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재생의료는 달려가는데, 한국은 '제로(0)'의 굴레 갇혀
데스크칼럼 | 글로벌 CGT, 역대 최다 품목 허가하며 상용화 속도전 우리 정부, '안하는지 못하는지' 제대로 성찰해야
세계 각국이 세포·유전자치료제(Cell & Gene Therapy, CGT) 신제품을 쏟아내며 블록버스터를 육성을 앞다투는데, 한국은 여전히 '신규 허가품목 0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생명공학연구센터가 공개한 CGT 산업 및 규제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CGT 분야 제품 개발이 빠르게 증가하며 역대 가장 많은 새 제품이 출시됐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45개 제품을 보유한 국가로, 신제품 허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상황을 보면 2023년 희귀 유전질환 관련 유전자치료제를 포함해 7개 제품을 허가한 데 이어 작년 역대 최고 수준인 9개 제품을 승인했다. 이 중에는 혈우병(Hemophilia A), 듀시엔 근이영양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 겸상적혈구질환(sickle cell disease) 등 휘귀 유전병에 대한 최초 승인 사례 뿐만 아니라 최초 유전자 편집(CRISPR) 기반 치료제, 고형암 환자를 위한 종양침윤림프구(TIL) 등으로 범위도 넓어졌다.
일부 제품은 이미 블록버스터 반열에 올라섰다. 미국에서 출시된 유전질환 치료제 '졸겐스마'는 2021년 최초로 10억 달러 매출을 돌파했으며, 2023년과 2024년에는 CAR-T치료제 '카빅티(Carvykti)'와 유전질환 치료제 '엘레비디스(Elevidys)' 등이 7~9억 달러 매출을 기록하며 블록버스터에 근접했다.
미국보다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유럽도 2023년 B형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헴제닉스(Hemgenix)', 2024년 유전자편집 치료제 '카스게비(Casgevy)'와 B형 혈우병 유전자치료제 '더베크틱스(Durveqtix)'에 이어 올해 상반기 이영양성 수포성 표피박리증 치료제 '비주벡(Vyjuvek)'을 허가했다.
중국은 자체 개발 3개과 수입제품 3개를 포함해 혈액암 대상 CAR-T 치료제를 중심으로 시장진입 속도를 높이는 한편 올 1월, 첫 번째 세포치료제로 탯줄 유래 MSC를 이용한 이식편대숙주질환 치료제를 내놓았다. 2030년까지 바이오의약 분야 세계 1위 도약을 목표로 국가적 투자를 강화하면서 상해, 북경 등 여러 지역에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 중인 중국의 행보는 일면 위협적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2001년 세계 최초로 세포치료제 '콘드론(Chondron)'을 출시했던 한국은 2019년 '첨단재생바이오법'을 제정한 후 지금까지 단 하나의 신제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CAR-T와 AAV(Adeno-Associated Virus) 기반 유전자치료제 일부 품목을 해외에서 들여왔을 뿐, 국내 개발 품목은 여전히 전무하다. 재생의료를 차세대 바이오헬스 핵심 분야로 지정해 규제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허가심사 인력 부족, 신기술 제품 인허가에 대한 보수적 접근, 규제 경직성 등이 활로를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재생의료 임상연구에 대한 R&D 지원 예산 확대하고 재생의료 치료 제도를 도입해 활용 기회를 넓힐 계획이지만, 임상연구 대상이 중증난치질환에 국한되고 임상연구 계획 허가 요건도 까다로워 기업들의 도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도, 대만,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다양한 정책과 정부 조직개편을 동원해 산업 육성에 나선 정황을 보면, 우리나라도 반드시 병목을 탈출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바이오 혁신 토론회에 참석해 "바이오 산업은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성장동력"이라며 "연구개발이 산업 성장의 핵심인 만큼 정부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인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철저히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 완화와 개혁에도 열린 자세로 접근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우수한 두뇌와 적응력을 무기로 각종 첨단분야에서 신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여 성과를 창출해 온 우리나라가 유독 바이오 분야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제대로 된 원인 규명과 전략 수정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