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병, 치료ㆍ점검 유기적 연결 중요…지역 병원 역할 부상"
히터뷰 | 순천향대 부천병원 심장내과 문인기 교수 "증상 악화 전 진단 및 치료 시 정상 일상생활 가능" "가족 단위 조기 진단과 예방 위한 제도ㆍ공감대 뒷받침 필요"
희귀 유전질환인 파브리병의 조기 진단과 치료에서 지역 거점 병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파브리병은 X염색체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리소좀 축적 질환으로, 효소 결핍으로 인해 심장, 신장, 신경 등 여러 장기에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진행 시 말기 신부전 등 비가역적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발견과 치료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이를 위해 파브리병 등 6개 리소좀 축적 질환을 신생아 선별검사 급여 항목에 포함하고, 전국 17개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지정했다. 또한 올해 처음 도입된 '찾아가는 희귀질환 진단지원 사업'을 통해, 환자가 지역 병원에서 검체만 채취하면 전문기관이 이를 분석해 유전자 정밀 진단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히트뉴스는 사업 참여기관인 순천향대 부천병원 문인기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파브리병 증상, 치료 시점 판단의 중요성, 지역 병원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파브리병은 유전성 희귀질환인 만큼,
그 경향과 임상적 지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남성은 X염색체가 하나뿐이라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발병하며, 여성은 두 개의 X염색체 중 하나가 정상일 경우에는 증상이 경미하거나 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전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유전자 이상을 가진 경우 아버지는 Y염색체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때문에 아들에게는 유전되지 않지만, 딸에게는 100% 확률로 유전됩니다. 반면, 어머니가 유전자 이상을 가진 경우엔 아들과 딸 모두에게 50% 확률로 유전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년 이후에 진단된 남성 환자 중, 자녀가 모두 아들이라 배우자가 안도했던 사례도 있었습니다.
질병의 진행을 평가함에 있어 중요한 임상 지표로는 심장과 신장의 기능이 있습니다. 심장에서는 좌심실 비대가 대표적인데, 리소좀에 쌓인 물질로 심장 벽이 두꺼워지고 전도 장애가 발생할 수 있으며, 부정맥이나 심부전 같은 증상도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파브리병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심장 문제인 만큼, 심장 기능 저하가 치료 예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신장에서는 단백뇨가 초기 증상으로 흔하며, 이는 사구체 기능 저하의 중요한 지표이다. 치료하지 않으면 점차 사구체 여과율(eGFR)이 감소하고, 말기 신부전(ESRD)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환자들은 주로 어떤 불편함을 호소하나요?
"청소년기에는 신경 침범으로 인한 통증이 가장 흔하게 일어납니다. 이 경우 당시에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학교나 가정에서 '꾀병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통증은 성인이 되면서 점차 사라지기도 하지만, 질환이 진행돼 심장이나 신장손상이 동반되면, 이후에는 복합적인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심장 손상이 진행된 환자들은 주로 호흡 곤란이나 전신 쇠약감 같은 증상을 호소합니다. 실제로 제가 5~6년째 담당하고 있는 환자는 심부전 증상은 심하지 않지만, 여전히 전신 위약감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또한, 신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경우 투석 또는 이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 환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파브리병이 의심되는 경우,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심장내과 내원 환자 진료 사례를 소개해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진단 환자는 4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경색으로 내원한 사례였습니다. 젊은 환자의 뇌경색은 심장과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아, 심전도와 심장 초음파 검사를 시행했고, 이 과정에서 심근 비대와 전도 장애가 확인돼 파브리병을 의심했습니다.
환자의 뇌경색 상태가 안정된 이후, 신경과와 협의해 유전자 검사와 스크리닝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검사 결과, 파브리병 관련 유전자 이상이 확인돼 최종 진단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MRI 등 추가 검사로 확진 절차를 마쳤습니다.
또, 증상이 거의 없던 상태에서, 건강검진 중 심전도 이상 소견이 발견돼 외래를 찾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 환자는 심초음파 검사 결과 심근이 상당히 두꺼워져 있었고, 효소 활성도가 낮게 나타나 파브리병으로 최종 진단됐습니다."
파브리병 치료에 '효소대체요법(ERT)'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중 '아갈시다제 베타' 성분 제제가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ERT는 결핍된 효소를 정기적으로 보충해주는 요법입니다. '파브라자임' 등 아갈시다제 베타 성분 제제는 고용량 제형으로 투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고용량이란 더 많은 양의 효소가 투여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 체내에 축적된 'Lyso-Gb3(globotriaosylsphingosine)'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수치는 질환의 예후를 직접 반영하는 건 아니지만, 치료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간접적인 바이오마커로 활용됩니다.
이는 연구 결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브리병 환자에서 아갈시다제 베타 고용량(1.0mg/kg) 또는 저용량(0.2mg/kg), 아갈시다제 알파(0.2mg/kg) 활용 ERT 요법을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아갈시다제 베타 고용량 투여가 lyso-Gb3 수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불어, 치료 초기부터 빠르고, 뚜렷한 생화학적 반응이 관찰됐습니다.
