니고 있던 예비신랑 민석(가명)씨는 출근길에 평소와 다른 시야에 이질감을 느꼈다. 평소 선명하던 시야가 삐뚤어 보이고, 흐릿했다. 병가를 내고, 방문한 응급실에서는 추가 검사를 권했고, 이후 재방문한 신경과에서 혈관모세포종으로 시신경이 눌려 시력 저하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계속된 '감마 나이프' 뇌수술과 재발로 남은 신경이 적어지는 상황이어서 이번 수술 후에는 사지 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한 쪽 눈은 실명했고, 다른 한 쪽 눈도 시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주치의가 웰리렉을 사용하는 방법을 권유했지만, 결혼 준비와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는 없는 상황이다. 예비 신부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 지, 앞 길이 막막하다.
폰 히펠-린다우 증후군은 여러 신체기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종양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종양 형성을 억제하는 VHL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유발된다. 일생 동안 뇌, 척수, 신장, 췌장 등 최대 10 개의 장기에서 악성 또는 양성 종양이 형성될 수 있으며, 치료 이후에도 새로운 종양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환자들은 이를 '몸속에 시한폭탄을 품고 사는 기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VHL 증후군의 유병률을 약 10만명 중 1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자들의 평균 수명은 남성의 경우 67세, 여성은 60세로 타 악성 종양 대비 높은 편이지만, 첫 증상이 나타나는 연령이 평균 26세인 점을 고려할 때 환자들이 오랜 시간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VHL 환자들의 97% 가량은 65세까지 두통, 시력 저하, 마비 등의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다.
VHL은 주로 △중추신경계 및 눈(혈관 모세포종) △내이(내림프낭 종양) △신장(투명세포형 신세포암) △췌장(췌장 신경 내분비종양) △부신(갈색세포종, 부신경 절종) △생식기관(낭샘종) 등에 병변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특정 전공과가 정해져 있지 않고, 환자들은 각 주요 증상에 따라 신경외과, 안과, 소화기내과, 비뇨의학과, 소아청소년과 등에 내원한다. 최근에는 웰리렉의 개발로 혈액종양내과 치료를 받기위해 내원하는 환자들도 생기고 있다.
때문에 환자들은 진단 방랑을 겪고 있다. 환자에 따라서는 2~3개 병원, 4~5개 진료과에 방문하고 있는 환자도 존재한다. 운이 좋게 협진 체계가 탄탄한 의료기관에 방문한다면 빠른 진단과 다학제적인 도움도 받을 수 있지만, 희귀질환인 VHL 병의 경우에는 경험을 해본 의료진도,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도 많지 않아 쉽지 않은 상황이다.
VHL은 자녀에게도 50% 확률로 발생하는 유전성 질환이다. VHL 환자 중 20%가 가족 유전이 아닌 상태로 진단되기도 하는 데, 이를 '드 노보(De novo)'라고 부른다.
VHL 환자들에게는 MRI 등 정기적인 추적 검사를 통한 조기 종양 발견과 이에 대한 외과적 수술을 통한 합병증 최소화가 목표다. 다만, 이는 환자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신장의 경우 여러 차례 수술을 거쳐 적출하게 되면 평생 투석을 해야 할 수 있고, 뇌나 척수 등은 사지 마비 등 합병증이 유발될 수 있기 때문에 무한정 수술을 할 수도 없다.
이런 환자들에게 증상 완화를 위한 항암 옵션 외에 근본적으로 VHL을 개선하는 치료제로 개발된 의약품은 웰리렉 뿐이다. VHL 병은 HIF-2α의 안정화에 관여하는 VHL 단백질(pVHL)의 기능이 손상돼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HIF-2α가 체내에 축적되고, 이는 저산소증유도인자-1베타 (HIF-1β)와 결합하여 복합체를 형성함으로써 종양 발생을 유도할 수 있다. 웰리렉 은 경구용 HIF-2α 억제제로, HIF-2α와 HIF-1β 간 상호작용을 차단하여 세포 증식, 혈관 신생, 종양 성장에 관여하는 표적 유전자의 발현을 감소시키는 기전을 갖는다.
MSD가 개발한 경구용 저산소증유도인자-2알파(HIF-2α) 억제제 웰리렉은 지난 2023년 5월 성인 VHL 증후군 환자의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치 않은 신세포암(RCC), 췌장 신경 내분비 종양(pNET), 혈관 모세 포종(HB)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됐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 가이드라인 "유일 전신치료 옵션"
웰리렉의 효능과 안전성은 2상 임상시험인 'LITESPARK-004'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이 연구는 신장에 최소 1개 이상의 종양이 있는 VHL 증후군 환자 6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오픈라벨 연구로, 대조군이 없었으며 한국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환자들은 전부 신장암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혈관모세포종과 신경내분비 종양 중 하나 혹은 둘 다 보유하고 있었다. 임상에 참여한 환자 97%(59명)는 환자 한 명당 평균 4차례의 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최대 15회).
