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보도자료 속 '진짜' 가려내기

생각을HIT | 제약·바이오 보도자료, 그대로 믿어도 될까

2025-08-21     김선경 기자

기자의 하루는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스마트폰 알림부터 시작된다. 새벽부터 쏟아져 들어온 제약·바이오 보도자료가 줄지어 쌓여갈수록 마음도 조급해 진다. 제목만 보면 모두 큰 성과처럼 보여 맥박수가 높아지고 수십개 보도자료를 꼼꼼하게 읽으며 가치 판단에 들어간다. 

 

"첫 환자 투약 완료"
"IND 신청 완료"
"임상 2상 실시"
"글로벌 제약사와 논의"

익숙한 표현들이다. 하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이들 중 상당수는 대단한 성과가 아닌 신약 개발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 검증도 끝나지 않았고, 결론도 나오지 않은 단계다.

예를 들어 'IND 신청'은 단순히 규제기관에 "임상시험을 시작해도 될까요?" 묻는 절차다. 기업이 IND를 신청했다고 해서 곧 임상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청은 심사를 요청하는 단계일 뿐이고, 규제기관이 자료를 검토해 안전성과 타당성을 인정해야 비로소 승인이 내려진다. 승인까지는 수 주에서 수 개월이 걸릴 수 있으며, 자료가 미비하면 보완 요구나 반려가 내려오기도 한다. 따라서 'IND 신청' 보도자료는 어디까지나 "임상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일 뿐, 실제 시험이 허가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첫 환자 투약은 그 다음 단계다.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은 뒤 실제 임상 현장에서 첫 번째 환자에게 약물이 투여됐음을 뜻한다. 이는 서류 심사를 넘어 연구가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는 신호지만,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수준의 절차적 이정표일 뿐이다. 효능이나 임상적 가치가 입증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임상 진입'이라는 표현도 비슷하다. 이는 연구 설계가 승인되고 환자 모집이 시작됐다는 행정적 신호에 불과하다. 임상이 종료돼 데이터가 분석되기 전까지는 과학적 결론을 낼 수 없다.

국제 파트너링 행사에서 반복되는 '다수 글로벌 제약사와 논의'라는 문구도 같은 맥락이다. 매년 바이오USA, JP모건 컨퍼런스 같은 대규모 행사 시기가 되면, 기업들은 어김없이 '글로벌 제약사와 다수 협의 중'이라는 발표를 쏟아낸다. 하지만 협의가 곧 계약을 의미하지 않는다.

글로벌 제약사가 파트너링 미팅을 하는 것은 마치 이사할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여러 집을 방문하는 것과 같다. 열 곳이 넘는 집을 발품 팔아도 계약은 한 곳에만 하고, 심지어 조건이 맞지 않으면 이사 계획 자체를 미루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이 점을 생각하면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와 미팅했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 이 모든 순간이 의미 있다. 임상시험 착수, 첫 환자 투약, 중간 데이터 도출은 프로젝트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소중한 이정표다. 무엇보다 기업에게 보도자료는 주주에게, 혹은 투자처를 물색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홍보 전략이기도 하다.

다만 쏟아지는 기사 속에 투자자는 "곧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고, 환자와 보호자는 "이제 치료제가 곧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뉴스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진짜'를 가려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첫 번째 노력은 발표가 결과인지 계획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임상시험에서 '무엇이 나왔다'와 '무엇을 시작했다'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 데이터가 도출돼 학회나 논문으로 공개된 경우는 결과에 해당하지만, 임상 개시나 첫 환자 투여는 단지 일정이 실행됐음을 보여주는 행정적 단계일 뿐이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능성을 확정된 성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하자.

또한 신청과 승인(허가)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신청은 기업이 규제기관에 시험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는 단계일 뿐이다. 그러나 보도자료의 언어는 종종 이 차이를 희석해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은 일을 이미 성과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

보도자료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당연히 알릴 만한 소식이고, 이를 통해 투자자와 시장과 소통하는 긍정적 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

기자에게 업계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속보 경쟁에서 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는 편이 빠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독자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가 하는 질문은 늘 남는다. 이때 '진짜 의미'를 분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수많은 보도자료 속에서 불필요한 정보의 바다에 그대로 휩쓸려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기자는 매일같이 보도자료를 마주하며 단순히 '새 소식이 있다'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이 소식이 지금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따져보려 노력한다. 제약바이오생태계의 일원인 기자에 맡겨진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