아갈시다제 베타는 비교적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치료제인 만큼, 실제로 많은 환자에게 투여돼 왔고 축적된 임상 데이터도 풍부한 편입니다. 다만, 환자의 상태나 생활 패턴, 선호도에 따라 치료제 선택은 달라질 수 있으며, 기존 연구 만으로 어떤 치료제가 절대적으로 더 낫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점을 꼽자면 초기 주입에 4시간가량 소요된다는 점인데, 최근 이를 단축시키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이나 학업을 이어가야 하는 환자들에게 이런 옵션이 중요한 선호도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많은 환자들이 진단 방랑을 겪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브리병을 포함한 대부분의 희귀 질환에서 진단이 지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증상이 매우 다양하고 비특이적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이상 증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의심할 수 있는 전문가를 뒤늦게 만나서야 최종 진단에 도달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심장내과 의사가 환자를 진료한다면 일반적으로 심장 질환을 먼저 고려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 환자에게 과거의 신경통, 콩팥 이상, 뇌경색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됐었다면,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파브리병과 같은 질환을 의심할 수 있어야 하지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즉,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각 전문과별로 분절적인 진료가 이뤄지기 때문에, 전신적인 증상을 하나로 통합해 진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며, 이런 구조적 한계가 진단 지연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상 현장에서 이런 구조적 문제가 공통적으로 인식되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비특이적인 증상 하나하나를 파브리병과 연결 짓는 것은 실제 임상 현장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며, 이는 내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문제입니다. 증상이 모호하거나 분산되어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한 다학제 진료를 통해 여러 전문과가 함께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접근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실제 진료에서 초진 환자나 파브리병이 의심되는 환자의 경우, 신장내과나 신경과 등 관련 진료를 병행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각 진료과 의사들의 일정이 빠듯해 한 명의 환자를 위해 유기적인 협진을 진행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최대한 긴밀하게 협업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 신생아 선별검사 급여 항목에 파브리병이 포함됐습니다.
이후 현장에서의 변화는 어떠한가요?
"2024년 1월부터 급여 신생아 선별검사에 파브리병 등 6종의 리소좀 축적질환이 포함됐습니다. 활발한 검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파브리병의 경우 희귀질환인 관계로 아직 신규 환자 유입을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조기 진단 환경이 조성됐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조기에 진단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즉, 사구체여과율, 심근벽 비대 등 건강보험 급여 기준에 부합할 때까지 치료제 사용 없이 경과를 관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ERT는 고비용의 장기적으로 사용돼야 하는 치료법이지만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실제 제 환자도 증상이 비교적 경미한 상태에서 진단과 치료가 이뤄져, 현재는 교사로 일하며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치료 시점과 기준을 둘러싼 논의는 의료계를 넘어 사회 전체의 공감과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질환이 악화되기 전에 조기 개입과 꾸준한 관리를 통해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사회적·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돼야 할 것입니다"
희귀질환 진료에서 지역 거점 병원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희귀질환이라고 해서 꼭 서울에서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치료와 점검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브리병은 2주마다 ERT를 투여해야 하는 장기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거주지 인근 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받는 것이 이상적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순천향대병원은 현재 희귀질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정부가 운영하는 희귀질환 관련 사업 중 하나인 외래 진료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의심 환자에 대해 외래 진료 시간을 여유 있게 배정해 보다 면밀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진단을 받고 저희 병원으로 옮겨와 치료받는 환자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저는 지역에서 주치의를 맡고, 환자는 1년에 한두 번 서울 병원에서 점검을 받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순천향대병원도 참여하고 있는 '찾아가는 희귀질환 진단지원 사업'은 병원 내 소아청소년과를 포함한 몇몇 진료과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해당 사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관련 환자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이런 접근성 확대 방식이 지역 내 진단 접근성을 높이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파브리병 조기 진단을 위해 어떤 노력이 이어져야 할까요?
"예전에는 유전자 검사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았다. 검사 결과가 가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한국 사회 특유의 '책임' 문화로 인해 본인이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분위기는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제 현장에서 체감합니다. 특히 40~50대 환자들의 경우, 의료진이 충분히 설명하면 유전자 검사에 흔쾌히 동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무료 스크리닝 프로그램 등 제도적 지원이 인식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고, 정부가 급여 기준을 더 완화해준다면 의료진도 더욱 적극적으로 검사와 치료를 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가족 단위 조기 진단과 예방을 위해 제도적 기반과 사회적 공감이 함께 뒷받침돼야 할 것입니다."
파브리병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상의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요?
"파브리병은 조기에 잘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면 일반적인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한 질환입니다. 실제로 심전도 이상을 계기로 조기에 진단받은 환자가 약물 치료를 꾸준히 이어가며 현재까지 큰 문제없이 외래 진료만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사례도 있습니다.
물론 병원 방문의 번거로움은 있지만, 일부 유전형에서는 경구용 치료제도 옵션으로 고려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치료 접근성은 과거보다 개선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가족력이나 의심 증상이 있다면 스크리닝 검사를 받고, 조기에 질환을 확인해 치료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도 일반인과 큰 차이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