지난 5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학술대회에서는 LITESPARK-004 연구의 5년(중앙값 61.8개월) 장기 추적 관찰 결과가 공개됐다. 연구 결과, 신장암(61 명), 중추신경계 혈관모세포종(50명), 췌장신경내분비종양(20명) 보유 환자들에게서 나타난 객관적 반응률(ORR)은 각 70.5%(완전관해(CR) 11%, 부분관해(PR) 59%), 50%(CR 12%, PR 38%), 90%(CR65%, PR 25%)였다.
이들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국종합암네트워크 가이드라인(NCCN Guideline)은 웰리렉을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VHL 관련 신장암(RCC) 환자에게는 유일한 선호 전신 치료 옵션(Only preferred systemic therapy)으로, 중추신경계 혈관 모세포종 환자에게는 특정 상황에서 유용한 유일한 전신 치료 옵션(Only system- ic therapy option identified as useful in certain circumstances)으로 각각 권고하고 있다.
VHL, 재발 반복하는 질환...수회 이상의 수술 경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권민석 교수는 "VHL은 재발을 반복하는 질환인 만큼 진료 과정에서 수회 이상의 수술을 경험하는 환자들이 많다. 젊은 나이에 종양 제거 수술을 반복하는 것은 환자들에게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수술 후 종양이 제거 됐다는 희망도 잠시, 재발을 반복하면서 언젠가 또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하반신 마비 등 후유증이 유발될 수 있어 무한정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이어 "수술로는 결국 근본 원인인 유전적 소인을 제거할 수 없다. 결국 수술로 새롭게 생기는 종양을 계속해서 뒤쫓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웰리렉처럼 효과가 입증된 약제가 존재하지만,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 한두 달 복용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약제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환자들에게 희망고문이 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VHL 환자들에게 빈번하게 발생하는 척수신경혈관모세포종의 경우 10% 수준의 크기 감소만 있어도, 신경 압박으로 인한 기능 장애가 눈에 띄게 개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권 교수는 "임상 현장에서도 웰리렉을 사용한 환자들의 종양 크기가 상당히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극적으로는 신경 손상이나, 망막 손상으로 기능성 장애 가 발생했던 환자들의 증상 개선이 눈에 띈다"며 "담당 환자 중에 더 이상 수술이 불가능하고, 척수신경 압박으로 배뇨 조절이 안되는 환자가 있었는데, 웰리렉 복용 후 일주일 만에 자신의 의지로 소변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선됐다. 이런 환자들은 종양이 신경을 압박하지 않을 정도로만 개선돼도 정말 큰 치료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VHL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으로 '용량을 줄여 복용해 도 괜찮은지', '언제까지 약제를 복용해야하는지' 등을 꼽았다. 임상시험 자체가 하루 3회 복용 용법으로 개발됐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이를 하루 2정 혹은 1정으로 줄여 복용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복용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말하는 환자들도 많은 상황이다.
"VHL병은 수술로는 근본 원인인 유전적 소인을 제거할 수 없는 질환이다"
권 교수는 "의사 입장에서도 용량을 줄여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임상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고 한 두 달 중단했다가 재개했을 때 동일한 효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라며 "다른 암종에서는 중단 후 재사용 시 내성이 생겨서 효과가 떨어지기도 해 이런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VHL 환자들은 가격 설명을 듣고 약을 써볼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증상이 악화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면, 당혹감이 느껴지기도 한다"며 "이는 실손보험으로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쉽지 않다. 환자들에게 이런 설명을 해야 할 때 미안함과 괴로운 마음이 공존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보험 당국에 VHL병과 같이 치료제가 존재하는 유전성 희귀질환에 대한 접근성 개선에도 관심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권 교수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이런 질환을 물려줬다는 것도 심리적으로 부담인데, 치료비 마련까지 해야 해 가계에 굉장히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더구나 꼭 유전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질환이라 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며 "VHL병과 같은 유전성 희귀질환에 웰리렉 처럼 치료 효과를 입증한 약제가 존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환자수가 많은 타 암종에 비해 주목도가 적은 질환이지만, 국민들의 치료 접근성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보험당국의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